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제대로 뉴스도 못하고 지금 뭐하는 겁니까?”

2009년 이후 뉴스보도와 시사보도가 맥없이 허물어지면서 두 방송사는 애칭 대신 오명을 얻었다. 이름하여 ‘MB씨’(MBC)와 ‘김비서’(KBS)다. 현 정부 이전에만 해도 언론 신뢰도에서 수위를 다퉈온 두 방송사 구성원에겐 치욕스럽다고 할 수밖에 없는 추락이다.

2008년 MBC와 KBS의 또다른 이름은 ‘마봉춘’과 ‘고봉순’이었다. 각기 두 방송사의 영문 명칭에서 첫 글자를 따 만들어진, 다소 촌스럽지만 친근한 이미지를 풍기는 이 여성형 이름에는 정권의 여론 왜곡 기도에 맞서 두 방송사가 분투해주기를 바라는 시민들의 응원의 메시지가 들어 있었다.

2월 21일 밤 파업 중인 MBC 노조원들이 서울 여의도 본사 남문 앞에서 촛불문화제를 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2009년 이후 뉴스보도와 시사보도가 맥없이 허물어지면서 두 방송사는 애칭 대신 오명을 얻었다. 이름하여 ‘MB씨’(MBC)와 ‘김비서’(KBS)다. 정권 비판기능을 상실한 두 방송사가 이명박 대통령의 분신(MB씨) 또는 정권 홍보를 수행하는 비서(김비서)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았음을 풍자한 명칭이다. 현 정부 이전에만 해도 언론 신뢰도에서 수위를 다퉈온 두 방송사 구성원에겐 치욕스럽다고 할 수밖에 없는 추락이다.

두 방송사 구성원들이 마침내 반격에 나섰다. MBC가 선두에 섰다. 파업 목적은 선명하다. MBC 파행인사와 파행보도의 출발점이자 총책임자인 김재철 사장의 퇴진과 공정보도 복원이 그것이다. MBC 노조는 2월 24일을 기준으로 27일째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뉴스는 멈추지 않았다. MBC 노조가 노조 홈페이지 ‘파업 채널 M’과 유튜브를 통해 두 차례 공개한 ‘제대로 뉴스데스크’는 공영방송 위상 추락이라는 MBC 구성원들의 문제의식을 집약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제대로 뉴스데스크’에는 “존재 가치를 상실한 지금의 뉴스데스크에 하루하루 부끄럽게 동참해왔음을 고백”하고 “굳이 ‘제대로’란 수식어를 붙일 필요가 없을 때까지 (뉴스를) 떳떳하고 당당하게 만들겠다”는 MBC 구성원들의 의지가 담겨 있다. 2월 13일에 공개된 1회는 조회수 54만건을 기록했고, 2월 17일에 공개된 2회는 4일 만에 조회수 19만건을 넘어섰다.

‘제대로 뉴스데스크’의 리포팅 시간은 일반 뉴스 보도보다 두 배 이상 긴 3~4분가량이다. 일반 뉴스보다 리포팅 시간이 길어진 데는 몇 가지 사정이 있다. 우선 제작여건의 열악함이다. 파업 중이므로 회사 장비를 사용할 수 없다. 촬영은 노조비용으로 대여한 카메라나 개인 장비를 사용한다. 편집은 더 큰 문제다. 촬영한 영상을 노트북에 담아 편집하는 탓에 리포트를 완성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또한 파업으로 출입처 취재를 중단함에 따라 굵직한 쟁점을 긴 호흡으로 다루는 기획기사가 지금 사정에는 더 적합한 형식이라는 이유도 있다.
　

‘제대로 뉴스테스크’ 조회수 수십만 건
역설적으로 지금의 열악한 상황은 김재철 사장 취임 이후 소외됐던 사안들을 집중적으로 취재하고 싶어하는 기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1회 내용 중 파업 속보를 제외한 뉴스는 2010년 3월 김재철 사장 부임 이후 망가진 MBC 뉴스데스크 보도와는 확연히 차별된다. ‘이명박 대통령 측근비리 가계도’ ‘박근혜와 부산일보’ ‘형님예산? 영일목장 추적’ 등 권력의 비리와 권력자들의 치부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2회도 마찬가지다. 정권 풍자 게시물을 페이스북에 올린 게 화근이 돼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한 서기호 판사 인터뷰 기사와 정치검찰을 해부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제작에 참여한 한 기자는 “그동안 다루지 못한 것들을 정리라도 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강하다”며 “기존 뉴스데스크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시도를 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기자는 “우리가 보도하지 못하는 사안을 신문에서 쓰면 부끄러워서 잠도 못 잤다. 기자로서의 최소한의 자존심이 짓밟혔다”고 말했다.

