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이상득에게 찍히면 국물도 없다”

권오을, 공천조차 못받아… 남경필, 외통위원장 패배

권오을, 남경필, 이재오, 정두언(왼쪽부터).

한나라당 전당대회가 끝난 후 권오을 전 의원이 소리 소문 없이 홀연히 미국으로 떠났다. 3선 의원에다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 위원장의 경력을 가진 그가 지난해 대선에서 고려대 선배인 이 대통령을 도와 선대위 유세지원단장을 할 때만 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는 18대 총선에서 당의 공천조차 받지 못했다. 대선 후에는 한국마사회장과 한국농촌공사 사장 후보감으로 이름만 부지런히 거론될 뿐이었다. 7월 전당대회 때 박희태 후보 캠프에서 활동한 권 전 의원은 전당대회장에서 “자꾸 공기업의 후보로 거론되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그를 잘 아는 지역 인사나 지인 사이에서는 권 전 의원의 좁아진 입지 뒤에는 이상득 의원이 있다는 얘기가 있다. 권 전 의원과 이 의원의 ‘악연’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2년 지방 선거를 앞두고 권 전 의원은 경북도지사 후보 경선을 주장했다. 당시 이 의원은 이회창 당시 총재의 핵심 측근으로 한나라당 사무총장직을 맡고 있었다. 당에서는 합의 추대를 원했다.

권 전 의원은 당 주류의 흐름에 반발해 기자회견을 열고 “당직을 맡고 있는 모 의원은 ‘총재의 뜻은 경선이 아니라 현 지사를 합의 추대하는 데 있다’고 있지도 않은 창심(昌心)을 빙자하여 경선 출마 의지를 피력한 의원에게 출마 포기를 종용했다”고 밝혔다. 이때 권 전 의원이 지목한 것으로 보이는 인사는 이상득 당시 사무총장, 주진우·신영국 의원 등이다. 당시 이 의원은 이 일로 권 전 의원과 사이가 나빠졌다고 한다.

권 전 의원의 이름이 거론됐던 마사회장에는 김광원 전 의원이 임명됐고, 농촌공사 사장에는 홍문표 전 의원이 임명됐다. 한 친이핵심 의원은 “권 전 의원은 그냥 좀 쉬고 싶다면서 외국으로 나간 것일 뿐 이 대통령의 눈밖에 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이 의원에게 찍히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면서 그 실례로 권 전 의원을 언급하고 있다.

이재오·정두언도 맞서다 밀려나
남경필 의원은 총선을 앞둔 3월 이 의원의 불출마를 주장하며 이 의원에 맞섰다. 남 의원은 8월 국회 외교통상위원장에 낙점됐지만 당내 경선 끝에 박진 의원에 패배해 쓴잔을 마셨다. 여기에 이 의원의 반감이 작용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남 의원 측은 “경선에 앞서 이 의원과 관계를 걱정한 건 사실이지만 이 의원 측에서 조직적으로 반대를 표방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내에서는 남 의원이 이 의원과 좋지 않은 관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다 아는 상황에서 당내 의원들이 알아서 투표하지 않았겠느냐고 보고 있다.

남 의원과 함께 이 의원의 총선 불출마 선언을 주도한 이재오 전 최고위원도 이상득 의원과 한때 맞섰다. 이재오계를 포함해 55인의 후보가 이 의원의 불출마를 주장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2인자’의 손보다 ‘친형’의 손을 들어줬다. 이 전 최고위원 역시 총선에서 떨어진 후 결국 미국으로 향했다. 이 전 최고위원의 연내 귀국에 대해서 이상득 의원이 반대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한 친이 핵심의원은 “이 의원은 이 전 최고위원이 조용하게 들어오길 원한다”면서 “그 시기는 내년”이라고 말했다.

정두언 의원은 지난해 대선에서 이 의원과 함께 이 대통령을 만든 ‘개국공신’이다. 하지만 인수위 구성 이후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났고 그 자리를 사실상 이 의원이 차지했다고 할 수 있다. 정 의원은 6월 박영준 전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을 비판하며 이 의원과 정면으로 맞섰으나, 역시 쓸쓸히 뒷자리로 물러나야 했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