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책갈피]신세대와 여성의 유쾌한 반란

미래를 여는 한국인史 정치사회편·경제편

박세길 지음 | 시대의창 펴냄

미디어 공존 시대의 주역인 온라인 매체에 가장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열정을 보인 것이 바로 신세대, 그 중에서도 여성이었음은 저자의 논리를 강화시킨다.

미국의 양심으로 불리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노엄 촘스키 교수에게 물었다. “교수님께서는 바람직한 발전의 모델을 보여 준 나라가 현실 세계 가운데 어디라고 보십니까?” 교수가 답했다. “한국입니다. 한국 국민들은 제국주의 식민 지배를 딛고 일어나 다른 나라에 종속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경제 발전을 이루면서 동시에 독재정권에 항거해 평화적인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이룩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휴대전화와 인터넷 보급률을 자랑할 정도로 첨단기술이 온 국민들에게 퍼졌고, 2002년에는 네티즌의 힘으로 개혁적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선출할 정도로 풀뿌리 민주주의가 발전했습니다.” 우리 현대사다. ‘한국인史’다.

학교에는 ‘국사’가 있었다. 오로지 사지선다형에서 정답을 찍기 위한 객관식 수험용이었다. 사법시험 1차 시험에 한국사가 있었다. 이번엔 오지선다형. 난이도가 조금 강화된 것 빼고는 똑같았다.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역사에 대한 지식은 달아났고, 역사의식은 맹목이었다.

초등학교 때나 대학교 때나 한국사의 시작은 늘 선사시대였다. 타제·마제석기와 각종 토기를 구분하다 보면 어느새 역사에 대한 호기심은 멀어지곤 했다. 우리 곁에 가장 가까이 있어 끊임없이 교훈을 주고받아야 할 현대사는 관심 밖이었다. 현대사는 이념의 영역이고, 정치의 영역이고, 분단의 영역이었다. 현대사는 강단사학이 다룰 수 있는 분야가 아니고, 정치학이나 사회학이나 남북관계학에서 다루는 학문이 됐다. 지금 이 순간의 역사를 저술하는 일 자체가 때로는 반정부 영역 또는 관변 영역에 속박됐다. 시민들은 현대사에 눈을 감았다. 1987년 민주화투쟁이 승리하고 난 이듬해에 저자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출간하기 시작했다. 고백컨대 나는 현대사의 가치를 그때 비로소 알게 됐다. 현대사에 대한 역사인식은 온전히 저자의 몫이었다.

저자가 ‘한국사’가 아니라 ‘한국인사’라는 제목으로 현대사를 정리했다. 가치지향적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책은 두 권이다. 한 권은 정치사회편이고, 한 권은 경제편.

정치사회편에서는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주역이 신세대임을 선언했다. 신세대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뒤집는 유쾌한 반란의 주역이다. 공존의 패러다임을 바탕으로 삼는 이들의 속성은 독립적 개체인 ‘촛불’이 수평적으로 연대하는 촛불시위로 형상화되기에 이르렀다.

이들과 함께 반란을 이끈 또 하나의 주역은 여성이다. 호주제를 폐지하고 사회적 참여를 강화해 나가는 차별 극복의 역사가 곧 현대사다.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이 중요한 사료가 됐다. 미디어는 독점에서 공존으로 나아가며 신세대의 패러다임에 호응했다. 미디어 공존 시대의 주역인 온라인 매체에 가장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열정을 보인 것이 바로 신세대, 그 중에서도 여성이었음은 저자의 논리를 강화시킨다. 새로운 한국인들은 ‘왜 분단을 막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을 넘어 ‘사상 최고의 프로젝트, 통일’을 만들어 내고 ‘동아시아 공존의 허브, 한반도’를 건설할 주역이 될 것이다.

경제편은 경제현대사다. 삼성전자가 어떻게 해서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신화를 일궜는지를 긍정적으로 분석했다. 우리가 정보통신(IT)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이나 일본의 문자보다 컴퓨터에 입력하는 속도가 7배나 빠르다는 점, 민주화의 영향력 등이 내재돼 있음을 정리했다. 재벌과 부동산 투기에 대한 역사적 맥락도 놔두진 않았다. 세월만큼이나 저자가 변했다. 희망과 긍정이 상당하다. 공존의 패러다임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를 만들고자 하는 저자의 의지가 낙관론에 줄이 닿아 있다. 20년 전 독자인 나도 저자만큼이나 변해 있을까.

최재천의 책갈피

한 해 차이로 동시대를 살아온 저자와 독자의 삶이 어느새 한국현대사가 돼 있음을 느낀다. 저자는 역사가 단지 과거사가 아니라 현대사이고 미래사임을 일깨워 준다. 빚 갚을 일이 난망하다.

최재천<변호사> cjc4u@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