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연구]대법관 되기 위한 ‘출세욕’ 이었나

이메일 파문 신영철 대법관

“판사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대법관에 대한 집념이 매우 강했다.”
신영철 대법관과 법원 수련원에서 단전호흡 수련을 함께 하는 등 매우 가깝게 지낸, 후배 판사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신영철 대법관은 4수 끝에 사법부의 최고 법관의 지위에 올랐다. 그는 서울중앙지법 수석부장판사로 있으면서 2006년 6월, 대법관 정원이 한 명 늘어난 지난해 2월, 그리고 김황식 대법관이 감사원장으로 이동해 결원이 생겼던 지난해 8월까지 세 차례나 대법관 제청자문위원회로부터 추천받은 1순위 대법관 후보였다.

과거 평판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법원은 매우 폐쇄적이고 관료적이다. 판사 출신인 박영화 변호사(법무법인 한승 대표)는 “법원 내에서 대법관 감이 아닌 사람이 대법관으로 임명된 일을 본 일이 없다”면서 “후보로 추천받았다는 것 자체가 법원 조직 내에서 신 대법관의 역량을 인정받고 신임을 얻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용훈 대법원장은 그를 외면했다. 그 내밀한 이유는 이 대법원장밖에 알 수 없다. 다만 법원 주변에서는 “이 대법원장이 신영철(서울중앙지법 수석부장) 판사와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정도의 관측이 제기됐을 뿐이다.

신 판사의 좌절이 반복되면서 그는 대법관 운이 없는 것 아니냐는 것이 지배적인 기류였다. 지난 1월 대법관 인사 당시 법원 내부 인사로 이홍훈 서울중앙지법원장(사시 14회)과 전수안 광주지법원장(사시 18회) 등이 유력하게 거론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 대법원장에게서 제청을 받아내는 뚝심을 발휘했다. 법조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곧 분위기가 반전됐다. 법원 주변에서는 “법원 조직의 안정을 위한 인사” “충청권 인사에 대한 배려”라면서 신 대법관 제청을 크게 문제삼지 않았다. 대법관이 될 만한 사람이 됐다는 평가로 바뀐 것이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야당 의원들은 신 대법관 후보의 도덕적인 하자에 집중했다. 특히 미네르바 구속영장 발부, 광고 불매 판결 등 사법부의 ‘우향우 현상’이 두드러진 시점이기 때문에 야당은 대법관 후보의 이념 문제를 집중적으로 관찰했다.

인사 청문회에 참여한 이춘석 의원(민주당)은 “신 대법관이 판결한 화이트칼라 사건에 대한 판례를 꼼꼼히 살펴봤다”고 전제한 뒤 “그의 이념적 편중성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신 대법관에 대한 도덕적 문제가 제기됐지만 차선책으로 임명에 동의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당의 우윤근 의원(국회 법사위 민주당 간사)도 “이념적으로 특이할 만한 판례를 발견하지 못했다”면서 “두드러지지 않은 보통의 법관”이라고 평가했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3월 6일 출근길에 촛불재판 개입에 대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실 법조계에서 신 대법관에 대한 평판은 그다지 나쁘지 않다. 특히 신 대법관은 기존 판례에 얽매이지 않고 치밀한 법리 해석에 따라 판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법관은 판결로 말하고 판결은 판례로 남는다. 그는 특히 국가보안법에 대해 매우 관용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서울고법 판사 시절(2004년) 한총련 활동을 했던 ㅁ씨(당시 대학원생)에게 원심(징역 2년)을 파기하고 집행유예(2년)만 선고했다. 같은 해 국가보안법·집시법 위반으로 1심에서 1년 6개월 징역형을 받은 ㅈ씨(한총련 소속)에 대한 1심 형량이 너무 적다는 이유로 항소한 검사 측에 대해 “이유 없다”고 판결했다. 아예 ‘최저형량’인 선고유예 판결을 했다. 판결 이유는 ‘현재 한총련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도주 우려가 없다’ ‘학업을 계속하려고 한다’ ‘초범이다’는 등 극히 ‘평범한’ 이유였다.

이 같은 판례는 한 두 건이 아니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대신 대체입법하려는 노력이 가일층된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하더라도 매우 파격적 판결로 받아들여졌다. 더욱이 김대중 정권 이전에도 맥락을 같이 하는 판결을 했다는 점에서 ‘온정적 감형’에 대해 정치적 판결이라는 비난도 할 수 없다.

그는 항소심 판결에서 형량을 높여 판결한 예도 적지 않다. 그만큼 소신이 강하다는 얘기다. 특히 형사사건 전문판사로서 조직폭력배들에게 ‘악명 높은’ 판사다. 대전고법 판사 재직 시절 그의 진가는 유감없이 드러났다. 박영화 변호사는 “청주지법에서 5년 형을 받은 조직폭력배에 형량 2년을 더 높여 판결함으로써 조직폭력 척결에 대한 사법부의 의지를 재확인했다”면서 “사회의 독버섯인 조직폭력은 발본색원해야 한다는 주문을 한 판례로 자주 인용됐다”고 말했다.

2004년 1월에는 계열사 부당지원 및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해 탈법적 기업 운영에 경종을 울렸다. 박 변호사는 “사실 항소심에서 형량을 높여 판결하기는 쉽지 않다”면서 “당시 법원 내부에서 ‘신 판사, 대단하다’는 얘기가 돌았다”고 말했다.

