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한국 엄마들 ‘아들·딸 선택’ 미국으로 원정임신

포털 회원제 카페에서 미국 병원 알선
제재 거의 불가능… 법제도 보완 필요

“본 카페는 선택 임신이 꼭 필요한 분들을 위해 과학적 선택 임신의 길을 소개하며, 한국과 미국의 병원을 서로 연계하는 카페입니다. 꼭 필요한 분들에게 좋은 정보이길 바랍니다.”

한 포털에 개설된 비공개 회원 카페의 공지 글이다. 이 카페의 대문에는 “미국에서 선택 임신 PGD하기 100% 선택 임신 성공”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선택 임신이란 쉽게 말해 임신한 아이의 성(性)을 결정해 임신할 수 있다는 것. 보통 “생리불순이 있으면 딸 출산 가능성이 크다”라든가 특정 체위나 시간대에 따라 아들·딸이 다르게 나온다는 등의 속설이 있지만 이는 “대부분 미신이거나 검증되지 않은 정보”라는 것이 의사들의 일치된 판단이다.

그러나 PGD, 즉 ‘착상 전 유전자 진단’은 다르다. 체외수정된 배아에서 세포를 떼어내 유전자 검사를 하는 기법이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배아의 성 감별이 가능하다. 수정이 일어난 지 1주일 내에 각종 유전적 질병뿐 아니라 아들·딸 여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여러 배아 중 남녀 성 감별을 통해 선택적으로 배아를 자궁에 다시 착상시키기 때문에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이론적으로 100% 남녀 구별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PGD 기술의 사용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법에서 명시한 63가지 유전질환을 제외하고 PGD 기술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PGD 기술을 통한 성 감별은 전 세계적으로 논란의 대상이다. 지난 1월 영국 BBC가 방영한 ‘주문형 아기’ 다큐멘터리에서 소개한 세 부부 사례는 엄밀히 말해 동일한 상황이 아니다. 이중 두 부부는 유전적 질환 때문에 PGD 기술을 사용했지만, 네 명의 아들을 가진 부부는 막내 딸을 얻기 위해 키프러스로 건너가 배아를 만들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에서 이 부부의 시도는 실패한 것으로 나온다.

다시 처음의 회원제 카페. 이 카페의 개설일은 2008년 10월 15일이다. 지난해 11월 17일부터 시행한 미국 비자 면제 프로그램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알음알음으로 이 카페에 가입한 회원 수는 378명이다. 카페 운영자의 공지에 따르면 산모의 체류 기간은 4주 정도이며, 남편은 정액만 제공하면 되기 때문에 2~3일 체류한다. 병원비는 1만7000달러이며, 통역이나 숙박비 등 각종 진행비로 다시 8000달러를 지불한다. 그리고 운영자가 개설한 외국계 은행 계좌에 2500달러를 예약금으로 납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입실’하면서 잔금을 치른다. 운영자는 “남녀 성별 구별은 100%이며, 원하지 않은 성별이 나올 확률은 0%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예약은 상담 및 예약 게시판에 글을 남긴 뒤 쪽지나 메일로 관련 온라인 서류를 보내면 된다.

기자는 카페에 게시돼 있는 전화번호로 운영자와 접촉했다.

한국과 미국의 병원이 연계되어 있는 서비스라고 했는데, 한국에서 상담해주는 병원이 있나.
“한국과는 관계없다. 우리는 병원은 아니고 연결해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병원 측과 현지 사정을 잘 모르는 산모의 의사소통을 돕는 것이다. 특정 병원과 특별한 커넥션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하는 것인가. 카페 소개로 시술받은 사람이 실제로 많나.
“아는 분이 이쪽에서 시술받은 경험이 있어 지켜봤다. 그것을 계기로 원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아직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상담만 하는 정도다. 지금까지 두 분이 시술을 받았다. 한 분은 성공하고, 한 분은 난자를 채취하기가 어려워서 실패하고 돌아갔다.”

돌아간 사람은 재시술을 받나.
“재시술을 받더라도 바로 받을 수 없고 6개월은 지나야 하기 때문에 일단 돌아갈 수밖에 없다. 재시술의 경우 전체 비용이 다시 드는 것은 아니고 추가 비용만 내면 되기는 한데 워낙 비용이 많이 드는 거라 그분이 다시 시도할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만만한 비용이 아니다.
“아무래도 한국의 병원이 해준다면 그게 훨씬 싸게 먹힐 것이다. 체외수정 등의 비용은 한국이 더 저렴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PGD로 성별을 검사하는 일은 한국에서는 불법이다. 반면 미국에서는 불법이 아니기 때문에 광고까지 하는 병원도 있는 것이다.”

앞의 BBC 사례는 딸을 낳기 위한 것이지만 한국에서 건너간 경우는 대부분 아들을 낳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PGD를 활용해 아들 낳기’에 성공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PGD 기술이 보편화한 것은 10년이 넘는다. 무비자 여행 전에도 알음알음으로 국내 법망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산모는 상당수다. 한국에서 PGD를 시술하는 대표적 의료기관의 한 의사는 2년 전 상담받으러 온 한 산모에게서 “미국은 PGD로 아들 낳는 것이 불법이 아니니 미국에 가서 시술받고 오면 되지 않냐”는 질문을 받고 알았다는 것. 육아 카페에 관련 질문이 올라오기 시작한 시점도 그 무렵이다. 그러나 ‘원정 출산’과 달리 ‘원정 임신’은 사실상 포착하기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들은 모두 “‘Weekly경향’에서 처음으로 들었다”는 반응이다.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보건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의료법이나 생명윤리법의 관련 규정은 모두 국내에서 이뤄지는 의료 행위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처벌이나 단속대상이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라며 “국내외 법규가 달라 윤리적인 차원에서는 당연히 문제 제기를 할 수 있겠지만 실제 다른 법규가 적용 가능한지는 유권해석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관련 기술의 발전이 가속화함에 따라 법과 제도의 ‘지체’에서 오는 딜레마는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대한생식의학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구승엽 서울대 의대 교수는 “의학계에서 의학적 이유가 아닌 성 선택은 있었선 안 된다는 공감대가 있지만 산모 처지에서는 흑백논리로만 재단할 수 없는 현실이 있다”라고 말했다. 특히 중국이나 한국에서 강한 남아선호사상 등 사회적 요인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도 “앞으로 그런 사례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관련 법·제도의 정비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