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도처유상수]자동차 덴트기술자 강희영씨… 찌그러진 차, 상처난 부분 말끔히 치료

강씨는 자신의 일에 대해 “완벽은 없지만 작업 맡긴 이들이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처음 차가 부서졌을 때 얼마나 실망했겠나. 제대로 고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며 찾아오지만 돌아갈 때는 대부분 만족한다.

국내 등록된 자동차 수는 작년 기준으로 2180만대이다. 올 6월 통계청에서 발표한 경제활동인구가 2792만명이니, 차량은 일하는 사람 수만큼이나 많다. 차도 인간처럼 늙고 병들고 폐기된다. 서울에서 자동차 관련 업종이 가장 많이 모인 곳은 장안평이다. 중고차 시장부터 차량관련 액세서리와 정비소까지 차의 생로병사와 관련된 다양한 업체들이 장안평에 몰렸다. 장안평에서 이름을 걸고 기술로 자리 잡은 이들은 그 바닥에서는 실력을 인정해준다.

한창사 강희영 사장도 장안평의 숱한 고수 중에 한 사람이다. 그의 전문분야는 찌그러진 차를 펴서 고치는 덴트. 사고차를 펴고 새로 칠하는 분야를 판금이라고 부르고 판금 중에서도 칠하지 않고 우그러진 철판을 펴서 복원하는 기술을 덴트라고 부른다. 강희영 사장은 덴트계의 고수이다.

철판을 펴는 작업은 안팎에서 밀고 두드려 평면을 고르게 만든다.

그의 기술 극찬하는 인터넷 소문

장안평에 중고차 시장이 처음 문을 연 것은 1979년, 강희영씨는 중고차 시장이 자리를 잡아가던 1985년에 장안평에 입성했다. 그동안 강산이 세 번 넘게 변했고, 신축건물에서 개업한 그의 업소도 낡은 티를 면하지 못한다. 그래도 그는 “한 장소에서 평탄하게 잘 지냈다”고 말한다.

장안평에도 몇 군데 덴트집이 있지만 유독 그가 유명한 것은 입소문과 인터넷 덕분이다.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 그의 기술에 대한 경험담이 전해진다. 누군가는 그를 자동차 판금 버전 ‘장안평의 방망이 깎는 노인’이라 평하며 그의 정밀함과 섬세한 기술을 극찬했다.

차 한 대가 들어설 실내공간에서 강희영씨의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대낮에도 사방에는 다양한 각도를 향해 형광등이 켜져 있다. 이동식 조명까지 동원해서 차의 표면은 빈틈없이 빛이 비춰지고 있었다. 빛은 작은 굴곡 하나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가 작업하고 있는 차량은 술 취한 이가 차 천장에 올라가 뛰었다는 차. 그는 전체가 내려앉은 천장을 아침부터 펴고 있었다. 오전 내내 작업을 마쳤지만 군데군데 심하게 우그러진 상처가 남아있다. “이런 경우 대부분은 천장 철판을 교체하든가 판금도색을 한다. 덴트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어려운 작업이라 피하는 일이다.” 천장의 내부재를 다 뜯고 철판의 우그러진 부분을 살펴가며 때로는 밀어올리거나 때로는 망치질을 해서 바로 잡는다. 곁에서 보기에도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그는 세 개의 망치와 10여개의 쇠주걱을 번갈아 써가며 작업을 진행했다. 가끔씩 주머니에서 작은 정을 꺼내 리듬감 있게 두드렸다. 아마도 작업은 하루를 꼬박 잡아먹을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서울 월드컵 경기 때 천장 전체가 상한 차들을 여러 대 고쳤다고 했다. 흥분한 응원객들이 차 위에서 구르는 일이 많아 정비공장이 호황을 누렸다는 말도 전했다. 그런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이렇게 많이 상한 차가 덴트 작업을 의뢰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교체나 도색같이 더 쉬운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자동차 정비·수리작업은 표준 품셈이 정해져 있다. 철판 교체에 얼마, 판금 도색 한 판에 얼마 하는 식으로 대체적인 비용이 결정되어 있는 셈이다. 대부분의 작업에 걸리는 평균시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덴트의 경우에는 달랐다. 작업의 난이도와 시간을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략 가격을 정하지만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수월하게 끝나는 일은 아직까지 없었다고 한다. 일을 시작하고 속을 뜯어보면 생각과 다른 요건들이 드러나는 법이다.

