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획]바다 속 생물 얼마나 아세요?

어린이·청소년책 100선 /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현산어보를 찾아서 1-5><바다생물 이름 풀이사전>

얼마 전 뉴스에서 수십 마리의 돌고래 무리가 여객선 주위에서 멋진 점프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여객선에 승선한 사람들은 들뜬 모습으로 바다에서 이런 경이로운 모습을 볼 수 있게 된 것을 행운이라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정말 그 장면은 텔레비전으로 보는 사람까지 탄성을 터뜨리게 했다. 수온이 따뜻해지고 멸치와 정어리 등 먹이가 많아져 고래가 자주 보인다는 선장의 말을 들으니 ‘올해는 꼭 바다에서 고래를 봐야겠다’ 하는 마음이 일었다. 바닷물 속에는 얼마나 많은 종류의 생물이 살고 있는 것일까.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손택수 지음·정약전 원저·아이세움)는 약 200년 전 정약전이 지은 <자산어보>를 시인인 작가가 산문 형식으로 풀어낸 책이다. 모두 다섯 장으로 구성됐다. 도입부에서는 정약전이 누구인지, 흑산도로 유배를 가게 된 원인은 무엇인지와 동생인 정약용과 나눈 편지 내용 등을 짧게 이야기한다. 이어 <자산어보>의 공동 저자로 보아도 손색이 없는 장창대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정약전이 죽은 뒤 어느 묘지기의 벽지로 사용돼 사라질 뻔한 <자산어보>를 찾게 된 이야기와 이것을 필사하면서 주를 단 강진 출신인 정약용의 제자 이청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동양화와 서양화 전공자인 이부록, 임연기씨가 작업한 그림은 글을 읽는 동안 지루하지 않도록 해 주는 것을 넘어 그림만으로도 충분한 즐거움을 준다.

<자산어보>의 방대한 내용을 230쪽으로 간추렸지만 허술한 부분 없이 알차다. 부록으로 <자산어보>에 나오는 바다생물 목록을 넣었다. 책을 덮고 나면 ‘정말 정약전은 이 많은 바다생물을 관찰하고 기록으로 남겼을까?’ ‘장창대는 실존 인물인가’하는 의문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이 질문에 답을 줄 책이 있다.

흑산도 주민의 이야기 담아
<현산어보를 찾아서 1-5>(이태원 글·박선민 그림·청어람미디어)>는 ‘자산’을 ‘현산’이라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글을 시작한다. 직접 흑산도로 가서 지역 사람들에게 도움을 얻어 원문의 바다생물 이름과 그것의 지역 방언은 무엇인지 풀어냈다. 정약용과 정약전 형제의 우애를 알 수 있는 편지글을 자세히 실으면서 원문의 글과 그림, 실제 물고기의 세밀화를 함께 구성해 볼거리가 풍부하다.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가 <자산어보>에 대한 흥미를 심어 주는 책이라면 <현산어보를 찾아서 1-5>는 내용을 역추적해 ‘현산어보’의 실체를 파헤친 책이다.

각 권은 ‘200년 전의 박물학자 정약전’ ‘유배지에서 만난 생물들’ ‘사리 밤하늘에 꽃핀 과학정신’ ‘모래섬에서 꿈꾼 녹색 세상’ ‘거인이 잠든 곳’ 등 소제목으로 200년 전의 흑산도와 현재의 모습을 함께 담아낸다. 흑산도 구석구석을 다니며 지역주민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자료를 찾으면서 정약전의 흔적을 찾아다니던 작가는 장창대의 묘를 찾아내 창대가 실존인물임을 밝혀 낸다. ‘현산어보’의 내용만을 담은 책이 아니라 하나의 기행문 또는 도감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다.

<바다생물 이름 풀이사전>(박수현 지음·지성사)은 ‘이 생물이 왜 이런 이름을 갖게 됐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 보면 좋다. 어류, 연체동물, 절지동물, 자포동물, 극피동물, 포유동물, 해조류, 파충류, 기타로 나누어 다양한 생물사진과 그에 얽힌 이야기(도루묵이 된 은어 이야기 등), 생물의 습성과 특징들을 알려 준다. 컬러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책이다.

