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조중동 출신 MB맨들의 몰락

청와대, 방통위, 내각의 요소요소에 포진한 이들은 언론사와 언론 관련 단체 수장 자리에 앉아 있는 ‘낙하산 특보’들과 호흡도 척척 맞았다. 정권 내부에 진입해 들어온 이들이 1진이고, 언론에 남아 있는 이들이 2진 노릇을 했다.

2월 22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 FTA, 제주 해군기지 등에 대한 야권 지도부의 ‘말 바꾸기’를 비판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하지만 측근과 친인척 비리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지나갈 수 없었다. 이날 이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여기에 관한 한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내 주위에 비리를 저지른 사람이 있다고…, 그것이 발생할 때마다 가슴이 꽉 막혔다. 가슴을 칠 때가 있다”며 자신과 비리 연루 측근들을 분리시켰다.

김두우, 김효재, 신재민 등 줄줄이
공교롭게도 이날 이 대통령의 언론인 출신 측근 중 한 명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내려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는 부산저축은행그룹 구명 청탁과 함께 로비스트 박태규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에게 징역 1년6월의 실형과 추징금 1억1140만원을 선고하고 골프채 1개를 몰수했다. 검찰의 기소 내용을 대부분 받아들인 재판부는 “김 전 수석이 금품에 매수돼서는 안 되는 공무원의 직무상 공정성을 해쳤음에도 박씨의 진술을 모두 거짓이라고 비난하기만 해 무거운 처벌이 필요하다”고 ‘훈계’까지 했다.

지난해 9월 부산저축은행 로비스트 박태규씨로부터 거액의 금품을 받은 의혹을 받고 있는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대검찰청에 출두하고 있다. | 김문석 기자

중앙일보 기자 출신의 김 전 수석은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청와대 정무2비서관으로 발탁돼 메시지기획관과 기획관리실장 등을 거쳐 지난해 6월부터는 홍보수석으로 일했으며, 검찰에서 소환통보를 받은 같은 해 9월 15일 사표를 냈다. 부산저축은행 파동의 한가운데에서 터진 김 전 수석의 사의는 조중동 출신 이명박 대통령 측근들의 몰락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게다가 비록 1심이지만 실형을 가장 먼저 선고받은 사람도 김 전 수석이다. 구속기소가 돼 재판을 기다리거나 검찰 수사 및 내사망에 들어 있는 인물들이 줄줄이다.

2월 15일 새누리당(전 한나라당) 전당대회 때 돈봉투 살포 의혹을 받고 있는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 중앙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다. | 김기남 기자

조선일보 출신인 김효재 전 정무수석은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과 관련해 불구속기소를 당해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김 전 수석은 “관여한 적이 없다”고 딱 잡아뗐었지만 결국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역시 조선일보 출신인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이국철 SLS그룹 회장으로부터 억대 금품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11월 말 구속돼 재판이 진행 중이다.

지난해 11월 이국철 SLS그룹 회장에게 뇌물 등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두 번째 영장실질심사(구속전 피의자신문)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 김기남 기자

동아일보 출신의 ‘MB 멘토’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양아들 정용욱씨가 김학인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으로부터 수억원대 로비를 받은 의혹에다가, 본인 스스로도 친이계 의원 3명에게 3500만원을 뿌린 혐의가 제기됐다. 검찰은 최 전 위원장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월 27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서울 광화문 방송통신위원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사퇴의사를 밝힌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다. | 연합뉴스

이제는 ‘혹’이 돼버렸지만 이들은 이명박 정부의 주역 중 주역이다. 2007년 한나라당 후보 경선 당시부터 결집한 이들은 상대인 박근혜 후보 캠프에 비해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었다. 당시 박 후보 측은 “조중동이 해도 해도 너무한다”면서 분루를 삼켰을 정도다. 한나라당 출신들보다 오히려 더 정치적 성향이 동질적이었고 정보력이 뛰어난 것은 물론이고, 넓은 인맥과 과단성까지 갖춘 이들의 역량은 집권 후에 더 ‘빛’을 발했다.

청와대, 방통위, 내각의 요소요소에 포진한 이들은 언론사와 언론 관련 단체 수장 자리에 앉아 있는 ‘낙하산 특보’들과 호흡도 척척 맞았다. 각종 기삿거리, 해외연수, 광고와 협찬에 이어 종합편성채널 출범까지 ‘친정’과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정권 내부에 진입해 들어온 이들이 1진이고, 언론에 남아 있는 이들이 2진 노릇을 했다.

청와대와 조중동 관계도 예전만 못해
하지만 정권 후반으로 들어오면서 이들의 몰락은 두 가지 방향에서 전개됐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이 대법원에서 해임무효 확정판결을 받는다든지, 공중파 방송사가 장기 파업에 나선다든지, 종편 채널이 1%에도 못 미치는 시청률을 보인다든지 하며 힘 센 시절 무리하게 휘둘렀던 권력의 역풍이 불고 있는 것이 첫 번째다. 두 번째는 실세 노릇을 하면서 스폰서로부터 뒷돈을 받는 등의 개인비리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레임덕’이다.

정권과 조중동의 인적 링크인 이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퇴장하면서 양쪽의 관계도 예전 같지 않다. 중앙일보 출신의 고흥길 의원이 특임장관에 임명되긴 했지만 특임장관실의 위세가 이재오 장관시절과는 다르다. ‘종편 원죄’가 있는 고 장관도 활동반경을 넓히진 못하고 있다.

조중동 출신의 빈 자리를 SBS 출신들이 메우고 있다는 것이 흥미로운 대목이다. 하금열 대통령실장은 SBS에서 보도본부장과 사장까지 지낸 인사다. 최금락 홍보수석 역시 SBS 보도본부장이었다. 역시 SBS 보도본부장과 사장을 지낸 송도균 전 방통위 부위원장도 최시중 전 위원장의 후임으로 거론됐을 정도다.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일지 모르겠다. 이 대통령 주위의 조중동 인력풀이 거의 소진됐고, 새로 벌충하기도 마땅찮다. 파업에 돌입한 상황에서 KBS와 MBC 출신들을 뽑아 올릴 경우 역풍이 불어닥칠 것이 분명하다. 무난한 이미지의 SBS 출신들이 임기 말에는 맞춤형 카드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들은 업무수행 스타일에서도 저돌적이었던 조중동 출신과는 상반된 면모를 보이고 있다. 무리를 피하려는 이들에 대한 청와대 내의 평가는 상반된다. “시끄러운 소리 안 나오게 하는 것만 해도 합격점”이라는 우호적 평가와 “뭘 하는지 모르겠다. 자기 손에 피 안 묻히는 게 다냐”는 박한 평가가 엇갈린다.

물론 청와대에 대한 조중동의 대접 역시 바뀐 것은 마찬가지다. 2월 23일자 조선일보는 청와대 관계자와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작은 화제가 됐다. 이 신문이 전날 이 대통령의 기자회견 기사를 7면에다 배치해놓은 것이다. 날선 비판도 필요 없다는 듯한 무시에 가까운 면 배치였다. 한 청와대 관계자가 “요샌 대통령을 비판하는지 칭찬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라면서 “조지건 말건 간에 일단 써주면 고맙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아마 청와대와 조중동의 냉랭한 관계는 앞으로 더 심화될 것 같다.

윤태곤<프레시안 기자> peyo@press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