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칼럼]‘전자 정부’ 1위, 그러나 ‘열린 정부’는 30위

행정이 ‘서비스’의 일종이라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민주사회에서 정부가 시민의 입장에서, 시민의 편의를 봐줘야 한다는 말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당위론이 얼마나 현실에서 적용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정부가 곧 기업은 아니고, 기업의 역할을 수행하기에도 어려움이 많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고객은 한 기업의 서비스가 맘에 들지 않으면 쉽게 다른 기업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시민은 자기 정부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쉽게 국적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고객에 비해서 시민은 공급자에게 불리한 입장에 있다.

따라서 행정이 서비스가 되려면, 즉 고객 편의에 맞춘 품질 개선과 비용 절감을 위해선 행정 서비스의 품목을 늘리는 것 못지 않게 시민 권리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며 정보경제학의 거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정부의 ‘투명성’, 혹은 시민의 ‘알 권리’가 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민들이 정책 입안과 실현 과정에 대해 더 깊게 알 수 있고, 예산이 어떻게 편성되고 집행되는지에 대해 더 쉽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면, 정부라는 ‘대리인’이 시민이라는 ‘주인’의 눈을 피해 자신만의 이익을 극대화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투명하지 않은 정부, 자신의 과거 행적을 공개하지 않는 정부는 지난 경험을 돌이켜보고 배우려는 자세가 없는 정부다. 물론 정부가 잘못한 걸 공개하면 시민들의 불만만 증가하고, 그래서 사회 혼란이 가중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그런 혼란의 비용보다 잘못한 걸 덮어두고 지나갔을 때 똑같은 잘못이 반복돼서 나타나는 비용이 더 크다. 나아가 민주사회에서 정치는 통제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시민의 불만은 고객의 피드백과 같다. 기업이 고객의 피드백을 듣고 서비스의 품질을 개선하듯이, 정부는 시민의 불만을 생산적으로 수용하면서 행정 서비스를 개선할 수 있다.

한 시민단체 회원이 청와대를 배경으로 정부의 행정정보를 공개하자는 취지의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앞으로 화두가 될 디지털 정부는 정부의 행정 서비스를 온라인으로 접근해서 이용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예를 들어 한국은 2010년 이래 유엔 전자정부지수 순위에서 1위를 기록해왔다. 온라인 서비스 지수에서 1위를 기록한 건 칭찬할 만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런 순위는 행정 서비스의 질을 ‘편의성’이라는 기준, 즉 얼마나 쉽고 빠르게 쓸 수 있느냐는 관점에서만 평가한 것이다. 앞서 설명한 정부의 투명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국의 디지털 정부는 얼마나 자신이 갖고 있는 데이터를 시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공유하는 정부인가?

오픈 놀리지 재단이 2013년 10월 발표한 오픈 데이터 인덱스에 따르면 한국은 ‘전자 정부’가 아닌 ‘열린 정부’의 순위로 봤을 때는 전 세계 30위권이다. 한국과 전체 점수에서 비슷한 점수를 받은 국가 중에는 러시아, 에콰도르와 같은 나라가 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올해 초엔 시민의 금융정보가 대량 유출되는 보안사고가 또다시 발생했다. 정부의 데이터는 접근하기 어렵고 시민의 데이터는 접근하기 쉬운 나라는 디지털 선진국이 아니다.

IT 칼럼 구독

한국의 디지털 정부는 전자정부에서는 앞장섰을지 모르겠지만 열린 정부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나아가 행정이 서비스가 되기 위한 핵심적인 문제는 행정 서비스를 온라인을 통해 쉽게 이용하는 것만이 아니다. 디지털 선진국으로 가고자 한다면 시민이 행정에 관해 알고 행동할 수 있는 권한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길이다.

김재연 <누가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죽이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