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영일대군 이상득 ‘큰 정치’ 가슴에 품다

직계라인 거의 없지만 정국 장악 능력
현안마다 해결사역, ‘상왕’으로 불리기도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한나라당 대선 후보 시절 형인 이상득 의원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다. <박민규 기자>

정치인에게 이미지는 그의 정치력을 구성하는 한 요소다. 대중에 비친 정치인의 이미지는 통상 그의 브랜드가 되기 때문이다. ‘명박산성’ ‘수첩공주’처럼 이미지는 별명이나 신조어로 변환되어 소통되는 게 보통이다. 신조어와 별명은 일종의 절제된 이미지다. 이미지를 가장 구체적이고 간결하게 집약해서 표현한 것이라는 얘기다. 별명과 신조어는 일상에서 생산·소비되면서 확대 재생산되는 경로를 밟는다. 별명과 신조어 속에 국민 정서와 국민의 욕구가 투영되어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신조어나 별명은 사회적 현상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생겨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조어와 별명은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을 둘러싼 것이다. 그들 두고 통용되는 ‘호칭’은 꼭 일치된 것은 아니지만 정치 일정과 상황, 그의 위상과 역할 변화에 따라 조금씩 바뀌었다. 이명박 정권의 인계·인수 과정에서 ‘형님 인사’, 제18대 4·9총선 후보 공천에 즈음해선 ‘형님 공천’과 같은 기상천외한 신조어가 나오더니 곧 이상득 의원 개인을 특정하는 별명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가계정치가’(이 대통령 형제가 국정을 책임지게 됐다는 의미) ‘만사형통’(萬事兄通·모든 일은 형인 이상득 의원으로 통한다) ‘영일대군’(이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영일에 과거 왕의 형제를 통칭하는 용어인 ‘대군’을 합성한 조어)이라고 비난을 받더니 종국엔 ‘정치대통령’ ‘상왕’이라는 말까지 듣게 됐다.

친이-친박 거중 조정자 역할
이런 조어와 별명을 관통하는 이미지는 ‘대통령의 형’이다. 대통령의 형은 곧 ‘막후 정치의 실세’로 의미가 변질됐다. 이는 다시 ‘영일대군’ ‘상왕’ 등 부정적 이미지로 포장되면서 ‘막후정치’ 혹은 ‘밀실정치’와 같은 부정적 의미를 더한 것이다.

이 의원은 6선 의원이다. 한나라당 내에서 국회부의장을 지낸 최다선 의원이며 최고령 원로다. 이 의원은 그 자체만으로도 만만치 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상을 갖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일로 승부하겠다는 ‘실용 정치’를 기치로 내 건 이명박 정부는 ‘탈여의도 정치’를 선언한 터였다. 이 대통령이 비운 그 공백을 누군가 매워야 한다. 문제는 이 의원이 맡아야 하는 정치적 상황과 여건이 조성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의 최고 공신인 이재오 전 의원은 총선 실패 이후 한국을 벗어나 있다. 또 지난 4·9총선은 대체로 계파 나눠먹기식 공천이 됐고, 그 결과 주류인 친이명박계와 비주류인 친박근혜계가 대치하는 상황이 반복해서 연출되어 왔다. 게다가 이상득 의원을 제외하고 두 계파의 협력과 조정 역할을 할 수 있는 원로·중진 인사를 찾기조차 어려운 형편이다. 유일한 ‘당의 중심추’로서 자연스럽게 거중조정자 역할을 부여받은 상황이다.

그러나 친이명박계 인사들은 이상득 의원의 역할론에 대해 수긍하지 않는 분위기다. 한나라당 이춘식 의원은 “원하는 정보라면 아주 사소한 것까지 다 얻을 수 있는데 이 대통령이 굳이 형에게 부탁하겠느냐”면서 “이 의원의 역할은 끝난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 의원의 조언자 역할은 집권 초 인사할 때로 끝났다는 얘기다. 이상득 의원도 11월 27일 “지금은 할 말이 없다” “나는 근신해야 할 몸이 아니냐”며 인터뷰도 정중하게 사양했다.

“난 근신해야 할 몸” 인터뷰 사양
그러나 친이계 내부에서는 다른 의견도 있다. ㄱ 의원은 “형제이니 이 의원이 이 대통령을 대신해서 궂은일이야 해야겠지만 이 의원이 나서는 순간 그것은 이 대통령의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을 흐리면서 “이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권력을 집중시키고 있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당내 세력 다툼을 촉발 요인으로 보는 것이다.

