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획]과학을 알아야 비판도 할 수 있다

어린이·청소년책 100선 / <과학, 일시정지> <과학인문학> <담장 속의 과학>

학교도서관저널과 <Weekly 경향>이 공동 기획한 ‘어린이·청소년책 100선’이 4월에는 과학·환경 분야의 책 10권을 선정해 저자 인터뷰와 함께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흔히 과학은 가치중립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과학은 가치중립적이지 않았다. <과학, 일시정지>(가치를꿈꾸는과학교사모임·양철북)에서는 역사를 통해 이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사기꾼이 된 과학자와 혁명가가 된 과학자’라는 단원에서는 오른손에는 주사기바늘, 왼손에는 폭탄을 든 과학자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나온다. 하나의 과학지식이 인류의 병을 치유할 수도 있고,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전쟁무기로 이용될 수도 있다.

그 갈림길에서 프리츠 하버는 공기 중에서 질소를 합성한 최초의 독가스를 만들어 수많은 사람을 죽게 했고, 라이너스 칼 폴링은 반핵운동을 했다. 말년에 하버는 초라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폴링은 노벨 화학상에 이어 평화상까지 받았지만 현실에서 의로운 과학자들이 모두 이러한 보상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과학자들이 소신있게 행동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시민 대다수가 과학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적절한 지식을 쌓는다면 올바른 판단력을 지니게 될 것이고, 과학자는 대중의 힘을 얻어 양심있는 행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나쁜 마음을 가지게 된다고 하더라고 대중의 눈을 의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과학인문학>(김병호·글항아리)은 현대물리학에서 과학이 주관적이라고 증명한 사실을 쉽게 설명한다. 내가 내 손을 바라본다고 하자. 나라는 주체는 손이라는 객체가 내 것임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관찰하는 주체와 관찰당하는 객체 사이에는 빛이라는 매개체가 있다. 객체에 입사된 빛이 반사돼 나의 눈을 자극한다. 그런데 빛이 객체를 비추는 순간 이미 객체는 빛에너지에 의해 존재 조건이 달라진다.

과학은 멀리 있지 않고 생활속에
최신 과학을 정확히 안다면 과학적 사실은 상황이 변하면서 구성돼 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과학을 어려워한다. 이 때문에 전문가인 과학자의 의견을 맹목적으로 따르려는 경향이 있다. 지난날 우리는 군사독재 시절에 불합리하고 폭압적인 정권에 대해 저항했고, 그 결과 민주화를 일궈낸 경험이 있다. 마찬가지로 과학이 더욱 발전하려면 과학과 관련된 정책에 대해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군사독재 정권의 행동은 폭력이라는 구체적인 증거로 분별할 수 있지만 과학과 관련된 음모와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정책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사실 과학과 관련되지 않은 정책은 거의 없다. 대다수 사람들이 비판능력을 갖추면 더욱 진보된 민주주의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4대강 사업은 약간의 하천 생태와 경제학 지식만 있어도 이 사업으로는 지속적인 부를 창출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학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시민 스스로 과학지식으로 무장해 가치 판단을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담장 속의 과학>(이재열·사이언스북스)은 어려운 과학을 친근하게 해 준다. 마치 고택을 산책하면서 느낀 감상을 담은 에세이같다. 저자는 과학·역사·인류학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동원해 전통 집을 중심으로 우리 조상이 살아가던 모습을 설명한다. 여기에는 생활양식과 주택의 모습이 변화하는 역사, 변화의 근거로 한 생태인류학적 설명이 들어 있다. 이 모든 설명의 중심에는 과학의 엄밀한 지식이 서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 ‘가치를 꿈꾸는 과학교사 모임’은 비판력 있는 미래 시민을 키워 내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실천적 대안으로 ‘느림보 뚜벅’이라는 상징적인 시민들을 만들어 냈다. 이 시민들이 어떻게 석유 없는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가를 서술하고 있다. 이들의 결론은 과학지식의 발전보다 에너지 독립적인 평범한 사람들이 세상을 구한다는 것이다.