“차를 척 보고는 견적이 안 나온다. 겉을 봐서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겉을 보면 속을 생각해야 하고, 보이지 않는 장애물이 얼마나 많은지를 따져야 한다”는 것이 강희영씨의 설명이다. 망가진 상태는 어느 하나도 같은 경우가 없고 손상 없이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기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다만 “상처가 눈에 크게 띄지 않고 만족할 만한 상태로 만드는 것”이 그의 할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작업에 필요한 공구들은 대부분 그가 만든 것이다.

공구함에는 정체 모를 낯선 도구들

경우에 따라서 작업도구가 들어가지 않는 경우도 생겼다. 좁은 틈으로 공구가 들어가지 않는 때도 있고 너무 넓거나 좁아 맞는 도구가 없는 일도 있다. 강희영 씨는 “그럴 때마다 공구를 새로 만들어서 쓴다. 판금 일은 용접이 기본이라 알맞게 쇠를 다듬고 붙여서 작업도구를 만든다”고 한다. 때문에 그의 공구함에는 100여 개가 훌쩍 넘는 정체 모를, 그만의 낯선 공구들이 빼곡하게 들어 있었다.

그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철판에도 결이 있고 맥이 있다. 그 맥을 따라 작업해야 한다. 어떤 부분은 아래에서 올리고 바로 옆은 위에서 두드려 수평을 맞춘다. 위치에 따라 제대로 치지 않으면 잘 펴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철판이 구겨졌다면 그 곁에는 반드시 꺾인 부분이 있다고 했다. 눈에 띄지 않는 꺾인 곳을 제대로 펴야 다른 부분도 곧게 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꺾인 부분의 맥을 정확히 찾아야 작업이 진행된다.

일반적인 판금 작업처럼 구겨진 면을 대충 펴고 퍼티로 발라 평평하게 만든 다음 색을 맞춰 칠하면 되는 간단한 작업을 굳이 어렵게 덴트 작업으로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한마디로 칠 때문이다. 차는 제 칠이 중요하다. 판금 도색을 해버리면 사고가 얼마나 크게 났는지도 알기 어렵고, 아무리 색을 맞춘다고 해도 도색한 부분과 제 칠의 차이가 난다”고 설명한다. 무엇보다 도색을 하면 중고차 가격이 크게 떨어지는 것이 가장 큰 현실적인 이유라고 덧붙였다. 고급차나 외제차가 덴트 작업을 선호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작업 중에 주변의 자동차 정비소에서 그를 찾아와 견적을 묻는 경우가 있었다. 상처난 부분을 꼼꼼히 살펴보고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 부분이 부딪치면서 내부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앉았다.” 그다지 많지 않은 비용을 말했음에도 “비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강희영씨는 표정의 변화 없이 돌아와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맘 상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하도 많이 들어서 아무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사람들은 겉을 보고 판단하지만 그의 일은 속까지 생각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강씨는 자기 이해의 테두리 안에서만 판단하는 일도 어쩌면 당연하다고 체념한다. 그가 말하는 덴트 작업은 “기술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정성이다. 펼 수 있을 때까지 끝까지 두드리고 밀어야 하는 작업이다”라고 표현했다. 기술의 값을 깎고 정성에는 가격조차 매기지 않는 현실을 묵묵히 받아들인다.

강씨는 60여년 전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농사짓기보다 서울로 가서 기술을 배우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장남으로서 집안에 대한 책임감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자동차 판금 일을 배웠다. 기술을 배우니 집안에서도 좋아했다. 그러나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그는 이 일을 배우지 않겠다고 단언한다.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좀 더 편한 일을 찾고 싶다고 고백했다. 어쩌다보니 세월을 흘려보내 환갑을 훌쩍 넘겼지만 그는 어린 시절 보던 어른의 모습에 비하면 자신을 아직도 애와 같다고 말한다. 순간순간 자기 앞에 놓인 일들을 좇다가 어느새 나이 먹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일까. 강씨는 아직도 모자란 부분이 많다고 이야기했다.

