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누구를 위한 ‘보금자리주택’ 인가

서울 세곡동 은곡 마을 전경. 600여 가구가 땅을 임대해 화훼 농사를 짓고 있는 곳이다. <최영진 기자>

보금자리 주택 확대 정책으로 그린벨트 개발 대상지역의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오래전부터 살아온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원주민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땅을 수용당하면 갈 곳이 막막한 주민들은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서울 강남구 세곡동 비닐하우스 화훼단지를 찾아 주민들의 ‘사연’을 들었다.

보금자리 주택 공급 확대 정책이 발표되면서 눈길을 끄는 곳이 서울 강남구 세곡동이다. 비닐하우스촌으로 알려진 유명한 화훼 단지다. 지난 2월 이명박 대통령이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서울 근교 그린벨트엔 비닐하우스만 가득 차 있다. 이런 곳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한 곳이기도 하다. 서울 강남 지역임에도 3.3㎡당 분양가 1150만원이 가능한 이유는 지금까지 개발제한 구역이기 때문이다. 보금자리 주택 때문에 이곳을 떠나야만 하는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세곡동을 찾았다.

세곡동 사거리를 기점으로 왼쪽에 있는 ‘뭇골 마을’과 오른쪽에 있는 ‘은곡 마을’이 보금자리 주택 시범지구로 지정된 곳이다. 마을버스 종점이 있는 은곡 마을로 향했다. 마을 입구에는 ‘잘못된 비닐벨트 개발은 또 다른 비닐벨트를 만든다’, ‘주민의견 무시하는 보금자리 결사반대’, ‘토지주의 힘을 모아 투쟁하자’, ‘지금도 늦지 않았다 국토해양부와 주공은 보금자리 주택 건설계획을 즉각 중단하라’ 등의 현수막이 마을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다.

마을 주민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세곡지구 토지 및 건물 대책위원회’라는 푯말이 붙은 컨테이너에 들어갔다. 이곳은 은곡 마을에 자기 땅을 가지고 있는 땅주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은곡 마을 입구에 서있는 ‘세곡지구 토지 및 건물 대책위’ 컨테이너 사무실 주위에는 보금자리 주택 건설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최영진 기자>

“세곡동은 원래 경기도 광주군 대왕면이었다. 1960년대 초 서울시에 편입됐고, 개발제한 구역으로 지정된 지 40년이 넘었다. 일부 투기꾼을 제외하면 이곳에 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계속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다. 정부가 강제로 땅을 수용하면 이곳에서 오래 산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

홍석배 통장협의회장의 말이다. 이곳에 비닐하우스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25년 전이다. 원래 농사만 짓던 곳인데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서 화훼 농원이 생기기 시작했다. 개발제한 구역이기 때문에 토지거래 허가를 받아야만 토지 거래가 이뤄진다. 토지 거래가 빈번하지는 않지만 현재 매매가는 3.3㎡당 300만~400만원이라고 알려져 있다. 보금자리 주택 건설이 발표된 이후에는 거래가 끊겼다. 땅을 사봐야 별다른 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토지 체감가격과 공시지가 큰 차이
토지보상의 기준이 되는 공시지가에 대해 이곳 주민들은 3.3㎡당 150만~180만원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국토해양부의 ‘부동산공시가격 알리미’를 통해 세곡동 개발제한 구역을 조회하면 10만~60만원에 불과하다. 그만큼 주민들의 체감 가격과 공시지가의 차이가 크다. 정부가 강제 수용을 한다면 주민들 역시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이지만 보상가라도 제대로 쳐달라는 것이 이들의 요구다.

홍 회장은 “강남구에 맞는 토지보상을 하고, 평수에 따라 땅 주인에게 택지를 공급했으면 한다”면서 “보금자리 주택이 발표된 후에 공시지가와 매매가가 계속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척 속상했다”고 말했다. 대책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토지 소유자들은 3.3㎡당 450만~500만원의 보상가를 원하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한 주민은 “정부의 정책에 대놓고 반대하지 못할 것이다”면서 “하지만 그동안 재산권 행사를 못한 것에 대한 보상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보상가 산정을 앞두고 토지주와 정부 간의 마찰이 예상된다.

토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땅을 빌려 비닐하우스를 짓고 화훼농사를 하고 있는 세입자들은 이번 정부의 발표로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 세입자와 땅주인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세입자들은 ‘용풍주민대책위원회’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은곡 마을 산길로 들어가는 초입 부분에 이들의 컨테이너 사무실이 있다.

은곡 마을에서 땅을 임대해 화훼농사를 짓는 세입자들은 스스로 투기바람을 막기 위해 외지인을 막고 있다. 용풍주민대책위원회가 설치한 입간판의 모습. <최영진 기자>

컨테이너 사무실 앞에 설치돼 있는 입간판이 눈에 띈다. 입간판에는 ▲기존 지분을 쪼개어 이익을 얻으려는 행위 ▲기존 건축물 이외의 불법 건축 행위 ▲벌통 및 가축을 늘리는 행위 등을 막는다는 내용이다. 보금자리 주택 시범지구로 지정된 이후 보상비를 노리는 투기꾼들을 세입자들이 스스로 막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보금자리 주택 시범지구로 선정된 이후에 조잡한 형태의 비닐하우스가 생기기 시작했다. 땅주인이 보상비를 노려 갑자기 비닐하우스를 만드는 것이다. 위원회 사람들은 막지 못하고 바라볼 뿐이다. ‘있는 ×들이 더 한다’라는 마음을 속으로 삭힐 뿐이다.

