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자선단체 과잉행동 외교문제로… 서구 중심적 활동에 자성 목소리 일어
프랑스의 자선단체 ‘아르슈 드 조에(Arche de Zoe)’ 인사 등 17명이 10월 25일 아프리카 차드 동부 아베셰에서 차드 정부에 체포, 구속됐다. 아프리카 차드와 수단 국경 지대 어린이 103명을 프랑스 가정에 입양 보내겠다며 전세기에 태우려다 아동 납치와 밀매 혐의로 차드 경찰 당국에 붙잡힌 것이다. 아르슈 드 조에는 끔찍한 내전을 겪고 있는 땅에서 아이들을 구출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주장했으나 이번 사건은 아프리카와 유럽 사이의 외교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아울러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서구 중심적 사고에 바탕을 둔 자선활동에 대한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아프리카 어린이 구하려” 2004년 설립된 프랑스 자선단체 아르슈 드 조에는 지난 4월 프랑스 내 다른 자선단체인 ‘다르푸르를 구하자’ 등과 함께 다르푸르 고아 어린이를 구하자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웹 사이트를 통해 다르푸르 내전을 상세히 소개하고 기아와 폭력, 질병으로 죽음의 문턱에 있는 다르푸르 아이들을 프랑스 가정에서 키워야 한다고 호소, 입양을 위한 자선 기금을 모으는 방식이었다. 총 300여 가정에서 100만 유로(약 13억 원)가 모이자, 먼저 어린이 100여 명을 데려오기로 했다. 이들 단체는 지난 8월 프랑스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정부가 “다르푸르 어린이들이 고아라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반대하자, 독자적으로 ‘고아 모집’에 나섰다. 이들은 어린이 103명을 모은 뒤 다르푸르와 인접한 차드의 동부 도시 아베셰에서 프랑스행 전세기에 태우려다 차드 경찰에 체포됐다. 과묵하기로 이름난 이드리스 데비 차드 대통령은 “충격적인 범죄 행위로 관련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사법적·행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외교문제로 커지는 것을 우려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아르슈 드 조에의 행동을 즉각 비판하는 한편,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11월 4일 차드를 전격 방문해 7명이 풀려났다.
고아 아닌 아이들을 고아로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고아를 모집했다는 아르슈 드 조에의 주장과 어린이 납치를 시도했다는 차드 정부의 주장 가운데 어느 쪽 말이 맞는 것일까. 이번 사태를 두고 뉴욕타임스는 과거 아프리카 땅에서 벌어진 이와 비슷한 일화를 소개하며 이번 사태를 문화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서구 중심 사고로 활동한 자선단체가 일으킨 사건으로 규정했다.
1890년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는 벨기에 식민지였던 지금의 콩고 지역에 고아원을 지어 어린이들을 수용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국왕의 명령을 받아 콩고에 당도한 관리는 이곳에서 고아원을 짓는 일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프리카엔 고아가 없었기 때문이다. 가족이 모여 살면서 탄탄한 지역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아프리카에는 부모가 사망했을 경우 친척이나 이웃, 공동체가 함께 책임을 진다는 전통이 있었다. 고민을 거듭한 벨기에 관리는 결국 아이들을 납치했다. 아이들을 고아원에 가둔 뒤 교리공부나 군사 훈련을 시켰다. 역사학자 아암 호흐쉴드의 책 ‘레오폴드의 망령’에 따르면 고아원에서 자란 아이들은 결국 레오폴드 2세의 충직한 군인이 됐다. 프랑스 식민지를 지낸 차드를 비롯한 많은 아프리카 국가에서 레오폴드 2세의 ‘고아 사냥’은 대를 이어 회자되는 끔찍한 역사의 상처다.
아르슈 드 조에가 프랑스 가정에 입양 보내려고 한 어린이들 역시 결국 고아가 아닌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유니세프와 유엔난민고등판무관, 국제 적십자사 측은 지난 1일 아르슈 드 조에가 입양을 보내려던 103명의 어린이가 대부분 가족과 함께 살고 있었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어린이들이 ‘자선 단체 관계자들이 사탕과 비스킷을 주면서 가출을 유도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아르슈 드 조에는 레오폴드 2세처럼, 아프리카에 고아를 찾으러 갔다가 고아를 찾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무리하게 일을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무분별한 자선 활동, 경계해야 아프리카 각국은 입양과 관련한 자국의 법률 체계를 정립하고 있다. 차드나 수단 같은 이슬람 국가는 종교적인 이유로 입양을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아프리카에선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이나 말라리아 등과 같은 질병으로 사망하는 인구가 많지만, 공식적으로 입양되는 어린이들의 수는 아시아나 동유럽 국가들보다 훨씬 적다. 미국 가수 마돈나가 지난해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남자 어린아이를 입양하려고 했을 때 입양 절차나 부모의 동의 여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진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휴먼라이트워치의 어린이 인권 보호 담당 조 베커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어린이에게 가장 좋은 환경은 부모와 함께 있는 것”이라며 “군사활동에 대한 위협이나 즉각적인 위해를 입을 상황이 아니라면 누구도 어린이를 거주지역에서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없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이라도 상대 문화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자선활동은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 사태는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인들을 동족끼리 싸움을 일삼는 종족으로, 짐승같이 일하는 노예로, 구원이 필요한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아프리카인들은 유럽 각국이 아프리카를 이용하는 데만 혈안이 된 상황에서 아프리카 어린이를 구하겠다는 유럽인의 의도는 진정성이 결여돼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프랑스가 프랑스에 거주하는 가족과 재결합하기 원하는 이민신청자들은 DNA 테스트를 거쳐야 하는 법을 통과시키는 등 이민자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면서, ‘빈곤의 땅’ 아프리카를 돕는다는 발상이 어불성설이라는 말이다. 한 온라인 비즈니스 잡지 편집장은 “정말 아르슈 드 조에가 기아에 직면한 아프리카인를 구하기 위해 그들을 ‘잘사는’ 유럽으로 보내고 싶다면 아프리카 이민자들이 자유롭게 갈 수 있도록 빗장을 풀라고 정부에 압력을 가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유럽에 사는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차별을 완화하고 아프리카 상품에 대한 장벽을 없애고, 아프리카가 완제품을 수출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것이 아프리카인들을 가난에서 벗어나도록 돕기 위해 유럽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국제부┃김정선 기자 kjs043@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