김재철 사장 취임 이후 MBC 뉴스를 망가뜨린 내부적인 요인은 무엇일까. 우선 내부 검열의 강화다. 방송사 뉴스보도 시스템은 기자의 발제와 취재, 기사 송고, 해당 부서 보직기자(데스크)들의 데스킹, 방송 순으로 이뤄진다. 기자가 작성한 1차 원고를 ‘송고본’, 데스크가 손을 본 원고를 ‘출고본’이라고 부른다. 그동안 MBC는 송고본과 출고본을 따로 유지해왔다. 데스크의 정치적 편향에 따라 기자의 원고가 왜곡될 경우 이를 바로잡을 근거를 남겨두기 위해서다. 그런데 지난해 여름부터 이 시스템이 무너졌다.

내부 검열 강화로 뉴스의 질 떨어뜨려
공영방송의 소임보다는 시청률 경쟁에 몰입한 것도 뉴스의 질을 떨어뜨리는 데 한목 했다. 한 중견 기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MBC 뉴스가 망가진 데는 사장이나 간부들의 정치적 편향만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도 작용했다. 김재철 사장 취임 이후 MBC 뉴스 프로그램들의 편성시간이 55분으로 늘었다. 뉴스를 길게 가져가야 MBC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률이 오른다는 명분이었는데, ‘9시 뉴스데스크’ 하나의 편성시간 연장만으로도 하루치 뉴스가 더 늘어난 것과 마찬가지 효과가 난다. 늘어난 편성시간에 맞게 뉴스 아이템의 숫자를 기계적으로 늘리다보니 함량미달의 뉴스를 양산하게 됐다. 여기에 SBS와의 시청률 경쟁 때문에 주말 뉴스데스크 편성을 오후 8시로 앞당기면서 주말뉴스용 연성 프로그램 아이템에 대한 요구도 늘어났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부족해 문제의식을 갖고 취재를 하기 어려운 상황에 봉착했다. 가령 기자가 4대강 관련 기사를 발제했다고 치자. 그러면 위에서는 ‘일단 뉴스 분량을 채워야 하니까 급한 것부터 취재하라’는 지시가 떨어진다.”

MBC 노조에 이어 KBS 새 노조도 3월 6일부터 파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사진은 지난 2010년 7월 12일 공영방송 사수를 주장하며 서울 여의도 회사 본관 앞에서 파업을 하고 있는 KBS 새 노조 조합원들. | 정지윤 기자

‘제대로 뉴스데스크’ 제작과정은 이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22일 제작회의에서 한 기자는 ‘나경원법’과 ‘정봉주법’을 비교하는 보도를 하자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후배들이 반대했다. ‘정봉주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전제하고 있는, 민주통합당 편향적인 보도가 아니냐는 반론이었다. 공정보도를 위한 제작 자율성은 이 같은 반론을 수용하고 합리적으로 조정함으로써 가능해진다. 한 고참 기자는 “파업 후 보도국이 이런 분위기로 돌아간다면 MBC 뉴스는 정말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MBC 파업은 지난 22일 사상 최대 규모인 135명의 간부급 사원이 지지 성명을 발표하며 갈수록 열기를 띠고 있다.
　

KBS 노조 찬성률 88.6%로 총파업 임박
KBS도 파업을 목전에 두고 있다. KBS 구성원들의 심정은 지난 2월 16일 한 KBS 기자가 미디어 비평지 <미디어스>에 익명으로 기고한 글에 잘 드러나 있다. 그는 “낯익은 MBC 기자들의 면면을 보니 우리 보도국 기자들의 뒤통수와 처진 어깨가 생각난다”며 “지금 우리가 만드는 뉴스가 부끄럽고, 우리의 조직이 부끄럽게 돼버렸다. 이 수치심, 자기모멸, 자기부정의 굴레를 이제는 우리 스스로 끊어버려야 한다. 기대하시라”고 썼다. 그 수치심과 자기부정의 굴레를 이번에는 끊어버릴 수 있을까.

