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단 하루라도 ‘진짜 기자’로 살고 싶다”

KBS의 이병순·김인규, MBC의 김재철, YTN의 구본홍·배석규 사장은 취임과 동시에 ‘MB 낙하산 사장’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낙하산 사장들의 등장 이후 방송 3사의 불공정 보도 사례가 시도때도 없이 기사화됐다.

“김인규 사장 전화 한 통에 리포트에서 빠졌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촉발한 무상급식 주민투표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해 8월, 최진민 당시 귀뚜라미보일러 회장은 사내 공지사항을 통해 보수인사 지만원 시스템클럽 대표의 글을 올렸다. 이 글은 “무상급식은 빨갱이들이 벌이는 포퓰리즘의 상징”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에서 언론노조 KBS본부, MBC본부, YTN지부가 ‘방송3사 공동투쟁위원회’ 발족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KBS 기자들도 이 내용을 취재했고 기사를 썼다. 이 기사는 8월 18일 KBS 9시 뉴스의 두 번째 꼭지 리포트에 다뤄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방송을 불과 1시간여 앞둔 시점에 김인규 KBS 사장은 보도국 사회1부장에게 ‘문의전화’를 걸었고, 갑자기 최 전 회장 내용은 리포트에서 빠졌다.

한 KBS 기자는 해당 취재기자가 직접 언론노조 KBS본부(KBS 새노조) 측에 연락을 해 문제가 불거졌다고 전했다. 이 기자는 “해당 취재기자가 원래부터 사내 문제에 앞장서서 발언하던 사람은 아니었지만, 2008년부터 지적된 KBS의 불공정 보도에 대한 문제인식은 있는 사람이었다. 아마도 KBS의 보도 태도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귀뚜라미 사건을 통해 터져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낙하산 사장 등장 이후 불공정 보도
이 기자는 “나중에 취재기자에게 들어보니 부장이 왜 자신에게 먼저 불만을 말하지 않았냐며 아쉬워했다고 하더라. 하지만 부서 내부적으로 소통하기 힘든 상황이었고, 이럴 경우 노조를 통해 문제제기하는 것이 합리적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기자는 “새노조 측에 알아본 결과, 최진민 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대구TBC와 사업을 하는 한 퇴직 선배가 김인규 사장에게 ‘민원’을 넣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KBS의 이병순·김인규, MBC의 김재철, YTN의 구본홍·배석규 사장은 취임과 동시에 ‘MB 낙하산 사장’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낙하산 사장들의 등장 이후 방송 3사의 불공정 보도 사례가 시도때도 없이 기사화됐다. 쌓이고 쌓인 내부 불만이 폭발한 것이 오늘날 방송 3사의 파업 사태다.

방송 3사의 조합원들은 한결같이 낙하산 사장들의 등장 이후 보도의 객관성, 공정성, 신뢰성이 모두 후퇴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것이 KBS <추적 60분> 4대강편 불방 사태다. 2010년 12월 7일, 방송을 하루 앞둔 <추적 60분> 4대강편이 갑작스레 불방 결정을 받았다. 이미 방송예고가 나간 뒤였다.

이화섭 당시 시사제작국장(현 KBS 보도본부장 내정자)은 4대강 편이 찬성 측과 국토해양부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일방적인 내용이라며 불방 이유를 제작진에 전했다. 1주일 뒤 KBS 심의실은 <추적 60분>이 제작한 내용에 대해 “객관성, 공정성을 유지했다”, “양쪽 의견을 소상하게 소개했다”고 발표했지만, 또 한 차례 방송이 연기됐다. 결국 2주가 지나서야 ‘4대강편’은 전파를 탔다.

MBC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있었다. 지난해 말에 터진 ‘김문수 119 관등성명 사건’은 유독 MBC에서만 보도되지 않았다. SBS에서는 이 사안을 2분 30초 동안 보도했다. 해당 부서장인 박용찬 사회2부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소방관들의 기본 자세가 안돼 있었다는 판단을 했다”며 보도하지 않은 이유를 밝혔다. 당시 취재기자는 “우리는 경기도청 기자가 아니다”라고 항의했다. 이 사건을 보도하지 않은 것 자체가 김문수 경기도지사에게 유리한 것 아니냐는 의미다.