이수종<서울 성사중 과학과 교사>

‘가치를 꿈꾸는 과학교사 모임’
“우리 아이들 과학적 감수성 키워줘야”

‘가치를 꿈꾸는 과학교사 모임’ 소속 교사들.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추병수, 이정옥, 김추령, 윤정은, 이혜인 교사.

과학에 “일시정지!”를 외친 ‘가치를 꿈꾸는 과학교사 모임’(이하 ‘가꿈’)이 시작된 것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객관적 사실만이 과학이고 과학은 전문가의 영역이라는 선입견에 변화를 주고 싶었던 교사들은 당시 출범한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의 STS(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교육위원회 소속으로 모임을 시작했다. 그 후 2005년 시민과학센터에서 독립하면서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됐다.

“유전자 조작, 원자력 발전, 탄소배출권 거래, 유비쿼터스 환경 등은 전문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주제이지요. 과학기술이 사회와 무관하지 않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초기부터 참여해 온 김추령 교사(혜화여고)는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과학은 그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를 반영하고 시민적 합의를 얻어야 한다”면서 “아이들에게 시민으로서 과학을 바라보는 눈을 키워 주자는 게 ‘가꿈’의 목적”이라고 소개했다.

‘가꿈’은 그동안 과학의 사회적 영향 및 책임과 관련한 수업 자료(교사용 지도서, 학생 활동지)를 5집까지 만들어 학교 현장에 보급했다. 새만금개발, 핵폐기장 건설 등 갈등이 첨예한 주제를 다루는가 하면 생명윤리 관점에서 과학수업의 동물해부실험을 모형으로 대체하자는 제안도 했다. 과학교사 워크숍과 세미나를 통해 현안에 대한 토론도 벌였다.

<과학, 일시정지>를 내게 된 것 역시 이런 대중화 작업의 일환이다. 아이들과 직접 소통하는 책을 써 보기로 하고 11개의 소주제를 선정해 우화·콩트·기사 등 흥미로운 이야기를 통해 문제를 제기한 뒤 과학적 설명과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집필했다. 이 책이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로 뽑히면서 과학을 주제로 한 논술책 등의 출판 제의도 받고 있다.

“남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인 만큼 잘 변하지도 않는 것 같다”는 이 모임의 회원 수는 크게 늘어나지 않은 채 15명선을 유지하고 있다. 김수기(아주중), 박선아(의왕중), 윤정은(석관고), 이기순(신암중), 이승희(발곡중), 이정옥(청담고), 장현숙(국사봉중), 정행남(영남중), 조은정(부천북여중), 추병수(한성과학고) 교사 등이 참여하고 있다.

모임의 신참인 이혜인 교사(연천중)는 “뭔가 의미 있는 과학수업을 하고 싶었던 참에 ‘가꿈’의 존재를 알게 돼 자발적으로 찾아갔다”고 말했다. 그는 “과학 교육 과정을 보면 과학기술을 사회와 접목해 시민의 소양을 키운다는 내용이 교육목표에 들어가 있지만 실제로는 사실 전달 수준에 가깝고 그냥 지나치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교사들은 요즘 학교 현장이 경쟁과 성과 위주로 변화하면서 가치지향적 수업에 대한 고민이 더욱 줄어들고 있다고 전한다. 교사들의 수업시간과 행정업무가 과거에 비해 크게 늘었다. 특히 과학 교육에서는 시교육청이나 대학의 영재교육원, 과학고 등 엘리트 교육시스템이 마련되면서 장점도 크지만 ‘과학은 특별한 아이들만 하는 것’이란 인식을 하게 하는 부작용도 생겼다.

문화기획

김추령 교사는 “이런 때일수록 과학을 전문지식이 아니라 시민으로서 당연히 관심을 갖고 고민해야 할 과목으로 가르치는 게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한다. ‘가꿈’의 교사들은 지금까지 해 오던 활동 이외에 지역사회 공부방이나 새터민 학교에 자신들이 추구하는 과학수업을 확산시키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

한윤정 기자 yjha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