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도시 이미지 읽기]또 하나의 욕망 ‘육체’

모두가 스펙을 쌓는다. 모두가 원룸이나 고시원에서 웅크리고 살면서 피나는 노력을 한다. 그렇게 해도 이 세상은 너무도 가혹하게 선별한다. 그러니, 서로 격려해야 하지 않는가. 그런 까닭인지, 팽팽한 에너지와 공격적인 메시지로 일관했던 젊은 육체에 대한 이미지가 부드러워지고 또 다양해졌다. 경인로 고척동의 어느 버스정류장에 내걸린 광고 이미지가 그런 심성의 변화를 일면 보여준다.

오랫동안 길 위에서 서성거렸다. 슬픔과 애도의 해, 지난 갑오년에도 나는 길 위에서 시간을 보냈다. 제주도에서 철원까지, 순천에서 인천까지, 울산에서 서울까지 많은 길들을 보았다. 길 위에 펼쳐진 이 시대의 욕망들, 언어들, 목소리들, 그 삶의 무늬들을 가까이서, 혹은 멀리서, 지켜보았다. 길 위에는 바스라진 욕망들이 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욕망들은 내가 자주 이용하는 서울 서부지역의 경인로에서 늘 볼 수 있었다. 국철 1호선을 따라 구로역을 지나 오류, 온수 거쳐 부천, 인천으로 흘러가는 이 경인로의 주변에서, 나는 이 한반도의 갑오년에 흘러넘친, 피가 고이고, 상처가 파이고, 고름이 묻은, 그 욕망들을 보았다.

상징적 사망선고처럼 서 있는 모델하우스
지난해 내가 마주쳤던 가장 큰 욕망은 역시 ‘집’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부동산이었고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파트를 둘러싼 욕망의 쟁투였다. 이 문제에 관하여 정부는 쉴 새 없이 대책을 내놓았고 그 대책들은 곧 새로운 대책들에 의해 무효가 되었으며 새로 제출한 대책 또한 이렇다 할 구실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래서 집 있는 사람도 걱정이었고 집 없는 사람은 불안에 시달렸다. 웬만한 대로변이면 어김없이 아파트를 ‘폭탄 세일’한다는 현수막이 일제히 나붙었는데, 그 행렬은 끝도 없어서, 나는 서울의 남부순환로와 세종시와 여수시에서도 어김없이 보았다.

나는 집을 둘러싼, 아니 집이라기보다는 시세에 따라 울고 웃는 이 시한폭탄 같은 부동산 문제의 어떤 상징적 불안감을 오류역과 온수역 사이, 경인로의 쓸쓸한 도로변에서 꽤 오랫동안 버티고 있던 모델하우스를 통해 여러 차례 확인했다. 그 모델하우스는 2년여 전부터 텅 비어 있었고 급기야 쌀쌀한 겨울에 들어 철거가 되었다. 철거작업이 진행되던 날, 나는 얼기설기 지어진 그 모델하우스의 내부를 보았다. 집, 아니 부동산에 대한 이 시대의 부글부글 끓어오른 욕망에 대한 어떤 상징적 사망선고처럼, 그 모델하우스는 앙상한 뼈대로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지난해, 내가 마주쳤던 또 하나의 욕망은 ‘육체’였다. 하긴 육체에 대한, 싱싱한 육체에 대한, 늙거나 병들지 않은 젊은 육체에 대한 욕망은 어느 시대나 동서의 고금을 막론하고, 유사 이래 면면히 내려온 전통이건만, 특히 지난해는 그 양상이 다양했다.

지난 몇 해 동안 우리 사회를 강타했던 ‘걸그룹’이나 ‘보이그룹’ 현상은 젊고 싱싱한 육체에 대한 일방적 찬사와 선호였다. 물론 그것은 아름다운 육체에 대한 피상적인 환호가 아니라 그와 같은 육체, 곧 모든 것이 가능할 듯한 강력한 에너지와 매끈한 힘에 대한 사회적 갈망이 묻어 있는 것이었는데, 지난해는 그와 더불어 좀 더 애틋한 갈망, 부드러운 손짓, 서로의 이름을 불러보고자 하는 힘들이 엿보였다.

예컨대 몇 해 전만 해도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대규모 스포츠 대회에서 순위권에 들지 못하거나 메달 색깔이 맘에 들지 않으면 거칠게 비난을 했었다. ‘스포츠 강대국’ 때문에 피해를 봤다는 거친 주장도 많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런 기세는 수그러들었다. 동메달이라 해도 세계에서 세 번째로 잘한 것이며 순위권 밖이라 해도 어쨌든 국가 ‘대표’ 아닌가. 종이 한 장 차이로 순위가 판가름나는 그 높은 대열에 포함되었다는 것만 해도 대단하지 않은가. 이러한 생각이 퍼졌다. 그것은 사회 심리의 변화 때문이었다.

경인로 도로변 버림받은 추모의 깃발들
모두가 노력을 한다. 모두가 스펙을 쌓는다. 모두가 원룸이나 고시원에서 웅크리고 살면서 피나는 노력을 한다. 그렇게 해도 이 세상은 너무도 가혹하게 선별한다. 탈락자는 돌아보지도 않는다. 어쩌다 발탁되었다 해도 계약직이요 비정규직이다. 그러니, 서로 격려해야 하지 않는가. 그 정도만 해도 어딘가. 그런 까닭인지, 팽팽한 에너지와 공격적인 메시지로 일관했던 젊은 육체에 대한 이미지가 부드러워지고 또 다양해졌다. 경인로 고척동의 어느 버스정류장에 내걸린 광고 이미지가 그런 심성의 변화를 일면 보여준다.

무엇보다 갑오년은 죽음으로 시작되고 또한 그것으로 마감되는 비참한 한 해였다. ‘비정상을 정상화’하겠다는 이 정부에게서 우애와 온정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공적 책임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다. 재난이 문제가 아니었다. 사고가 문제가 아니었다. 예산도 문제가 아니었고, 이른바 동북아 정세니 글로벌 경제위기니 하는 빛바랜 말들도 결코 문제가 아니었다.

정윤수의 도시 이미지 읽기

문제는 이 국가의 차디차고 냉정한, 거의 인격 상실에 가까운 냉혈한 사태에 있었다. 죽음을 경시했다. 죽은 자를 수치로 환산했다. 그와 관련된 각종 수치는 다 틀렸거나 조작되었다. 살아남은 자들에게 모욕을 줬다. 비통해 하는 자들을 격리시켰다. 저 높은 곳에서, 국가는, 대통령은, 죽음을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그리하여 비통한 죽음은 결국 사회적 죽음이 되었고 역사적 죽음이 되었다. 차디찬 겨울, 경인로 도로변에 나붙은 추모의 깃발들은 우애를 구하였으나 거절당하고, 존중을 원했으나 차디차게 버림받은 사람들을 겨우 기억하고 있었다.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