은곡 마을에는 600여 가구가 비닐하우스를 짓고 화훼농사를 하고 있다. 이 가운데 150여 가구는 비닐하우스 안에 집을 지어놓고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은곡 마을 땅 가운데 79만2000㎡(24만평) 정도가 서울 소재 대학 재단의 땅이기 때문에 이곳의 임대료는 무척 저렴하다. 이 때문에 이곳에서 화훼 농사를 지으려면 권리금을 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한번 들어와서 화훼 농사를 지으면 5년은 기본이고 10년, 20년 동안 화훼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이 많은 이유다.

주택공사, 보상협의 시작도 안해
용풍주민대책위원회 방인배 위원장과 함께 차를 타고 은곡 마을을 둘러봤다. 마을 전체가 비닐하우스였으며 조용했다. 무엇보다 공기가 맑아 마치 전원마을에 들어온 느낌이다. 왜 이곳에 들어와서 화훼 농사를 지으며 사는지 이유를 알 수 있다. 산길을 올라가다 꽃을 다듬고 있는 임정순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 이곳에서 나가셔야 한다는데 어떻게 하실 거예요”라는 질문에 할머니의 한탄이 이어졌다.

“내가 이곳에 들어온 지 26년 됐어. 남편이랑 처음 이곳에 들어올 때는 산사태도 나고 진흙길이었어. 비만 왔다하면 질퍽거려서 걸어 다닐 수도 없었어. 산사태가 나면 굴러온 돌로 두렁도 만들고, 콘크리트를 사서 길도 만들었는데…. 지금 80이 다 됐는데 이곳에서 나가 뭘 하겠어. 이곳에서 그냥 계속 살고 싶어.”

이곳에서 만난 다른 할머니 역시 “이렇게 넓은 곳에서 살다 보니까 아파트에서 이제 못 살어. 이곳에서 나가면 가까운 곳에 땅을 마련해 농사를 짓고 싶은데 땅 값이 많이 올랐다고 해서 걱정”이라고 설명했다.

방인배 위원장은 “지금까지 주택공사와 보상에 대한 협의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보상비 산정을 위해 조사하려면 적어도 2개월이 필요하다.

그리고 화훼 특성상 가을에는 실사를 하기 어려운 데도 주택공사는 손을 놓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사업공고가 난 후에 비닐하우스에 들어온 화훼는 인정하지 않는다는데 그럼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밖에 안 된다. 이제 보상만 바라보고 손을 놓고 있어야 하는 것인지 참으로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주변 땅값 너무 올라 이전 쉽지않아
방 위원장은 3년 동안 키워서 팔 계획으로 심어놓은 나무를 보며 한숨을 내쉰다. “3년만 키워서 팔면 이익이 된다고 해 올해 이 나무를 심었다. 보금자리 주택 때문에 또 옮겨야 하는데 옮길 곳도 마땅치 않다. 옮기는 과정에서 죽는 나무도 많을텐데 걱정이다.”

방 위원장의 이야기처럼 화훼 농사를 지으려면 꽃을 내다 팔고, 종묘를 들여와서 키워야만 한다. 현재 상황에서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꽃을 내다 팔기만 해야 하고 종묘나 작은 나무는 들여오지 못한다. 또한 내다 판 꽃이나 나무 중에서 관공서에 납품한 것이나 영수증 처리가 된 것만 보상 증거로 인정받는 것도 이들에게는 불만이다.

이곳에서 농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 모씨는 “이곳은 대부분 현찰거래를 하기 때문에 실적을 내세울 자료가 별로 없다”면서 “1만3200㎡(4000평)를 임대해 화훼 농사를 지었다. 그동안 장사를 하기 위해 트랙터나 온풍기, 화물차 7대를 구입했지만 이런 장비도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 걱정이다”고 말했다.

방 위원장은 요즘 주변 땅을 알아보느라 정신이 없다. 마음에 맞는 은곡 마을 주민들과 함께 모여서 화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을 찾아서 이천과 양평, 용인 등지를 돌아봤지만 땅값이 너무 많이 올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 서울에서 너무 많이 떨어진 곳에 가서 농사를 지어봐야 판로가 막히기 때문에 가까운 곳의 저렴한 땅을 계속 찾아봐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세입자를 위한 이주대책이나 보상비에 대한 기준은 전혀 마련돼 있지 않다. 국토해양부 기획총괄과 사무관은 “현재는 건축물에 대한 조사 단계다. 감정평가를 한 후에 보상 규모나 수준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세입자에게는 임대주택 특별공급이나 상가용지 분양권을 주는 것으로 계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화훼농사는 상가에서 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것은 세입자가 결정해야 할 문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면 상가에 들어가면 된다”고 답변했다.

은곡 마을에서 땅을 빌려 화훼농사를 짓고 있는 주민들은 대부분 화훼 농사를 계속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바람처럼 화훼 농사를 계속하려면 보상비를 모두 땅을 사는데 써야만 할지도 모른다. 땅주인 및 세입자가 원하는 보상비와 정부가 예상하는 보상비 간에도 차이가 크다.

정부가 이들의 요구를 어떻게 해결하는지에 따라 보금자리 주택 공급 성공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