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이윤우는 ‘한국 반도체의 신화’

창업주 이병철 설득, 투자 주도… 이건희 전 회장이 인정한 ‘준 천재’

연매출 1000억 달러가 넘는 삼성전자라는 ‘거함(巨艦)’을 이끌게 된 이윤우 부회장.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뉴삼성 건설의 막중한 책임을 맡았다.

이윤우 부회장의 삼성전자 총괄대표이사 취임은 단순히 삼성그룹 주력 기업의 수장이라는 의미를 뛰어넘는다. 지난 7월 1일 조직 개편으로 사실상 전자소그룹과 금융소그룹으로 재편한 삼성그룹의 한 축을 총괄담당하면서, 투자조정위원회를 통해 사실상 그룹의 새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야 하는 막중한 책임과 권한을 부여받은 것이다. 오너(이건희 전 회장)와 전략기획실이라는 강력한 구심점 대신 느슨한 연합체로 전환한 그룹을 ‘삼성’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묶어내야 하는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계열사 59개에, 딸린 식솔만도 25만 명, 2·3차 협력업체까지 감안하면 100만 명 이상의 ‘밥줄’을 쥐고 있는 무한 책임의 위치인 것이다.

하지만 막중한 권한을 가진 자리에 오른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이윤우 부회장은 그동안 반도체를 비롯한 업무적인 면 외에 매스컴에 노출된 적이 적은 편이다. 성격 자체가 나서기보다는 묵묵히 제 일을 하는 스타일이라 지나온 이력에 비해 그 자취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이 부회장은 1946년생으로, 본적은 경북 월성군 안강읍 안강리지만 실제로는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대구 동덕초등학교와 경북중학교, 경북고등학교를 나온 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이명박 정부 들어 뜨고 있는 ‘신KS’ 계열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 우리 나이로 63세지만 키 180㎝, 몸무게 80㎏의 건장한 체격으로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 담배는 피우지 않고, 좋아하는 운동은 골프로 80대 초·중반 정도의 뛰어난 실력이다. 골프 스타일은 ‘정면승부를 노리는 장타자’로, 지금도 270야드 이상의 드라이버 샷을 구사하며, 벙커나 장애물이 있어도 옆으로 피해가기보다 직접 공략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골프 스타일에서 보듯 잔기술보다 정명승부를 즐긴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워커홀릭, 4년 뒷방 신세 후 화려한 부활
이 부회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반이던 1968년 삼성전관(현 삼성SDI)에 그룹 공채로 입사했다. 이후 1976년 삼성전자 반도체과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반도체와 인연을 맺은 후 삼성의 반도체사업을 일군 주인공으로 손꼽힌다. 삼성반도체통신 이사와 반도체 기흥공장장을 지냈고 1989~1991년 반도체부문 기흥연구소 소장, 1992년 반도체 부문 부사장 등을 역임했다. 전자산업의 불모지인 국내에서 반도체를 만들어 보겠다는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옆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이 부회장에게는 ‘삼성 반도체신화 1세대’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붙는다.

지난 6월 3일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호암상 시상식에서 이재용 전 삼성전자 전무,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이 나란히 입장하고 있다(왼쪽부터). <강윤중 기자>

기흥공장장 시절인 1980년대 중반에는 일본 업체의 덤핑 공세와 반도체 경기침체기에도 과감하게 256KD램과 1메가D램 양산체제를 갖춰 주목받기도 했던 그는 “엔지니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87년 삼성반도체가 처음 흑자를 냈을 때였다”고 말할 정도로 반도체사업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경제단체의 한 임원은 “삼성전자 반도체를 생각하면 64Mb D램의 진대제, 256Mb D램의 황창규 사장 등 스타 CEO가 먼저 생각나지만, 이들 모두 이윤우 부회장이 닦아놓은 기반에서 빛을 발한 것”이라고 전했다.

삼성 반도체 사업이 시련을 겪던 시기엔 이건희 전 회장과 함께 당시 이병철 창업주 설득에 나서 메모리 반도체 투자를 주도했다. 이 전 회장과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30년에 걸쳐 신뢰관계를 쌓았고 이번에 다시 총괄대표에 발탁됐다는 것이 재계의 분석이다. 재계에선 전임자인 윤종용 부회장이 생활가전과 PC 등 세트제품 마케팅에 주력했다면 이윤우 부회장 체제에선 다시 반도체 사업을 위주로 한 기술경영에 무게가 실릴 것으로 보고 있다.

경영자로서 그는 특유의 뚝심과 저돌적인 돌파력이 장점이다. 기흥공장장 당시 별명은 ‘첨단 로켓’. 매일 아침 8시 회의를 직접 주재해 기술 토론을 했고, 주말에도 공장으로 출근했다고 한다. 특히 1983년 삼성은 이 부회장 주도로 기흥에 국내 최초로 VLSI 라인을 건설했다. 선진 경쟁사들이 3년에야 완공한 공장을 단 6개월 만에 건설한 것. 설계와 건설을 동시에 진행한 것이 비결이었다. 연인원 24만 명을 동원했으며 이들은 6개월간 단 하루도 휴일 없이 강행군을 했다. 이 부회장은 당시 야전침대를 놓고 공사 현장에서 살았다고 한다. 특히 진동에 약한 반도체 소재를 들여오기 위해 4시간 만에 4㎞에 달하는 공장 진입로를 포장한 일화는 유명하다.