별탈 없이 직장생활을 하다가 1982년 그는 건설회사 정비팀으로 인도네시아에서 일했다. 그곳에서 일한 것이 덴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다. “현장에서는 차량사고가 많이 났다. 한국에서 하는 식으로 판금 작업을 새로 할 시간과 여유가 없었다. 잘 펴고 칠을 뿌리는 식으로 빨리 처리해야 했다”고 한다. 퍼티를 발라 말린 후 칠하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철판을 잘 펴기 시작했던 것이 지금의 덴트 기술을 익힌 시발점이 된 셈이다. 현장 차량이지만 될 수 있으면 수리 흔적이 없도록 해야 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더 집중하고 정성을 들여야 했다. 원래의 칠을 살려 놓고 펴면 철판의 강도와 탄성이 살아있어 잘 펴진다는 사실도 배웠다.

강씨는 1년 반을 인도네시아에서 근무한 후 귀국했다. 인도네시아 근무가 나쁘지 않아 다시 출국하려고 서류를 만들던 차에 장안평의 지인으로부터 와보라는 전갈을 받았다. 그는 “그때 장안평을 보니까 괜찮아 보였다. 정비 일이 힘들어서 다른 일을 해볼까 생각했다. 처음에는 자동차용품 가게를 해보려 했지만 결국 배운 기술이라서 이 일을 다시 시작했다”고 회상한다. 이제는 장안평이 누리던 활기도 예전만 못해졌다. 다른 곳에도 중고차 매매단지가 생겼고 세월이 흘러 시설도 낡았다. 그는 “일도 줄었다”고 했지만 일하는 내내 그를 찾는 전화는 쉬지 않고 울렸다. “작업은 가능하지만 시간이 걸린다”고 대답해도 사람들은 방문 약속을 잡으려 했다.

장안평에서 일을 시작한 지 벌써 30년을 훌쩍 넘겼다.

작업 특성상 눈 혹사는 피할 수 없어

반사하는 빛을 좇아 굴곡을 찾아야 하므로 일하는 내내 눈을 혹사해야 한다. 강희영씨는 두꺼운 돋보기를 쓰고 철판 면을 세심히 들여다보았다. 그는 “눈이 제일 좋아야 하는데 세월을 따라 제일 먼저 망가지는 것이 눈이다. 덴트는 남이 못 보는 것을 봐야 하는 일이다. 내가 작업해 놓은 것을 다른 사람이 흠을 찾아내면 안 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이 찾지 못한 굴곡까지 찾아내야 하는 집중력이 있어야 하고, 때문에 그의 일은 눈을 혹사할 수밖에 없는 작업이다.

수리를 하려면 차를 뜯어야 하는데 외제차는 분해가 쉽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처음 보는 차도 심심치 않게 들어왔다. 그럴 때마다 그는 가만히 손을 놓고 차를 바라본다고 했다. “차량의 원리를 따라 속을 그려보고 다시 물어본다. 나라면 저것을 어떻게 조립했을까? 그렇게 물어 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가 하는 일은 겉모습을 복원하는 일이고 세상도 겉으로 드러난 모습에 큰 가치를 둔다. 어떤 평가를 내리든지 세태는 이미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그래도 강씨는 자신의 일에 대해 “완벽은 없지만 작업 맡긴 이들이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처음 차가 부서졌을 때 얼마나 실망했겠나. 제대로 고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며 찾아오지만 돌아갈 때는 대부분 만족한다. 그럴 때 제일 기쁘다”고 설명한다.

인생도처유상수

그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다. “나는 바보 같다. 이 일은 좀 바보스러운 사람이어야 될 것 같다. 아무리 해도 완벽하게 할 수 없는데 그래도 그 완벽을 좇아가야 한다. 그러려면 너무 계산해서도 안 되고 고집도 있어야 한다. 바보라야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맡은 일을 끝까지 해가는 우직함. 주저앉지 않고 끝까지 나아가는 고집. 그가 이야기하는 세상의 바보들이 가진 능력이다. 그 능력들이 세상의 어느 한 곳에서 반짝반짝 빛을 발한다.

<김천 자유기고가 mindtempl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