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모심은 논 가을에 수확할 수 있을까

‘수몰’ 위기에 처한 팔당 유기농단지를 가다

지하철 중앙선 운길산역. 지하철로 서울에서 채 한 시간도 안 걸리는 곳이지만 이곳에 내리면 도심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일대 팔당 유기농 단지다.

경기도 양평군 두물머리에서는 천주교 사제들의 생명평화 미사가 열린다. 사제들이 만든 나무 십자가가 강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 6월 9일 낮 12시쯤 조안면 진중리 팔당생명살림생협 유기농 매장에서 만난 방춘배 ‘팔당상수원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 사무국장은 밀짚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는 “오전 10시부터 시작한 모심기가 방금 끝났다”고 말했다.

4대강 사업으로 100여 농가 농토 잃어
이날 지역 농민들과 생협조합원 10여 명은 유기농 매장 바로 옆 논에서 모심기를 했다. 이 근방 일대에서는 마지막 모심기다. 평년보다 열흘쯤 늦었다. 올 봄 유난히 변덕스러웠던 날씨 탓이다.

모심기는 모두 끝났지만 가을에 수확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이곳 진중리가 포함된 진중지구, 춘천 방향으로 진중리 바로 위에 있는 송촌리를 포함하는 송촌지구,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인근 양평군 두물머리지구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4대강 사업 예정 지역이다. 4대강 사업 시행사들은 진중지구와 송촌지구에는 ‘한강9공구’, 두물머리지구에는 ‘한강1공구’라는 이름을 각각 붙여 놨다.

정부는 지난해 5월 하천법시행령 개정안에 따라 사업 예정 지역 내 비닐하우스 설치를 금지했다. 덩달아 하천 부지에서 농사를 짓는 행위도 ‘불법’이 됐다. 지금처럼 농사를 강행한다 하더라도 사업이 예정대로 실시될 경우 이 지역에서 유기농을 하고 있는 100여 가구는 당장 농토를 잃게 된다. 비닐하우스를 포함해 유기농사를 짓고 있는 하천 부지가 자전거 도로와 공원으로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경기도청 통계에 따르면 현재 팔당 지역에서 친환경 인증을 받은 유기농가 수는 모두 112가구. 이 가운데 4대강 사업 편입 대상으로 지정된 농가는 51가구다. 총 공사비 22조원이 투입되는 4대강 전체 사업 규모에 비하면 작은 피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 51가구는 가구수 기준으로는 팔당 지역 유기농가의 46%, 전체 재배 면적 기준으로는 52%를 각각 차지한다. 방춘배 사무국장은 “이들 51가구가 팔당유기농에서 차지하는 비중만으로도 4대강 사업이 완료될 경우 팔당 유기농 단지는 치명타를 받게 된다. 게다가 사업 예정 지역에는 편입돼 있지 않더라도 하천 부지 농사 금지로 인해 피해를 볼 나머지 50여 가구까지 포함하면 팔당 유기농은 사실상 붕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는 생산자인 농민에서 그치지 않는다. 팔당 유기농 단지는 수도권 최대 친환경 유기농 단지다. 농가 수와 면적은 작은 규모지만 이곳의 친환경 농작물은 여성민우회 생협, 두레생협, 정농생협 등 수도권 생협과 학교에 공급된다. 생협조합원 35만 가구와 학생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해마다 이곳을 찾는 12만명의 사람들에게 팔당은 농촌문화 체험장이기도 하다.

정부가 내놓은 명분도 농민들이 보기에는 조리에 닿지 않는다. “정부는 유기농이 강을 오염시킨다고 한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정부 주장이 사실이라면 정부가 직무유기를 한 것”이라고 김양현씨(46)는 분노했다. 대를 이어 이곳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김씨는 1995년부터 유기농으로 전환했다.

