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주문형 아기, 언제쯤 현실화될까

시험관 아기 아담, 여섯 살짜리 누나에게 골수 제공 목적 2000년 태어나

DNA와 단백질, 세포의 관계를 나타낸 개념도. | U.S. Department of Energy Genome Programs

로스엔젤레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공수정 전문의 제프리 스타인버그 박사가 2000년 3월 3일 미국 CBS 뉴스에 출연하여 “내년이면, 태어나는 아이의 성별이 100% 결정 가능하며, 눈 색깔은 80%의 정확성으로 결정 가능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는 소위 맞춤아기에 대한 논란을 일으켰고, 국내 언론에서도 ‘남녀 성별서 머리카락·눈 색깔까지 원하는 대로 선택’ ‘美, 부모가 원하는 대로 맞춤아기 탄생’ 등의 제목으로 보도했다.

맞춤아기(designer baby)란 희귀 혈액질환이나 암 등을 앓고 있는 자녀를 치료하는 데 이용할 줄기세포를 얻기 위해 시험관 수정을 통해 자녀의 세포조직과 완전히 일치하지만 질병 유전자가 없는 정상적인 배아를 골라 탄생시킨 아이를 말한다. 미국의 스타인버그 박사는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 부모가 원하는 특성을 가진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까지 한 것이다.

“인간을 수단으로 취급했다” 비판
맞춤아기를 위해서는 ‘착상 전 유전자 검사’가 필요하다. 착상이란 정자와 난자가 만난 수정란이 자궁에 자리 잡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그 이전에 유전자 검사를 한다. 즉 배아 단계에서 검사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여자의 몸 안에서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는 수정란은 착상 전 검사가 불가능하고, 체외수정에서만 가능하다. 시험관 아기에서만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수정이 이루어지기 전에 난자의 극체(polar body)를 검사하는 방법도 있는데, 배아에 대한 검사가 아니라는 점에서 윤리적인 논란을 피할 수는 있지만 진단의 정확성이 떨어지고, 난자의 50%만 수정된다는 한계가 있어서 그다지 많이 시행되지는 않고 있다.

수정란은 하나의 세포인데, 수정 후 하루가 지나면서 분열하기 시작하여 세포 수가 증가한다. 착상은 보통 수정 후 6일이 지나서 이루어지는데, 그 이전까지 세포 수는 100~150개가 된다. 그중 하나나 두 개 세포를 떼어내 검사하고, 검사한 세포는 파괴되기 때문에 다시 배아에 넣어줄 수 없다. 보통 수정 후 3일이 지나 세포가 6~10개가 되는 단계에서 검사가 이루어지는데, 이때는 세포 1~2개를 떼어내더라도 배아에는 별다른 위험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착상 전 유전자 검사는 이미 1990년대부터 시행했지만 이를 통해 맞춤아기가 처음 태어난 것은 2000년 8월 29일 미국에서였다. 아담이라고 불린 이 아이는 판코니 빈혈이라는 유전질환을 앓고 있는 여섯 살짜리 누나에게 골수를 제공할 목적으로 시험관 수정을 통해 태어났다. 아담의 어머니는 자신의 난자 12개를 시험관에서 수정시킨 다음 여기서 얻은 10개의 배아 가운데 딸과 조직이 일치하는 배아를 골라 임신했다. 그리고 아담을 출산할 때 얻은 제대혈을 딸의 골수에 이식했다. 결과는 좋아서 딸의 골수에서는 3주 만에 혈소판과 백혈구를 만들어냈고, 딸은 정상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영국에서도 맞춤아기가 태어났다. 그러나 아직 맞춤아기는 일반적인 의료 기술은 아니고,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없다.

유전자 연구는 1865년 멘델이 유전법칙을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1953년 왓슨과 크릭이 DNA구조를 밝혔고, 여기서 47년이 지난 2000년에는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이 인간게놈 해독이 거의 완료되었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이제 모든 유전자를 알게 되었다고 흥분했지만 아직 인간게놈을 모두 알게 된 것은 아니다. 단지 염기의 서열만 알게 된 것으로 유전자의 위치와 가능이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유전성이 30~50%로 알려진 고혈압 유전자도 아직 연구 단계이고, 실제 원인 유전자가 알려진 유전질환은 많지 않다. 더욱이 피부색이나 눈 색깔에 대한 유전자가 아직 확실히 밝혀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스타인버그 박사가 맞춤아기의 눈 색깔을 80%의 정확성으로 결정할 수 있다고 한 것은 유전자 연구 현황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에게는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성급한 예상이다. 스타인버그는 앞으로 질병뿐 아니라 미용 목적의 맞춤아기를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 광고 효과를 염두에 둔 듯한 발언을 했다. 실제 그의 클리닉 홈페이지에는 눈 색깔이나 피부색에 대한 완벽한 예상은 보장하지 못한다고 되어 있다.

현재 유전질환 치료용으로 제한 시행
미국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부분 사람은 심각한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맞춤아기는 찬성한다. 그러나 미용을 목적으로 이 기술을 이용하는 것은 그와는 별개의 문제다. CBS 뉴스에 스타인버그가 나온 다음 곧바로 이에 대한 반대 의견이 보도됐다.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생명윤리학센터의 아서 캐플런 박사는 어떤 신체적 특징이 더 낫다는 것은 주관적일 뿐 아니라 문화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것이고, 특히 부자들만 이런 의학 기술의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외에도 근본적인 윤리적 문제가 있다. 배아에서 세포 1~2개를 떼어내는 것이 과연 장차 태어날 아이에게 장기적으로 아무런 해가 없다는 완벽한 과학적 안전성을 보장하는지도 더 지켜봐야 하고, 다른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태어나는 맞춤아기는 인간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취급했다는 칸트적 비판이 있을 수 있다.

실제로 스타인버그의 발표는 많은 항의를 받았고, 결국 그의 클리닉은 유전 질환을 가진 가족에게만 맞춤아기의 기술을 제한시키기로 바꾸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현재 맞춤아기는 일부 유전질환에 대해 매우 제한적으로 시행되고 있으며, 아직 아기의 피부나 눈의 색을 미리 결정해서 낳을 수는 없다. 그러나 생명공학의 발전은 이것을 곧 가능하게 할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를 미리 만들어가야 한다.

최현석<서울현내과 원장·‘유전자의 비밀지도’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