서울지방법원 신청합의부 부장판사로 근무할 당시 조계종 사태에 대한 사법적 해결의 필요성이 절실하다는 이유로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여 조계사를 점거한 승려들의 퇴거를 명령했다. 낙태 과정에서 아직 죽지 않은 태아를 방치하거나 약물을 주입한 의사에게 살인죄를 인정하는 등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고 여성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판결도 다수 있다.

4수 만에 대법관 지명, 그 막전막후

3월 10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앞에서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 김성균 대표가 신영철 대법관의 구속을 요구하는 1인시위를 하고 있다. <김문석 기자>

무엇보다 그의 이름을 알린 판결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 관한 판결(2004년)이었다. 서울고법 부장판사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5·18 관련 재심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형사보상청구권도 인정, 9900만 원 보상비 지급을 명령했다. 그는 또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으로 재직할 때 전국 최초로 정책적 고려에 따른 구속을 지양하고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해 불구속을 확대하는 등 ‘인식구속 사무처리 기준’을 만들어 사법절차 투명화에 기여하기도 했다. 이 같은 소신 판결은 철저한 자기 관리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게 법조계의 일치된 얘기다. 박영화 변호사는 “신 대법관은 변호사는 물론 같은 동료 의원들도 가까이 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법관에 임용된 지 불과 두 달여 만에 신 대법관의 실무능력 그리고 그가 그동안 판결로 보여준 소수자 보호정신조차 의심받고 있다. ‘있을 수 없는’ 부적절한 행동이 신 대법관의 과거 전부가 부정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다소 정치적 색깔이 짙었던 사건, 즉 1997년 대선 당시 민주당 사무총장이었던 이상수 전 의원(정치자금법 등), 서상목 전 의원(배임증죄·정치자금법 등)에 대한 파격적 감형 등에 대해서 재론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법관이 되기 위한 출세욕이 만들어낸 ‘작품’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신 대법관이 이용훈 대법원장의 제청을 받기 직전 그와 연관된 의혹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만 해도 촛불시위 사건을 특정판사에 몰아주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교조 교사 사건의 재판 연기를 주문한 것, 촛불 재판을 재촉하는 이메일을 발송한 것, 집시법 위헌제청한 판사에게 구두 주의한 것, 촛불 사건의 상고심을 자신에게 배당한 것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모든 문제가 지난 연말 대법관 제청을 앞두고 벌어진 일이다. 이들 ‘사건’은 사법부의 독립성과 공정한 재판을 받을 국민의 권리에 관한 중대한 사안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대법관으로서 중대한 결격사유에 해당할 수 있는 문제다. 특히 구체적 재판에 대해 특정한 판사에게 ‘권한 행사’를 한다는 것은 사법 관례상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박영화 변호사는 “판사생활 20년 동안 그런 일은 들어본 일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과거 미제 사건이 많이 밀려 있을 경우 재판을 재촉한 일도 있고 심한 경우는 법원장이 통지표를 만들어서 ‘OOO 판사는 판결 진행 상황이 양호하다’는 식의 공개적인 칭찬을 한 일은 있다”면서 “칭찬을 듣지 못한 일선 판사들은 사석에서 법원장에게 ‘그럼 우리는 일을 못한다는 것이냐’며 벌떼처럼 일어났다”고 말했다. 개별 판결에 대한 압력은 판사들에게 결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춘석 의원은 “신 대법관이 그런 사실에 대해 문제의식이 없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 대법원장이 신 대법관 지명”
어떻든 신 대법관은 제청을 받았다. 도대체 이 대법원장과 신 대법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판사 출신인 이상민 의원(자유선진당)은 ‘나의 짐작’이라는 전제를 달면서 “신 대법관은 앞장설 사람이 아니다”면서도 “이 대법원장이 모티베이션을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이어 “이 대법원장은 말로만 사법부의 독립을 외쳤지 노무현 정권에서 친노(친노), 이명박 정부 아래선 친이(친이)적 행태를 보여왔다”고 꼬집었다. 이춘석 의원은 “적어도 신 대법관의 이메일 발송에 대한 소문은 들었다”면서 “인사청문회 때 입증할 자료가 없어서 캐묻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그는 이어 “촛불시위와 관련해서 논란이 있고 엄연한 결격사유에 해당함에도 신 대법관을 임명제청한 것은 이 대법원장이 역주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외부의 압력이 있었다는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민주당의 한 의원도 전언을 전제로 “신 대법관의 경쟁자였던 강병섭 변호사는 지독한 보수”라고 전제하고 “모처에서 강 변호사를 선호했는데 이 대법원장이 신 대법관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세 차례나 대법관 문턱에서 주저앉은 신 대법관도 외부의 지원을 확보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인물연구

어떻든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개입’ 의혹 규명을 위한 대법원 진상조사단(단장 김용담 법원행정처장)도 신 대법관의 부적절한 행동을 인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 대법원장이 신 대법관의 ‘재판 간섭’ 사실 인지 여부와 사법부 인사의 외부 개입 여부에 모이고 있다. 우윤근 의원는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이 없다면 민주당은 국정조사를 추진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