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삼성전자맨 이렇게 만들어진다

교육과정만 수십 개 ‘교육의 천국’… 복리후생도 국내 최고

삼성전자 직원들이 본사에 들어서고 있다. <강윤중 기자>

“글로벌 경쟁시대에 대비해야 합니다. 국가별로 전문가를 키우기 위해 지역전문가 제도를 검토해주세요.”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1993년 한 회의석상에서 ‘지역전문가 제도’ 도입을 지시했다. 지시가 떨어지자 비서실은 곧바로 보고서 초안을 마련했다. ‘앞으로 10년간 매년 50명씩 해외 파견’이 골자였다. 보고를 받은 이 전 회장은 “이것 가지고 되겠느냐. 매년 500명씩 보내라”고 재차 지시했다. 일부에서 이런 걱정을 제기했다.

“1년에 계열사별로 그 많은 인력이 나가면 업무가 제대로 되겠느냐” “중국, 러시아 같은 경우는 최대 5만 달러 이상 지원해줘야 하는데, 이런 큰돈을 들여 키워놓은 인재가 회사를 떠나면 어떡하나.”

이런 문제제기에 이 전 회장의 답변은 단호했다. “어차피 떠나도 한국에 있을 텐데 국가에 기여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런 걸 두려워하면 아무도 인재교육을 못합니다.” 이렇게 해서 시작한 해외 지역전문가 제도는 삼성을 대표하는 글로벌 인력 양성 시스템으로 자리했다.

1년 해외여행 후 지역전문가로
삼성전자에 입사한 신입사원은 입사 3년 이후부터 지역전문가 후보 자격을 얻는다. 과거엔 주로 과장·차장급에서 지역전문가가 나왔지만 최근엔 입사 3년차 이상 평사원과 대리급이 지역전문가로 활약하고 있다. 해외 지역전문가 제도는 1년간 본인이 원하는 국가에서 생활하는 제도다. 1년 동안 해당국 곳곳을 자유롭게 여행하고 현지인과 교류하고 문화를 체험한다는 측면에서 주재원과 다르다.

해외 지역전문가와 함께 삼성전자를 대표하는 인재양성제도는 MBA과정(총 2년)이다. 국내 주요 대학에서 MBA과정을 밟은 뒤 해외 대학에서 6개월~1년간 MBA과정을 이수한다. MBA과정도 과거엔 주로 차장급에서 선발했으나, 최근 들어 과장·대리급으로 낮아지는 추세다.

삼성전자는 두 제도 외에도 다양한 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우선 삼성전자에 입사하면 용인 등지의 연수원에서 다른 계열사 신입사원과 함께 4주간 교육을 받는다. 4주 교육이 끝난 후엔 2주 동안 삼성전자 자체 신입사원 교육이 진행된다.

현업에 배치된 이후에도 교육은 계속된다. 과장급 이상이 대상인 리더십 교육, 핵심 기반기술에 대한 지식 향상이 목적인 첨단기술 과정, 인사·기획·재무·구매·마케팅·품질 등 직무별 최고 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한 직능 전문가 교육, 주재원 양성 과정, 미래 해외 법인장 양성 과정 등 수많은 교육제도가 마련돼 있다. 삼성전자가 ‘교육의 천국’으로 불리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답게 삼성전자는 직원들의 복리후생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삼성전자 신입사원은 보통 2000만~2500만 원의 연봉을 받는다. 여기에 PS(초과이익분배금)와 PI(생산성장려금)를 더하면 신입사원이 받을 수 있는 연봉은 최대 4000만 원대에 달한다.

입사 20년차 부장급 기본 연봉은 대략 6000~7000만 원선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이 A급 PS와 PI를 타면 연봉이 무려 1억 원을 넘는다. 꼭 A급이 아니더라도 삼성전자 부장들은 평균 8000~9000만 원 수준의 연봉을 받는다.

기타 복리후생제도도 타기업의 부러움을 산다. 직원 본인은 물론 배우자까지 정기 건강검진과 의료비를 지원한다. 임직원 자녀가 심장병을 앓고 있다면 수술비 전액을 지원한다. 백혈병의 경우는 1인당 2000만 원 이내에서 지급한다.

개인연금 지원 제도도 관심을 끈다. 삼성전자는 모든 임직원의 노후생활 안정을 위해 전년도 소득의 3% 이내에서 개인 부담금을 지원한다. 이밖에 국내외 대학에 재학 중인 임직원 자녀 학자금을 전액 지원해주고 에버랜드와 캐리비안베이, 호텔신라 등 휴양지 사용 시에도 다양한 혜택을 주는 등 국내 최고의 복리후생제도를 자랑한다.

국내외 대학서 2년간 MBA 과정
그러나 이런 ‘교육의 천국’에서 피말리는 경쟁은 불가피하다. 경쟁을 뚫고 삼성전자에 입사했어도 더욱 치열한 경쟁을 거쳐 극히 일부만 별(임원)을 단다. 삼성전자는 해마다 3500~4000명 정도의 신입사원을 뽑는다. 아직 정확한 통계는 나와 있지 않지만, 이 가운데 끝까지 살아남아 임원이 되는 비율은 4~5%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진다.

해외 지역전문가·MBA 과정은 삼성전자 인력 양성의 핵심이다. 삼성 본사 로비 전경. <우철훈 기자>

그렇다면 어떤 인재가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삼성전자가 추구하는 인재상은 한마디로 ‘창의적 인간’이다. 창조적인 능력과 글로벌 역량, 끊임없는 탐구욕, 따뜻한 가슴의 소유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의 한 고위 임원은 “과거 이병철 회장 때 인재상은 정통 엘리트였다. 지식으로 무장하고 이성적·합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며 “반면 이건희 시대로 넘어오면서 다소 엉뚱하더라도 꿈을 꿀 수 있는 천재가 이상적인 인재상으로 자리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수근 삼성인력개발원 부원장은 “과거 2등일 땐 1등을 벤치마킹해서 따라잡으면 됐지만 여러 부문에서 세계 1등자리까지 올라선 지금은 더 이상 벤치마킹할 대상이 없다”며 “이젠 스스로 길을 열어가야 하고 이를 위해 창조적 발상이 필요한 만큼 5년 후, 10년 후를 조망할 수 있는 천재적 인재가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천재론과 함께 삼성전자 인재상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기술’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단서가 붙는다. 창의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 기술자여야 한다. 삼성 고위 임원을 지낸 한 원로인사의 얘기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을 보세요. 엔지니어 출신이지만 전자업계를 꿰뚫을 줄 아는 사업감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죠. 단순한 기술자라도 전체를 조망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중용될 수 있습니다.”

지난해 삼성전자 임원 승진자 219명 가운데 이공계 출신은 무려 152명(69%)이었다. 해가 갈수록 ‘이공계 우대’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다. 그들은 대부분 창의적 생각을 갖춘 이공계 출신이다.

남기현<매일경제 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