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도시 이미지 읽기]누구도 자유롭지 못한 위험과 공포

어디 거대한 유람선뿐이랴. 수많은 교통 수단들, 에너지 시설들, 얼핏 견고해 보이는 도시의 구성물들 모두가 위험해 보인다. 꼬마 아이들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과도한 경쟁과 극단의 소외에 내몰려 있으니 공포 또한 일상화되어 있다. 그리고 슬픈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신호등은 제때 바뀌지 않고, 그리하여 나는 물끄러미 차창 너머를 응시하고 있었다. 제법 큰 도시의 혼잡한 네거리라서 원하는 신호를 간발의 차이로 놓치게 되면 한 5분쯤 서 있어야 한다. 차창을 내리고 바깥을 보는데 새 단장을 하는 모델하우스가 눈에 들어왔다.

그 부지의 정확한 용도를 알 수는 없는데, 대체로는 모델하우스였다가 더러 주차장으로 쓰이곤 했다. 어딘가에 대규모 아파트 분양과 공사가 벌어지면 어김없이 그 장소는 근사한 모델하우스로 변했다. 그렇게 몇 달 분양 영업을 하다가 때가 되면 허물어버리고 얼마 동안은 임시 주차장으로 변한다. 지난해 봄에 깔끔하게 철거되어 한동안 주차장으로 쓰였는데 이제 막 새 아파트 분양을 위해 모델하우스 ‘설치’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건축’이 아니라 ‘설치’라고 한 것은 모델하우스가 건축법상 가설건축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그 존치기간은 2년 이내로 한정되어 있다. 하지만 비단 이런 행정사항 때문에 ‘설치’라고 쓴 것만은 아니다.

지난해 4월 경기도 고양시의 한 모델하우스가 철거되고 있다. / 정윤수

일주일 뒤 모델하우스 부지는 임시 주차장으로 사용됐다. / 정윤수

설치미술 같은 모델하우스 설치 작업
작년 이맘때, 한창 철거가 진행 중인 모델하우스를 며칠 간격으로 주목한 적이 있었는데, 번화가로 향한 정면의 화려한 사진과 요란한 조감도를 뜯어내자마자 빈약해 보이는 목조가 한번에 드러나고 또 그로부터 하루 이틀 지나자 그 화려했던 모델하우스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흡사 어느 야심만만한 설치미술가가 우리의 허약하고 공허한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고 벌인 설치미술 작업처럼 보였다. 물론, 세월호 침몰사고 때문에 지금 내 앞에 설치되고 있는 모델하우스가 본래의 용도와 달리 부박한 상징성으로 도드라져 보인다는 점도 부인할 수는 없다. 언젠가 부수거나 사라질 신기루 같은 희망의 약속을 위해 지금 내 눈앞의 모델하우스는 뼈대를 갖추고 외장을 더해가면서 조금씩 부풀어 오르고 있다.

큰 사건을 겪고 나면 의식마저 변하게 된다. 당장은 세월호의 유가족들, 그리고 생존자와 그 가족들, 교사들, 친구들 등이 직접적으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겪게 되겠지만 그 참사를 지켜본 이 한반도의 모든 사람들 마음속에도 시커먼 구멍이 뚫렸고, 언젠가 이 내상은 이 국가와 사회에 대한 예기치 못한 인식의 변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지난 2007년,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IMF 사태’ 이후의 사회심리 변화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 무렵 비록 소득수준 2만달러의 OECD 회원국이 되었음에도 IMF 위기가 끼친 영향은 실로 막중하여 유난히 심리적 불안과 사회적 불신이 크게 팽배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의 조사는 IMF사태와 그 이후의 경제위기, 환경 재앙, 청년실업, 부동산 가격 불안, 양극화, 사회 각 분야의 비정규직화 등에 의하여 육체적인 건강의 악화와 함께 만성적인 신경증과 우울증이 높아졌고, 특히 기존의 지배적 가치관에 대한 불신 또한 두드러졌음을 보여준다. 2007년의 이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10명 중 겨우 3명만이 중산층 귀속감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이 수치는 훨씬 더 낮아졌을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 측면에서 틀림없이 중산층에 소속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재난, 교육, 불신 등 여러 사회적 요소에 의한 심리적 불안은 더 심해졌을 것으로 보인다.

“공포란 곧 불확실하다는 것, 위험의 정체를 모른다는 것, 따라서 그것에 대처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라고 지그문트 바우만은 말했다. 여기서 ‘공포’는 괴기영화의 오싹한 즐거움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안개처럼 번져 있는 사회적 불안이다. <유동하는 공포>에서 바우만은 “인간은 공포 없는 삶을 살 수 없고, 유동적 근대의 환경은 도처에 위험과 위협을 깔아놓았다. 이제 일생 전체가 공포, 어쩌면 끝끝내 물리치지 못할 공포와의 길고도 헛된 싸움이 되어버렸다. 또한 우리의 삶은 우리를 공포에 빠뜨리는 진짜 또는 추정상의 위험과의 싸움이 되어버렸다. 인생이란 끝없는 수색정찰의 과정, 그리고 임박한 위험에서 일시적으로나마 피할 수 있는 다양한 전략과 대책을 시도하는 과정”이라고 썼다.

‘유동하는 공포’와의 길고도 헛된 싸움
나는 그동안 바우만의 이러한 언술을 ‘사회학적 묵시록’이라고 생각해왔다. <유동하는 공포>, <액체 근대>, <쓰레기가 되는 삶들> 등을 읽으면서 저 2차대전의 야만과 극단적인 인간 소외와 미증유의 ‘위험사회’까지 거쳐온 유럽의 노학자가 21세기를 과도한 묵시록으로 묘사함으로써 오히려 ‘묵시록적 풍경에 따른 자책감과 무력감’(수전 손택)을 일으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왔다. 그가 말하는 ‘위험과 공포’, 즉 지금 인류가 전대미문의 무차별적인 위험상태에 직면했으며, 그 위험은 ‘특별한 보호구역’을 설정할 수 없는 탈지역화, 모든 계급과 계층을 위협하는 탈계급화, 그것의 피해 정도와 복구 정도를 추정하기 어려운 계산 불가능화로 치닫고 있다는 주장을 이해하기는 쉬웠으나 차마 승인하기는 어려웠다.

그랬는데, 이제는 승인하지 않을 수 없다. ‘위험과 공포’는 곳곳에 만연해 있고, 누구도 그 덫에 걸려들 수 있는 랜덤의 상황을 우리는 살고 있다. 어디 거대한 유람선뿐이랴. 수많은 교통수단들, 에너지 시설들, 얼핏 견고해 보이는 도시의 구성물들 모두가 위험해 보인다. 꼬마아이들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과도한 경쟁과 극단의 소외에 내몰려 있으니 공포 또한 일상화되어 있다. 그리고 슬픈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정윤수의 도시 이미지 읽기

신호등이 바뀌었고 이번에는 나의 행렬에게 푸른 신호등이 주어졌다. 실제로는 몇 달 동안 버티는 데 끄떡없겠지만, 그래도 한창 공사 중이라서 그런지, 모델하우스의 목조들은 허술해 보였고, 나는 흡사 우리네 삶과도 같은 그 임시 가설물을 뒤로 하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