2007년 12월 해상크레인이 유조선과 충돌해 깨끗한 서해 앞바다에 원유를 쏟아낸 허베이스피리트 호 사고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 움직이지 못하던 기억이 난다. 기름으로 범벅이 된 바위며 모래밭, 날지 못하는 갈매기를 보고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행히 지역주민과 많은 자원봉사자 등 온 국민이 힘을 합해 복구한 덕에 지금은 바다생태계가 점점 복구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4월 20일 오후 9시 45분(미국시간) 디프워터호라이즌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이번에는 유조선이 기름을 유출한 것이 아니라 유전을 뚫고 있는 시추 시설이 망가져 원유가 새고 있다는 것이다. 하루에 190L에서 300L나 새어 나오는 것으로 추정한다는 소식에 무서움을 느끼며 많은 책에 소개된 바다생물을 우리 후손은 볼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됐다.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자연을 보호하고 아끼는 것에 신경을 써야 하지 않을까?

배수진<대림중 사서교사>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의 작가 손택수씨
“자산어보는 당대 인문학의 보고”

“<자산어보>는 단순한 어류도감이 아니라 실학정신을 담은 당대 인문학의 보고입니다.”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의 작가인 손택수씨는 <호랑이 발자국> <목련전차> 등 두 권의 시집을 낸 유명 시인이다. 그는 현재 실천문학사 주간으로 일하고 있으며, <바다를 품은 책…>는 그가 ‘전업 시인’이던 2006년에 낸 작품이다. 일종의 아르바이트였지만 그가 이 책에 쏟은 정성과 글을 쓰면서 얻은 감흥은 무척 크고 소중한 것이었다.

“어린이·청소년에게 고전을 알기 쉽게 소개하는 고전읽기 시리즈였는데 처음에는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청탁 받았어요. 그러나 <목민심서>는 아주 잘 알려진 작품이어서 정약전의 <자산어보>를 하겠다고 했지요.”

당시는 고등학교 교사 이태원씨의 <현산어보를 찾아서>가 출간되면서 <자산어보>가 맞냐 <현산어보>가 맞냐는 논쟁이 진행되던 때이기도 했다. 손 시인은 ‘현산’이란 미묘한 어감에 끌려 흑산도를 찾았다. ‘자산’이나 ‘현산’은 둘 다 커다란 검은 물고기가 배를 향해 아가리를 벌린 것 같은 흑산도의 모습을 가리키는 말로, 한자(玆山)는 같지만 음독 방식을 놓고 두 가지 설이 대립했다.

“천주교도인 정약전(1758~1816)은 신유사옥(1801) 때 흑산도로 유배돼 그곳에서 생을 마칩니다. 그는 배덕자로 알려졌지만 <자산어보>를 보면 그가 천주교의 사상체계를 끝까지 존중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작가가 흑산도로 취재를 갔을 때 주민들은 정약전이 마을 아이들에게 실학과 천주학을 가르쳤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정약전이 자신의 시중을 들던 흑산도 소년 장창래의 도움을 받아 집필한 <자산어보>는 흑산도 주변의 물고기 200여 종에 대해 기록한 일종의 물고기 백과사전이다. 정약전의 사후 낱장씩 뜯겨 벽지로 사용됐으나 당시 강진에 머물던 정약용의 제자인 이청이 책의 가치를 알아보고 복원하면서 <산해경> 등을 참고해 주석을 달았다.

“<자산어보>를 보면 실학자로서의 과학적 태도뿐만 아니라 문학적 상상력이 무궁무진합니다. 당시 바다는 육지의 문화·문명·제도·권력과 중화주의에 의해 배제된 타자가 결집된 장소란 상징성을 지니지요. 바다 생물에 대한 풍부한 묘사에서 변방으로 밀려난 자(정약전)의 자기 신념을 느낄 수 있어요.”

그 가운데 상징적인 대목이 오징어 먹물이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오징어 먹물을 붓에 찍어 글을 쓴다고 했는데 이는 정약용의 <탐진농가첩>에도 나오는 내용이다. 오징어 먹물 글씨는 쓴 지 일 년쯤 지나면 말끔히 부스러져 없어지지만 이 종이를 바닷물에 넣으면 글자가 되살아난다. 손 시인은 “대단히 시적인 느낌”이라면서 “실학자들의 사상이 당대에 억압당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 가치를 재발견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문화기획

작가는 <바다를 품은 책…>를 쓰면서 원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김명수·이형기·장옥관 등 현대 시인들의 시 다수를 인용했다. 또 정약전이 동생 정약용과 주고받은 시, 정약전의 다른 산문들도 끌어왔다. 그는 “정약전의 ‘산해경’적 판타지로부터 많은 시적 자극을 받았다”면서 “인간에게 끊임없이 베풀기만 하는 바다에 빚을 갚는 심정이었다”고 집필 과정을 설명했다.

한윤정 기자 yjha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