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국정 전반에 걸친 ‘MB 조급증’

‘절차 무시한’ 불도저 정책…

속도전과 업적주의 벗어나야

심명필 4대강 살리기 추진본부장을 비롯한 관련 부처 관계자들이 6월8일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4대강 살리기 사업 마스터플랜 수립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급증’은 어떤 일에 자신감이 없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또한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사람들 역시 조급하게 일을 처리한다. 일반인이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개인이 지게 되므로 대수로운 일이 아닐 수 있지만 조직의 사령탑이나 국정을 책임지는 최고지도자가 ‘조급증’이 생기면 부작용을 그 조직과 나라 전체가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살리기사업’이 대표적인 예다. 단군 이래 최대 토목공사로 불리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은 22조원에 이르는 천문학적 사업비용은 차치하더라도 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정된 이후의 ‘절차를 무시한 속도’는 불도저를 연상케 한다. 정부는 지난해 말 설계도면 한 장 없이 사전환경타당성검토도 생략한 채 한승수 국무총리가 나서 4대강 정비사업착공식을 거행했다.

이후의 절차는 일사천리였다. 국토해양부는 사업구간에 편입되는 하천부지와 경작지 등에 대한 토지 및 물건의 기본조사와 감정평가를 이달 말까지 마칠 계획이며, 서둘러 마스터플랜도 발표했다. 그러나 지난해 말 ‘4대강 살리기 기획단’ 발족 이후 전국 시·도 설명회와 전문가 그룹 자문, 관련 학회 토론과 공청회, 마스터플랜 발표 등이 불과 1년도 안 돼 초스피드로 이뤄진 데 이어 본격적인 공사 시행까지 조급하게 추진되고 있어 ‘속도전’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4대강 위해 SOC예산 대폭 삭감
무리하게 속도를 내다보니 부작용은 필연이다. ‘4대강 살리기사업’은 현재 진행 중이거나 내년도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의 3분의 1을 삭감하는 부메랑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국가예산은 한정되어 있고, 다른 예산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경기도의 경우 파주 법원리와 양주 상수리를 잇는 56호선 도로가 내년 완공을 목표로 교량 연결과 터다지기 작업이 진행 중이지만 경기도가 내년도 공사비로 요청한 565억원에 턱없이 모자란 100억원만 책정한 상태이다. 이대로라면 공사를 계획대로 진행하기가 불가능해 도로 완공은 2, 3년 이후로 늦춰질 수밖에 없다. 호남고속철 관련 예산도 철도시설공단의 요구액보다 60% 가까이 깎이는 등 내년도 전국 도로와 철도 예산의 3분의 1 삭감이 예상된다. 지방의 한 공무원은 “국가가 예산을 평년 수준으로 하겠다고 하는데 4대강에 몇 조원이 들어가면 도로, 철도 쪽에서 줄어들 수밖에 없지 않느냐”면서 “현재 진행 중인 사회기반시설공사의 전반적인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사정이 이쯤되자 불만은 여당 내에서도 터져 나오고 있다.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은 최근 “4대강 사업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전문가 논의나 환경영향평가 등이 제대로 되지 않는 등 마치 전(前) 정권이 혁신도시 사업을 밀어붙인 것을 다시 보는 듯하다”고 말했고 남경필 한나라당 의원도 한 라디오 시사프로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재정적자 규모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2012년까지 22조원을 투입해 (4대강 사업을) 끝내겠다는 속도전과 업적주의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 예산이 대폭 삭감된 것은 더 큰 문제다. 내년도 기초생활보장 예산은 7조7142억원으로 올해 예산보다 2589억원 줄었다. 저소득층 에너지 보조금이나 한시적 생계구호금액, 장애인 의료비 지원 예산 등은 전액 삭감됐다. 4대강 사업의 재원 마련 때문에 중산 서민을 위한 교육·복지·중소기업 ·농어민·지역현안사업 등 민생예산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은 것이다. 4대강 사업부지 인근의 문화재 훼손도 문제로 지적된다. 문화재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경부운하 예정지 주변 500m 이내에는 72개의 지정문화재와 177개의 매장문화재가 분포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에는 국보 제6호 중원탑평리칠층석탑, 보물 제91호 여주창리삼층석탑, 보물 제180호 신륵사 조사당 등 학술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주요 문화재가 다수 포함돼 있다. 문화재청은 “발굴되지 않은 매장문화재와 유역 변경으로 인한 수중문화재까지 포함하면 수 천에서 수 만점의 문화재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문화재청은 여론이 악화되자 부랴부랴 매장문화재가 분포한다고 확인됐거나 추정되는 곳 가운데 최소 225곳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이와 별도로 나루터 유적 가운데 27곳 이상에 대한 주변 환경조사와 수중조사를 하기로 했지만 ‘속도전’을 추구하는 한 문제를 해결하기 쉽지 않을 듯하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수십 조원이 투입되는 대역사에 걸맞지 않게 성급히 추진되는 부분들이 눈에 많이 띈다”면서 “4대강 살리기가 당초 취지인 환경개선, 경제 살리기,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지를 냉정하게 감시하고 조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투자 유치 발표는 국제적 망신
‘조급증’은 4대강 사업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많이 발견된다. 청·장년층 실업 해소를 위해 이명박 정부가 야심차게 도입해 진행한 예산 조기 집행과 청년 행정인턴 제도는 속도전의 전형으로 끝났다. 당연히 사전에 충분히 준비하지 않은 채 실시된 밀어붙이기식 전시행정이 아니냐는 질타를 받았다.

운하백지화국민행동이 지난 6월25일 조계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4대강 정비사업과 관련해 문화재청이 올해 초에 실시한 문화재 지표조사는 문화재보호법을 어긴 부실 조사로 원천 무효이므로 다시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발표한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도 4대강 못지 않은 조급증이 나타났다. 지난 8월27일 2018년까지 계획된 보금자리주택 가운데 수도권 물량의 공급 시기를 이 대통령 임기인 2012년까지 끝내겠다고 발표한 것. 최근의 전세대란에 따른 집값 폭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보이지만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당초 국토해양부가 지난 5월에 보상 관련 갈등, 지자체와의 인·허가 협의 등 난제를 고려해 10년으로 잡았지만 6년을 단축시킨 것이다. 민간 연구기관의 한 전문가는 “그린벨트 해제에 따른 이해당사자들 간의 여러 절차적 문제가 있고, 투기붐이 다시 일어날 수 있어 정부가 발표한 정책이 실효를 거둘 지는 지켜볼 일”이라고 말했다. 보금자리주택 당첨자에게 5년 의무거주기간을 설정하고 전매 제한 기간도 현행 5년(수도권 과밀억제권역 기준)에서 7~10년으로 강화한다지만 ‘판교로또’가 재현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조급증 때문에 국제적 해프닝이 야기되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난 7월 유럽 순방에 맞춰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 에릭슨의 2조원 규모 한국투자 방안을 발표했고 에릭슨 측이 공식부인하면서 국제적인 망신을 산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임기까지 100% 완료’정책은 교육정책에서도 나타난다. 인수위 시절 ‘영어몰입교육’을 주장하다가 갑자기 ‘영어몰입 교육은 없다’로 말바꾸기를 하고,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면서 임기말까지 모든 대학 신입생을 100% 입학사정관을 통해 선발하겠다고 약속해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혼란을 주기도 했다. 백년대계여야 할 교육정책을 청계천 사업하듯 임기 내에 획기적으로 바꾸겠다는 발상부터 잘못된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김태열 기자 yol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