KBS 새 노조는 23일 총파업 찬반투표를 실시한 결과 재적 1064명 중 963명(투표율 90.5%)이 참여해 88.6%의 찬성률로 3월 6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한다고 발표했다. 김현석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위원장은 23일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인터뷰 기사 참조)에서 “정치지형 변동으로 공영방송 파행의 끝이 보인다. 우리 손으로 끝내겠다”고 밝혔다. YTN 노조도 23~29일까지 파업 찬반투표에 들어갔다. 이로써 낙하산 사장 퇴진과 공정방송 복원을 위한 사상 초유의 MBC-KBS-YTN 방송 3사의 동시파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김현석 KBS 새노조 위원장
“MBC 노조와 공동 선거방송 논의 중”

정원식 기자

김현석 위원장은 2009년 회사의 징계인사로 춘천으로 전보발령을 받았다가 지난해 11월에 본사로 복귀했다. 파업을 준비하고 있는 그를 2월 23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만났다.

현 정권이 정연주 사장을 강제로 밀어내고 사장 자리에 앉힌 사람은 이병순 전 사장이고 그 후임이 김인규 사장이다. 두 사람을 비교하면 어떤가.
“이병순 전 사장은 적어도 특보 출신은 아니었다. KBS에 두 차례 특보 출신 사장과 부사장이 오려다 구성원의 반발로 불발된 적이 있다. 그 두 사람은 캠프에 이름만 걸어놓은 특보였고, 개인적으로는 훌륭한 선배들이었는데도 그랬다. 김인규 사장은 흔히 ‘특보 사장’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특보가 아니다. 김 사장은 이명박 대통령 방송전략실장으로 캠프에서 실질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KBS 사장이 됐다는 것과 그런 사장에게 영합해 영달을 추구한 간부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모두 지워버리고 싶다. 그러나 다 지울 수는 없으니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정직자들을 중심으로 지난 4년간의 방송 파행을 백서로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구체적인 파업 프로그램은 마련됐나.
“이번 파업은 정규방송을 파행시키는 게 목표가 아니라 콘텐츠를 만드는 게 목표다. 현재 MBC 노조와 함께 사상 처음으로 공동 선거방송을 하자는 논의를 하고 있다. 총선에 나선 후보들의 정책도 검증하고, 후보들을 불러 토론회도 할 생각이다. 뉴스를 공동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지난 4년간 KBS 기자로서 가장 부끄러운 순간은 언제였나.
“늘 부끄러웠다. 춘천에서 돌아와 카메라 기자 후배를 만났더니 요즘 현장에서 얻어맞는 게 일이라고 하더라. 이제 KBS 기자가 맞는 건 뉴스도 아니다. KBS가 경멸과 증오의 대상이 됐다는 게 정말 슬펐다. 또 한 번은 KBS가 4대강 통수식을 방송할 때다. 트위터에서 난리가 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조용했다. 이제 시민들이 욕하는 것에도 지쳐서 무관심해진 거다.”

이번 파업에 임하는 자세는 뭔가.
“식민종주국의 패망을 앞둔 조국에 들어가는 독립군의 심정이다. 외부의 힘에 의해 무너지기 전에 우리 손으로 끝내야 한다. 계산하지 않고 긴 호흡으로 파업을 할 생각이다.”

KBS가 정권의 부침에 따라 또다시 망가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정권이 자기 입맛에 맞는 사장을 보내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건 어렵다. 중요한 건 그런 사장이 왔을 때 구성원들이 KBS 저널리즘을 어떻게 지키느냐다. BBC는 어떤 사장이 와도 BBC의 저널리즘을 지킨다. KBS는 모두가 줄을 서버린다. 그런 조직문화를 바꿔야 한다. 또 총선이 끝나면 청문회나 국정조사를 통해 언론장악 과정을 밝히고 부역 언론인들에 대한 실태조사를 해야 한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