종교인은 신앙 걸고 농민은 삶 걸어
‘정부의 직무유기’라는 김씨의 분노에는 ‘역사’가 있다. 팔당 지역은 1973년 팔당댐 건설 이후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6~7개에 이르는 각종 규제에 묶였다. 친환경 유기농으로의 전환은 개발의 손과 발이 묶인 상태에서 농민들이 선택한 유일한 자구책이었다. 서울시, 지자체, 환경부는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친환경 퇴비 마련 비용으로만 농가당 600만~700만원을 지원했고, 각종 시설자금도 융자해 줬다. 수도권 주민들의 상수원을 보호한다는 명분이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친환경 유기농이 상수원 오염 원인으로 뒤바뀐 것이다.

한국기독교장로회 목회자들이 금식기도를 하고 있는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임시 기도처.

경기도는 2011년 ‘세계유기농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조직위원장은 김문수 경기지사다. 주 행사장은 팔당에 있다. 6·2 지방선거에서 재선한 김 지사는 4대강 사업은 중단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세계유기농대회를 어떻게 치른다는 것일까. 방춘배 사무국장은 “김문수 지사는 ‘여기가 아니어도 다른 곳을 보여 주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난해 11월에 내한한 캐서린 디마테오 세계유기농업운동연맹 회장은 ‘이곳이 훼손되면 대회를 할 수 없다’고 밝혔다”고 꼬집었다.

농민들은 지난 1년 동안 관청과 시행사를 상대로 지루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농민 22명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까지 도보순례를 했다. 지난 2월 24일에는 조안면 송촌리에 시행사 측량기사들이 들이닥쳤다.

경찰과 대치하던 농민 10여 명이 경찰서에 연행됐다. 농민들은 지금도 측량문제로 거의 날마다 시행사 직원들과 승강이를 벌인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희망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양정순 팔당생명살림생협 이사는 “6·2 지방선거에서 도지사는 바뀌지 않았지만 경기도와 기초단체 의회 구성은 확 바뀌었다. 민심이 4대강 사업을 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지금 상태로는 세계유기농대회도 할 수 없다. 유기농대회를 치르지 못하면 김 지사는 대선을 꿈꿀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농민들이 기대는 언덕이 하나 더 있다. 종교인들이다. 조안면 송촌리에는 한국기독교장로회 목회자들이 있다. 차로 15분 거리인 양평군 양서면 두물머리에는 천주교 사제들이 있다. 날마다 기도회와 미사가 열린다. 기독교 목회자들은 2월 17일부터 6월 2일까지 103일 동안 금식 기도를 했다. 천주교 사제들은 2월 17일부터 이날까지 113일째 미사를 봉헌했다.

오후 4시쯤 이날 미사를 끝낸 최재영 덕소성당 주임신부는 “선거에서 국민들이 명백하게 4대강에 반대한다는 의사 표시를 했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그대로 간다고 한다. 강남과 토목자본에 기댈 수밖에 없는 정권의 속성 탓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나라 대통령이지 강남 대통령은 아니지 않나”라고 비판했다. 함께 있던 김재욱 4대강 반대 천주교연대 사무국장은 “오늘 최 신부님 강론 말씀처럼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라 옳고 그름의 문제다. 막든 못 막든 옳으니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후 5시쯤 송촌리에 마련된 기도처에서 만난 김선구 용진교회 목사와 윤인중 목사(기독교 생태운동본부 집행위원장)는 “4대강 사업은 창조 질서에 어긋나는 행위”라며 강력하게 비판했다. 윤 목사는 “4대강 추진 세력은 마몬을 숭배하고 있다. 하나님 이외에 다른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성경 말씀을 따르는 기독교인은 결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신앙과 현실은 함께 가는 두 개의 수레바퀴”라고 촌평했다.

윤 목사는 오후 6시 30분쯤 강가를 바라보는 2층 높이의 기도처로 올라갔다. 이날부터 시작되는 기독교인들의 릴레이 금식 기도회 이틀째 기도자가 그다. 윤 목사는 “대통령이 만취 운전을 하고 있다. 쓰러지는 이들의 피해를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정신 차려야 한다”고 일갈했다.

팔당에서 종교인들은 신앙을 걸었고, 농민들은 삶을 걸었다. 정부가 물러서지 않는 한 이들은 결코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글 사진·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