1996년 이윤우 부회장이 1기가 D램을 개발했을 당시의 모습.

이 부회장의 경영철학은 ‘단순한 게 최고’와 ‘뚱뚱한 고양이론’으로 대변된다. ‘Simple is Best’(단순한 게 최고)라는 그의 신념은 아무리 상황이 어렵고 복잡해도 정확한 판단력으로 핵심을 찾으면 간단하게 해결된다는 것을 말한다.

‘뚱뚱한 고양이론’은 직원 독려용이다. 1990년대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 호황으로 최대 실적을 누렸지만, 이 부회장은 1996년 반도체총괄을 맡은 뒤 당장의 풍성한 음식만 탐닉하면 비만해져 쥐를 잡을 수 없는 ‘살진 고양이’가 된다고 강조했다. 살진 고양이에 ‘금지’를 나타내는 교통신호 표식을 겹친 모양의 그림은 1996년 한 외국 협력업체와 회의하면서 “삼성전자가 팻캣(Fat Cat)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말을 들으며 대화 중 그가 손수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은 한동안 삼성전자 곳곳에 걸렸다고.

이건희 회장은 이런 그를 가리켜 ‘천재’라는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진대제 전 정통부 장관, 이번 인사에서 삼성전자 기술총괄로 옮긴 황창규 사장과 함께 이 부회장에 대해 이 회장은 “삼성에는 아쉽게도 천재는 없지만 준천재는 3명 있다”고 무한 신뢰를 보낸 바 있다.

하지만 그도 시련을 겪었다. 1996년부터 8년간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면서 ‘포스트 윤종용’ 1순위로 꼽혔지만 2004년 대외협력담당 부회장이 되면서 반도체 사업을 황창규 사장에게 내준 뒤 핵심에서 밀려났다는 평가를 받은 것. 하지만 그는 ‘뉴삼성’의 방향키를 거머쥐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화합형 리더, 다양한 인맥이 강점
이 부회장은 평소 온화한 성격으로 회사 임직원들을 감싸고 융합하는 능력이 뛰어난 ‘화합형 리더’로, 특정 인맥으로 분류되지도 않고 삼성전자는 물론 그룹 내에서도 두루 신망이 높은 편이다. “항상 아래위 얘기를 경청하는 스타일이고 중요한 일에는 변함없는 관심을 쏟고 도와주는 상사였다”는 게 진대제 전 장관의 평이다.

이윤우 부회장의 아내인 최형인 한양대 연극영화과 교수. 현재 한양레퍼토리 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다양한 인맥이 돋보인다. 특히 대외협력담당 부회장을 맡으면서 국내외 고위 인사와 많은 인연을 쌓았다. 정계에서는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 눈에 띈다. 이 의장과는 경북고(46회, 1965년 졸업) 동기동창이다. 경북고는 당시 우수한 인재가 몰린 명문고여서 재계와 정계에 진출한 인물이 많다. 국내 비뇨기과 일인자로 통하는 김세철 중앙대 의료원장(의무 부총장)도 고교 동기.

사적인 모임으로는 이 부회장 스스로 ‘4인방’으로 부르는 골프 친구가 있다. 경북고 동기로, 김태훈 전 동양제철화학 감사와 정해왕 전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소장, 곽혜근 HK한국광유 대표다. 삼성 내부를 보면 윤종용 전 부회장이 이 부회장의 서울대 전자공학과 3년 선배이며, 진대제 전 장관은 같은 과 후배고 황창규 기술총괄 사장과 권오현 반도체총괄 사장은 과(전기공학)는 다르지만 서울 공대 후배들이다.

2007년 건강보험료 납부 실적과 기타 자료를 통해 추산한 이윤우 부회장의 연봉은 141억 원. 윤종용 전 총괄대표(253억 원), 이기태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부회장(141억6000만 원)에 이어 그룹 내 3위지만 이건희 전 회장(120억 원), 황창규 삼성전자 기술총괄 사장(106억 원), 이학수 고문(102억 원)보다 많았다.

그러나 평소 생활은 검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골프 또한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과는 잘 만나지 않으며, 고교 동기모임도 강남의 칼국수 집 한 곳에서만 10년 넘게 더치페이로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005년 회갑잔치도 가까운 동료들만 불러 식당에서 조촐하게 치렀다. 기흥공장장이나 연구소장 시절에도 늦게까지 일한 사람과 함께 퇴근할 때면 소주와 삼겹살을 먹고 헤어졌다고 한다. 일할 때는 바짝 조였다가 일이 끝나면 확 풀어주는 스타일인 셈이다.

이 부회장은 삼환그룹 창립자인 최종환 명예회장의 셋째형으로 지금은 고인이 된 최경환 전 경동산업 회장의 장녀와 결혼해 1남2녀를 두었다. 부인인 최형인 한양대 연극영화과 교수(극단 한양레퍼토리 대표)는 이영애, 유오성, 설경구, 이정재 등 국내 최고의 배우들을 길러낸 배우 조련사로 유명하다. 지난해 개봉해 큰 인기를 끈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에 우정출연하기도 했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