사실 한나라당은 구심력이 작용하지 않고 있다. 오죽했으면 박희태 대표는 “만파식적(萬波息笛·<삼국유사>에서 전하는 근심을 잠재우는 피리)이라도 불고 싶다”고 토로했을까. 친박근혜계의 한 의원은 “당의 공적 기능이 마비되어 있다”면서 “이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국민과 소통하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한나라당은 172석의 거대 여당이지만 주도적으로 정부정책을 지원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사실 한나라당 내부에선 ‘월박(越朴·친이재오 진영 인사가 박근혜 진영으로 전향)’ ‘복박(復朴·이재오 진영으로 넘어갔던 인사가 다시 박근혜 진영으로 복귀)’ ‘주이야박(晝李夜朴·낮은 친이계, 밤은 친박계)’이라는 말이 횡행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친ＭＢ계·친박계·친이재오계 등 각 세력이 세 규합을 위한 물밑작업을 활발히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철우 의원은 “나를 어떤 사람은 ‘친이계에서 넘어간 중립’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친박계에서 넘어간 중립’이라고 한다”면서 “아직 실체는 없지만 닥쳐올 세력 싸움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통합적 조정자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의미고, 다시 말하면 이 의원의 역할 공간이 있다는 얘기다. 사실 당내 의견 충돌이 있던 중요한 사안에서 이 의원이 한 마디하고 나서면 일사천리로 정리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어청수 경찰청장 퇴진 요구 때 “어청수 청장은 잘못한 게 없다”라는 말 한 마디에 분분하던 논란이 곧 잠잠해졌다. 이에 대해서도 이상득 의원과 가까운 의원들은 ‘우연의 일치’라고 말한다. 당내 사정에 밝은 한 의원은 김효재 당대표 비서실장의 말을 옮기면서 “박 대표가 당 공식회의에서 어청장 경질 반대 입장을 밝히려고 준비했는데 마침 이 의원이 그 얘기를 했다”면서 “이 때문에 박 대표가 그 말을 못해서 마치 서 청장의 경질을 원하는 양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의원의 발언 영향력이 당에 국한되는 것만은 아니다. 이 의원이 정연주 전 KBS 사장의 교체로 여야 간 공방이 치열할 때 “대통령을 비난하는 공영방송 사장이 있을 수 있는가”라고 거들자 검찰은 야당의 반발을 무릅쓰고 정 전 사장을 구속시켰다.

5월 6일 국회본회의장에서 김효석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의 연설을 듣고 있는 이상득 의원(왼쪽)과 박근혜 의원. <박민규 기자>

문제는 이상득 의원과 박근혜 의원이 정면 충돌하면서 한나라당 내 세력 판도는 더욱 불투명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박 의원이 최근 기자들과 만나 이명박 정부의 인사정책을 비판하고 나서자 이상득 의원이 방어선을 치고 나섰다. 이 의원은 “어디 인사가 쉬운 줄 아느냐”라면서 “정권을 도울지 말지 박 전 대표가 선택해야 한다”고 맞불을 놓은 것이다. ‘이상득 대 박근혜’의 대결 양상이다. 수도권 규제 문제로도 이미 한 차례 대립각을 세운 뒤였다. 박 의원은 정부의 수도권 규제 완화 정책에 대해 “거꾸로 가고 있다”고 비판하자 이 의원은 “포항은 수도권 규제 완화에 아무 불만이 없다” “뭘 알고나 반발하라”고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또 김범일 대구시장, 김관용 경북지사 등이 수도권 규제 완화와 관련해 성명서를 발표하고 상경 항의 움직임을 보이자 직접 전화를 걸어 ‘만류’시켰다. 그리고 수도권 규제 완화에 강력히 반발하는 김성조 의원 등을 직접 만나 “지역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정부를 도와달라”며 일일이 다독거린 뒤 “수도권 규제를 풀지 않으면 우리 기업이 외국으로 나가면 수도권과 지방 모두 망한다”며 정부에 협조하기를 당부했다.

사실상 이 의원은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 기반인 대구·경북지역에서도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계 측에서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한 면이 있다. 친이재오계가 이 의원의 국회 진출을 반대했던 것에 비해 박근혜계는 사실상 ‘모른 체’했다. 이 의원과 대적이 아닌 이 의원과 박 의원의 인연에 기대를 걸었던 것.

하지만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이 의원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이상득 대 반이상득’의 전선으로 변할 가능성이 문제다. 특히 친이재오계는 ‘이상득의 깃발’ 아래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이재오 전 의원의 귀국에 대해서도 적지 않게 부담스러워 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재오 전 의원이 귀국하면 ‘형님으로 모시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했으나 이 의원과 가까운 인사들은 ‘과거에도 이 전 의원이 이 의원을 형님이라고 불러오지 않았나’라고 시니컬한 반응을 보였다.

