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뉴 삼성의 새 리더,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

투자조정위 맡아 실질적으로 그룹 총괄
화려한 부활이냐, 과도기 집행부냐 관심

“앞날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
이윤우 삼성전자 총괄대표이사 부회장이 지난 7월 12일 5박6일간 중국 업무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기자들에게 한숨 쉬듯 털어놓은 일성(一聲)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손을 떼고, 삼성전자를 총괄하던 윤종용 전 부회장마저 퇴진하면서 삼성전자호(號)의 선장을 맡게 된 이윤우 부회장. 그룹의 대표 사업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앞에 놓인 안팎의 현실이 녹록지 않음을 털어놓은 것으로, ‘뉴삼성’의 항해를 맡은 책임자의 무게감이 실린 발언이라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뉴삼성’의 핵심은 그룹의 체제 변화다. 종전의 ‘총수-전략기획실-계열사’ 삼각편대에서 전략기획실이 사라졌다. 1959년 당시 비서실부터 시작해 조직과 이름에 다소 변화가 있었지만 50년 가까이 그룹의 대소사를 책임져온 ‘사령탑’이 사라진 것이다.

이는 삼성의 고민을 잘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 이후 그 중심에 선 이건희 회장의 일선 후퇴와 여론의 표적이 된 전략기획실의 해체라는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던 삼성으로선, 그 대안을 사장단협의회 운영과 각 계열사 독립경영체제에서 찾았다. 그리고 물러난 이건희 회장과 아직 전면에 내세우기엔 상당한 부담이 되는 이재용 전 삼성전자 전무 대신 이윤우 부회장을 선택했다. 2004년 반도체 총괄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일선을 떠났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던 이 부회장 개인으로서는 화려하게 부활한 셈이다.

‘관리의 삼성’이 윤종용 부회장의 후임으로 다시 그를 찾은 것은 검증된 경영 능력과 함께 리더십을 갖췄기 때문이라는 게 삼성그룹 안팎의 분석이다. 특검 이후 흐트러진 조직을 추스르기에 이 부회장만큼 경륜과 혁신의 마인드를 두루 갖춘 인물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 그룹 관계자의 설명이다.

입사 40년 만에 총괄 대표이사 취임
삼성전자의 새 사령탑에 오른 이윤우 부회장은 30년 반도체맨으로, 삼성 반도체 성공신화의 공신이다. 1968년 삼성그룹 공채로 삼성전관(현 삼성SDI)에 입사한 그는 1977년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으로 자리를 옮긴 후 30년간 반도체 부문에서 잔뼈가 굵은 반도체 출신 경영자. 1985년에 256K D램을 개발해 과학기술상을 받았고, 그가 메모리사업총괄 부사장을 맡고 있던 1993년에는 삼성전자가 처음으로 D램 세계 1위에 올랐다. 2004년 반도체총괄 사장 직에서 물러난 후 삼성종합기술원장과 대외협력담당 부회장을 지낸 그는 늘 ‘포스트 윤종용’ 후보군에 오르다, 입사 40년 만에 삼성전자 총괄대표이사에 취임했다.

취임 이후 그에게 급속하게 힘이 쏠리고 있다. 물론 사장단협의회를 주관하는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이 대외적으로 삼성의 ‘얼굴 마담’역할을 하지만 이는 다분히 공식적이다. 그가 이건희 전 회장처럼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할 것으로 보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대신 포스트 이건희 체제에서 단연 눈에 띄는 사람이 바로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재판 과정에서 이 전 회장이 밝혔듯 가장 중요한 회사인 삼성전자를 총괄하고 있고, 전략기획실이 없어진 상황에서 가장 중대한 의사 결정인 투자를 조정하는 투자조정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기 때문이다.

