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채용보다 인사 시스템이 더 문제다

고위직 고시출신이 다수 차지 관료주의 폐단 발생

정부 중앙부처 고위공무원들이 경기도 용인 삼성인력개발원에서 특별 연수를 받고 있다.|경향신문

“상위 직급이 고시 출신 위주로 구성돼 있어 경쟁력이 부족하고 다양한 시각과 경험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이 8월 12일 발표한 ‘공무원 채용제도 선진화 방안’의 도입 필요성을 밝히면서 한 얘기다. 이 제도를 마련하는 데 실무적 책임을 맡았던 조윤명 행정안전부 인사실장도 “‘우수인력=고시’라는 등식으로 일원화된 인력 충원 경로에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채용시스템을 고치려는 이유가 바로 고시 출신 중심의 관료주의적 폐쇄성을 타파하기 위해 경쟁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설명인 셈이다. 맹 장관과 조 실장이 현재의 공직사회 문제점을 ‘자백’한 것과 마찬가지다. 강형기 충북대 교수(행정학)는 “기수를 중시하는 고시 출신이 고위공직을 대부분 차지하다보니 자주 관료주의의 폐단이 드러난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관료주의의 병리현상을 말할 때 우선 조직이 경직화됨에 따라 유연성과 활력을 잃게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하는 데서 비롯된 문제”라는 게 행정학자들의 일반적 생각이다.

고시출신 대부분 승진 보장 관행
그렇다면 한국 공직사회에서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벽’은 무엇일까. 고시 출신과 비고시 출신 사이에서 업무적 역량보다 처우가 크게 차이가 나는 게 문제로 거론된다. 공무원 사회의 보상시스템은 승진과 보직으로 단순화되어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일정 수준까지 고시 출신의 승진이 보장되는 관행은 공직사회의 경직성을 더욱 심화시킨다. 한 공직자는 “과장급(서기관)에서 공직을 그만두는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극소수에 불과하다”면서 “반면 7급 공무원시험 출신자가 중앙부처 과장급 이상 승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특별한 문제만 없다면 고시 출신 공무원은 최소한 국장급(부이사관)까지 승진이 ‘보장’되는 게 관례화되어 있다.

2009년 말 현재 기준으로 5급 이상 고위공무원단 중 고시 출신이 70.6%를 차지하고 있다. 3급 과장급 이상도 57.9%를 차지하고 있다. 3급 이상에서 비율이 낮아지는 것은 5년 주기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장관부터 차관보까지 비관료 인사들이 대폭 충원되는 엽관제 때문이다. 현재 공무원 평가제도는 고시 출신과 비고시 출신에 차별적으로 적용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시 출신이 고위공직을 점유하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국행정학회 회장인 김태룡 상지대 교수는 “인사는 채용부터 교육, 훈련, 전보, 승진, 퇴직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사상 절차를 의미한다”고 전제하면서도 “인사와 채용 어느 것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인사의 기본이고 틀인 채용이 인사시스템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고시 출신이 중심이 된 고위공무원 사회는 이질적 구성원에 대해 배척하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 김동극 행정안전부 인력개발관은 “전문직으로 특별 채용됐다가 공직사회를 떠나는 사람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곤 한다”면서 “부적응 이유는 역시 소외감”이라고 말했다. 전문직 임용자들이 고시 출신과 동화되는 데 적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반대로 고시 출신 한 공직자는 “역시 공무원 사회의 적응 여부는 네트워크에 의해 갈리는 것 같다”면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전국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동기 300명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고위공무원단의 인적 쇄신이 한창이던 2008년 당시 과천 정부청사에 근무하는 고위공무원들의 표정이 사뭇 심각하다. | 연합뉴스

고시 출신자들의 네트워킹 작업은 사실상 경쟁자를 배척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끼리끼리 추천하는 등 밀어주고 당겨주는 관행이 지속되면서 능력과 전문성, 도덕성이 검증되지 않은 인물들이 고위공직에 너무나 쉽게 오르는 길을 열어놓게 되는 것이다. 김태룡 교수는 “행정업무 특성상 평가하기 쉽지 않은 것도 이런 행태가 만연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더욱이 우리나라 공무원 사회의 보상시스템은 승진과 지위로 단순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병폐는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고시 출신이 고위직을 다수 점유함으로써 인사시스템마저 왜곡시킬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혜수 경북대 교수(행정학)는 “역할과 보수로 보상하는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면서 “그래야 인사 과정에서 온정주의, 연줄주의와 직위 보상이라는 인사 관행을 깰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시파 동류의식이 정책에도 영향
사석에서 만난 중앙부처의 한 고위공직자도 이에 대해 어느 정도 수긍했다. 그는 “나의 경우 평가와 보직을 별개로 생각한다”면서 “내가 사무관을 5명 데리고 일한다면 그들의 능력이 곧 나의 실적이 되기 때문에 뛰어난 사람을 뽑으려고 애쓰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내가 인사고과를 매길 때 뽑을 당시와 그들에 대한 평가가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솔직하게 인정했다. 단순히 능력과 실적에 따른 평가가 아니라 다른 어떤 요인 즉 학연, 지연 등이 작용할 수 있음을 시인한 것이다.

이처럼 평가와 보상이 일치하지 않을 때 공무원 사회의 신뢰가 어떻게 추락하는지는 공무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가 보다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전북도 인사조사소위원회가 최근 전북도청 공무원 3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인사가 능력·실적 위주로 이뤄졌다고 생각하느냐’는 질의에 ‘그렇다’는 답변은 15.3%에 불과했다. ‘그렇지 않다’는 무려 47.1%에 달했다. 또 ‘근무평정이 공정한가’라는 문항에서는 ‘공정하다’고 답한 비율 역시 17.3%에 지나지 않았다. 노무현 정권이 다면평가제도 등을 도입, 인사의 공정성을 제고하려는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 쉽게 해결이 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고시 출신의 동류의식은 정책에도 영향을 미친다. 고위공직자들 사이에서 전보인사는 ‘동종교배’로 통한다. 집단의식의 발로인 셈이다. 한 6급 지방공무원은 “정책 결정 과정에서 고시 출신의 동류 혹은 우월의식이 정책을 왜곡시키는 경우도 종종 있다”면서 “고시출신들이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그 배경이 정책에 투영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하혜수 교수는 “고위직 공무원보다 중간계급의 7급 공무원으로 특히 전문분야에 있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채용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송광태 청원대 교수는 “하위직 공무원의 사기 진작과 인사적체 해소를 위해 근속승진 대상 직급을 확대하고 기간을 축소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na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