[특집| 말해야 할 것]사형제를 사형시킬 수 없나

범죄억제 입증 안 된 형벌… 정치인들의 형법 포퓰리즘이 공론화 막아

박근혜 대통령은 사형제 찬성론자다. 2012년 9월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대통령이 되면 사형을 집행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저는 예전에도 그렇게 주장한 사람”이라고 답했다

당시는 아동 성범죄 사건이 잇따라 일어나 이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큰 시점이었다. 9월 기자간담회에서 박 후보는 아동 성폭행범에 대해 “인간이기를 포기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흉악한 일”이라며 “저지른 사람도 죽을 수 있다는 경고 차원에서도 (사형제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명확히 표현한 것은 아니지만 1996년 이후 중지됐던 사형 집행을 재개할 수도 있다는 속뜻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이후에도 박 대통령은 기회가 될 때마다 사형제 찬성 입장을 밝혔다.

2013년 10월 10일, 국회 정론관에서 시민단체, 종교계 관계자들과 여야 정치인들이 사형제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범죄예방 못한 정책 실패 은폐 역할
박 후보가 명확한 사형제 찬성 입장을 밝히자 야권은 반발했다. 이해찬 당시 민주통합당 대표는 박 후보의 기자간담회가 열린 직후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인혁당 사건을 예로 들며 “법원 판결이 잘못돼 억울하게 사형당한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대표는 “사형수가 회개하도록 교육하면서 필요한 경비를 국가가 부담하면 된다”며 사형 집행 반대의사를 밝혔다.

그 자신이 사형수였던 유인태 민주당 의원은 같은 해 10월 30일 국회에서 사형제 폐지 세미나를 주최한 데 이어, 12월 30일에는 사형제 폐지 법안을 조만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대선 직전 잠시 타올랐던 사형제 폐지론은 1년이 지난 지금 흔적만 남은 상태다. 정홍원 국무총리도 2013년 2월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사형제 찬성 입장을 말했지만 큰 논란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사형제 폐지법안을 발의하겠다던 유인태 의원의 약속도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았다.

법학자들은 사형제가 ‘형법 포퓰리즘’의 정점에 있는 제도라고 분석한다. 사형제 폐지론자인 홍성수 숙명여대 법대 교수는 유인태 의원이 2012년 10월 30일 주최한 사형제 폐지 세미나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홍 교수는 사형과 같은 엄벌주의 형사정책이 범죄 억제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사실로 입증된 바 없다고 말했다.

홍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사형과 같은 강성 형벌은 범죄율을 낮추기 위한 진지한 문제 해결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 또한 홍 교수는 사형제가 범죄를 예방하지 못한 “정부 정책의 실패를 은폐하는 기능을 한다”고 지적했다.

살인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유가족들은 가해자들을 사형에 처해달라고 호소한다. 피해 당사자로서 이들의 요구는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사형제도를 존치시키자는 의견도 여전히 과반을 이룬다. 문제는 이런 여론을 자신의 이익에 종속시키는 일각의 태도다.

홍 교수는 2012년 10월 세미나 발제문에서 “형법 포퓰리즘을 추구하는 정치인들은 정의를 실현하거나 범죄율을 낮추려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며 “(이들은) 오로지 선거에서의 승리를 목적으로 하는 일련의 형벌정책을 사용한다”고 지적했다.

여야 일부 의원들 법안 발의 움직임
가장 최근 형벌 포퓰리즘을 보여준 사례가 바로 북한과 일본이다. 12월 12일 두 나라는 같은 날 사형을 집행했다. 북한은 김정은 권력에 도전한 장성택을, 일본은 연쇄살인범 2명을 처형했다. 당시 한국 언론은 인권단체의 우려 목소리를 전하며 북한과 일본의 사형 집행은 정권의 내부 지지를 끌어내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분석했다.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소신대로 흉악범에 대한 사형을 집행한다면 마찬가지의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한 야권 인사는 “설마 이런 시대에 대통령이 사형을 집행할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면서도 “사형제가 현행법에 있는 한 안심할 순 없다”고 말했다.

또한 사형제는 ‘글로벌 스탠더드’에도 맞지 않다. 2013년 기준으로 OECD 국가 중 사형을 실제로 집행한 국가는 미국과 일본뿐이다.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2012년 기준으로 전 세계 198개국 중 105개국이 사형제를 폐지했고, 35개국은 10년 이상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다. 하필이면 한국과 가까운 미국과 일본에서 사형을 집행하고 있기 때문에 느끼지 못할 뿐, 사형제 폐지는 이미 인권 선진국의 기본 조건으로 자리잡고 있다.

2014년이 오면 사형제 폐지 논의가 다시 수면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 유인태 의원실 관계자는 “사형제 폐지에 여야 모두가 공감할 시점에 법안을 발의할 것이다. 2014년 안에는 발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새누리당에서는 평소 사형제 폐지 소신을 갖고 있던 정의화 의원이 유 의원의 사형제 폐지법안 발의에 동참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유 의원측은 “사형제의 대안으로 알려진 ‘사면 없는 종신제’를 채택할지, 무조건 폐지로 갈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