사장단협의회 산하의 투자조정위원회는 최근 차세대 디스플레이 OLED 별도 법인 설립을 논의하는 등 삼성의 새로운 실세 그룹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윤우 부회장이 위원장을 맡고 김순택 삼성SDI 사장, 김장완 삼성 중공업 사장, 이수창 삼성생명 사장, 이상대 삼성물산 사장, 임형규 삼성전자 사장, 고홍식 삼성토탈 사장 등 7명이 참여하고 있는데, 새로운 사업투자 결정, 계열사 간 중복투자 조정 등의 역할을 담당한다. 이윤우 부회장이 위원장을 맡은 만큼 그룹의 주력 기업인 삼성전자에 무게가 더 실릴 전망이다. 또 투자를 앞두고 대주주인 이 전 회장과 자연스럽게 만남이 잦아져 그의 ‘복심’을 읽을 수 있다는 것도 이 부회장에게 힘이 쏠리는 이유다.

이윤우 부회장의 직속 조직도 강화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 조직 개편과 보직 인사에서 부회장 직속 조직의 규모와 역할이 대폭 확대된 것. 조직 개편을 보면 기존 총괄대표 부회장 직속 조직인 글로벌마케팅실(GMO)과 고객총괄책임자(CCO) 두 곳 외에도 상생협력실과 신사업팀을 신설했다. 먼저 상생협력실은 국내 협력사들과 구매 및 단가 협상 등의 역할과 함께 이재용 전무가 맡았던 CCO 업무(해외 거래처 관리)까지 맡을 예정이다. 지난해 그룹 차원에서 만든 신수종 태스크포스(TF)를 모태로 신사업팀은 앞으로 삼성전자를 비롯한 그룹의 미래 먹을거리를 발굴하는 업무를 맡는다. GMO의 역할도 대폭 강화되어 삼성전자 모든 제품의 브랜드 이미지를 통합·관리하는 업무 외에 삼성그룹의 통합 CI(기업 이미지) 관리 업무도 맡을 예정이다. 그동안 전략기획실이 하던 업무가 그대로 삼성전자에 옮겨온 듯한 모양새다.

‘2~3년 뒤 이재용 복귀’ 관측 지배적
하지만 재계에서는 ‘이윤우 부회장의 삼성전자호’를 두고 2~3년 뒤 이재용 전 전무가 복귀하기까지 과도기적 형태를 띨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 부회장이 그동안 안팎으로 시끄러웠던 삼성전자를 추스르고 나면 본격적인 경영 승계 작업을 펼칠 것이라는 진단으로, 이른바 ‘가교(架橋) 인사’이자 ‘과도기적 집행부’라는 의미다.

이 부회장의 과도기 집행부가 얼마간 유지될 것이냐는 두 가지 변수가 자리한다. 우선, CCO라는 계급장을 떼고 해외에서 백의 종군하기로 한 이재용 전 전무가 어느 정도 가시적인 성과를 낼 것인가다. 특정 소속이 없이 부회장 직속으로 활동하는 이 전 전무는 중국 등 여러 지역을 다니며 해외사업 지원 업무를 맡는다. 이 또한 경영권 승계를 향한 일종의 경영수업이라는 시각이 우세한데, 사실상 해외에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임무를 받은 셈이다. 하지만 ‘e삼성’처럼 일정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안팎의 저항에 내몰릴 수도 있다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또 하나의 변수는 이윤우 체제의 연착륙 여부다. 전임 윤종용 부회장이 강력한 카리스마로 혁신과 변화를 주도했던 데 반해 이 부회장은 평소 차분하면서 화합을 강조하는 타입. 이 때문에 이윤우 경영 스타일이 윤 부회장 체제에 익숙한 삼성전자 시스템에 얼마나 빠르게 접목될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결국 이윤우 부회장으로서는 연착륙을 서둘러야 하면서도, 연착륙 이후 오너 일가의 경영권 승계도 준비해야 하는 딜레마에 서 있는 셈이다. 그룹 내에서 “현 지도부는 이건희 회장의 뜻을 거스를 위험성이 없는 인물”이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