PD저널리즘의 모범으로 꼽히는 PD수첩도 보도통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지난해 3월 최승호 PD가 급작스레 다른 부서로 인사발령이 났다. 후임으로 들어온 이우환 PD는 ‘우리는 살고 싶다-쌍용차 해고자 2년’ 편을 방송한 뒤 ‘남북경협 중단 그 후 1년’ 편을 취재하고 있었다. 이후 윤길용 시사교양국장이 시청률 등을 이유로 제작을 불허하자 이 PD는 이에 항의했다. 그리고 이 PD는 급작스레 MBC가 소유한 놀이동산을 관리하는 자회사로 발령이 났다.

PD수첩 취재중단 지시에 항의하며 윤 국장과 면담을 한 한학수 평PD협의회 대표도 급작스레 경인지사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당시 한 PD는 트위터를 통해 “나는 강제발령을 이해할 수 없고 화도 난다. PD에게 프로그램 제작을 하지 말라는 것은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라고 심경을 밝혔다.

구본홍 사장시절 YTN에서는 낙하산 사장 출근저지 투쟁을 한 6명의 YTN기자·PD가 해고를 당했다. 해고자인 정유신 기자(전 <돌발영상> 제작팀)는 “배석규 사장이 들어온 이후에도 부당한 징계, 전보가 수도 없이 많았다. 정권에 불리한 기사, 사측에 조금이라도 부담스러운 기사는 온갖 이유를 들어서 뺐다”고 말했다.
　

PD수첩 담당자들 전격 인사발령
지난 2월 22일에도 ‘정권에 불리한 기사’가 빠진 사례가 있었다. 22일은 파업 찬반투표에 앞서 조합원 총회가 열린 날이었다. 이날 YTN 사회1부의 한 기자는 17대 대선 직전 BBK 김경준씨의 기획입국설의 근거가 됐던 가짜편지의 작성자 신명씨와 관련된 단독 기사를 작성했다. 신씨가 4·11 총선 엿새 전인 4월 5일에 ‘가짜 기획입국설’ 사건의 배후인 ‘윗선’을 밝힐 예정이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기사는 “새로울 것 없는 함량 미달의 기사”라는 판정을 받고 보도되지 않았다.

이 내용은 23일 허재현 한겨레 기자가 ‘YTN 노조 게시판’을 출처로 보도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허 기자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신명씨 관련 특종한 YTN 기자님. 누군지는 제가 모르지만 당신의 보도를 제가 받아서 썼습니다. 데스크가 막아서 보도 못해 얼마나 속상하시겠습니까. 위로 드립니다. 이건 제 보도가 아니라 당신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조합원이 사내 게시판에 올린 글이 무단 삭제되는 일도 빈번히 발생했다. 22일 김수진 YTN 국제부 기자는 사내 게시판에 “단 하루라도 ‘진짜 기자’로 살고 싶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하지만 이 글은 아무런 설명 없이 지워졌다. 김 기자 외에도 2명의 기자들이 경영진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으나 마찬가지로 삭제됐다. 김 기자가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뉴스타파> 첫 회가 방송된 날 부끄러움과 울분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마이크를 빼앗긴 사람들도 저렇게 애쓰는데, 아직도 멀쩡히 마이크를 쥐고 있는 나는 왜 이렇게 비겁한가 하는 생각이 잠을 앗아갔습니다. 우리 모두 데스크들에게 취재 아이템이 매번 축소되고, 싸우다 못해 지쳐서 ‘이슈가 될 만한 보도는 알아서 피하는 기자’ ‘면피전문 기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자정신은, 아니 저의 기자정신은 장식장에나 들어 있는 박제가 되어버렸습니다.”(김 기자가 사내 게시판에 올렸던 글에서 발췌)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