이재오 “귀국하면 형님으로 모시겠다”

이상득 의원이 지난해 대선 후보 경선이 한창이던 8월 29일 열린 한나라당최고위원·중진회의 도중에 무엇인가 논의하고 있다. <박민규 기자>

이 같은 행보는 이 의원의 정치 역정과 스타일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는 13대 국회 때 당시 육사 14기 입학 동기인 이춘구 민정당 사무총장의 천거로 국회에 입성했다. 그는 당시 코오롱 사장을 맡고 있었다. 그는 초선 때부터 경제통으로 활약하는 중책을 맡았다. 그는 민정당-민자당-한나라당을 거치면서 정책위의장·원내총무·사무총장·최고위원·국회 운영위원장 등 승승장구했다. 특히 2004년에는 천막당사를 이끌던 박근혜 전 대표와 호흡을 맞춰 완패가 예상되던 17대 총선에서 나름 선방했다. 이 의원과 가까웠던 이상배 전 의원은 “누구와도 서슴없이 대하고 사고가 유연해서 협상에 아주 능하다”면서 “그렇다고 ‘누구의 사람’으로 분류된 일이 없다”고 말했다. 그의 보좌관을 지낸 김상인씨는 “적을 만들지 않는 스타일”이라면서 “특히 지난 대선에서 중앙당 국장급, 시·도당 처장급 이상 당료를 이명박 진영이 싹쓸이 한 것은 이 의원의 원만한 인간관계 덕분”이라고 말했다.

원만한 인간관계는 정치인으로서는 매우 유용한 덕목이다. 그것이 대선 과정에서 폭넓은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탄생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하지만 대통령의 형으로서 정치적 부담이 공적 기능을 보완하는 데 장애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하지만 이 의원의 원만한 인간관계는 다분히 ‘월급사장 격 정치인’이라는 면과 통한다. 한나라당 내 최다선인 6선이지만 그를 자생력 있는 정치인으로 꼽는 사람은 별로 없다. 정치 입문 초기도 ‘이춘구’라는 막강한 후원자의 도움을 받았고 영남정권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영남 지역구에 안주했기 때문이다. 특히 원내총무에 도전했지만 낙선한 경험도 있고 관리자인 사무총장에 만족한 예에서 보듯이 이 의원은 사람을 모으는 정치력이 별로 없다는 평가다. 정확히 말하면 코오롱 사장처럼 월급쟁이 사장으로서 역할은 잘 하지만 오너, 아니면 자생적 정치력 발휘는 미흡하다는 것이다.

최근 그에 대해 ‘상왕’ ‘영일대군’이라는 실세 호칭 역시 그의 자생적 정치력에서 비롯한 것이 아닌, 동생인 이 대통령의 후광 때문인 것이 사실이다. 요즘 그의 발언에 무게가 실리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5년 후 아니 4년 후 그의 정치적 현주소에 대해선 회의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이 많다.

박근혜 측이 본 이상득

“노회한 정치인이다.”
이상득 의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온 박종근 의원의 평가다. 박 의원은 친박연대로 제18대 총선에 당선했다가 한나라당에 복당했다. 이명박 정부의 수도권 규제 완화와 인사정책을 둘러싸고 일합을 겨루고 있는 상황에서 이 의원을 ‘재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재평가의 요점은 이상득 의원의 욕심이다. 또 다른 한 의원은 “이 의원이 매우 부드러운 사람인 것은 틀림없다”면서도 “그렇다고 그가 욕심마저 없다고 보면 안 된다”고 말했다. 단지 가족애로써 동생인 이명박 대통령의 성공을 돕는 차원 이상의 정치적 야심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다. 이는 이 의원이 18대 국회 진출에 목매달아 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는 “이상득 의원이 제18대 국회 진출을 고집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면서 “이 의원이 욕심을 부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권의 복잡한 권력 투쟁은 정립(鼎立)체제로 전개되고 있다. 삼각다리는 두말할 필요 없이 이 의원 그리고 박근혜 의원, 이재오 전 의원이다. ‘정치 망명객’의 세월을 보내며 권토중래를 다짐하고 있는 이 전 의원의 빈틈을 이용, 이 의원이 정치적 역할 공간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미 이 의원이 개개인의 접촉면이 꽤 넓혀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계파에 관심 없다”는 경기도의 한 의원도 “이 의원이 지구당까지 다녀갔다”고 말했다. 이처럼 이 의원은 점조직형으로 세를 확장해서 이 의원 세력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다는 게 정가에 도는 얘기다. ‘이상득 사람’으로 분류할 만한 의원들이 없다. 다만 이 의원의 의중에 밝은 의원은 누구누구라는 소문이 떠돌고 있을 뿐이다.

박근혜 진영은 지금까지 이재오 계파보다 이 전 의원이 수월한 카드로 여겨온 분위기다. 한 의원은 “이 의원은 협상과 조정에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서 “무엇보다 대통령의 의중을 제일 잘 알고 있다는 게 최대의 무기가 아니겠냐”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이 이 의원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 의원은 “이 의원은 매번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2인자를 제거하거나 대통령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억누르는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권 규제 완화도 그런 맥락이라는 것이다. 수도권 규제 철폐 반대를 주장하는 의원들이 입장 표명도 하지 못하게 한 것을 염두에 둔 비판이다. 경선 과정에서 당시 박근혜 후보의 대변인을 맡았던 이정현 의원은 “수도권 규제 완화 반대를 비판으로 보면 안 된다”면서 “박근혜 의원의 의견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박근혜계의 다른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사심을 버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면서 “이 의원이 형님으로서 그런 역할을 해야 나라도 살고 한나라당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있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