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의 눈]VIP 주변의 ‘와부뇌명’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4월 16일 청와대와 해경 상황실 사이의 통화에 담겨 있는 내용은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수백명의 인명 구조가 시급한 사고 발생 초기의 골든 타임에 청와대는 구조보다 VIP(대통령)에 대한 보고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음이 녹취록을 통해 그대로 드러났다.

청와대는 사고 직후의 다급한 상황에서도 대통령 보고용 현장 영상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차례에 걸쳐 해경 상황실을 다그쳤다. 영상 전송이 곧바로 이루어지지 않자 나중에는 역정까지 내가며 해경 상황실을 압박한다. 그런가 하면 상황 파악을 전혀 못하고 있던 청와대는 해경의 오락가락 보고 속에서 실종자 수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확인되는 순간, “큰일났네…. 이거 VIP까지 보고 다 끝났는데”라며 당혹스러워한다. 청와대가 그 엄청난 사고가 발생한 직후에 한 것이라고는 대통령 보고에 매달리는 것 말고는 나타난 것이 없었다. 구조보다는 대통령 보고에만 관심이 가 있는 청와대의 모습이었다.

‘와부뇌명’(瓦釜雷鳴)이라는 말이 있다. 중국 전국시대 시인 굴원(屈原)의 초사(楚辭) 복거(卜居)에 나오는 말로, 질그릇과 솥이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천둥이 치는 소리로 착각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무식한 사람이 아는 체하고 크게 떠들어댄 소리에 여러 사람이 혹해 놀라게 된다는 뜻이다. 굴원은 아첨꾼만이 중용되고 어진 선비들은 이름 없이 사라져버린 세상을 이렇게 한탄했다.

“어느 것을 버리고 어느 것을 따를까?/ 세상이 혼탁하고 맑지 못하다/ 그러니 매미 날개를 무겁다고 하고/ 3만근 무게를 가볍다고 한다/ 화음의 선율이 깨지니 질그릇 솥이 천둥 소리를 내며 운다/ 아첨꾼은 높이 떨치고 어진 선비는 이름도 없도다/ 아아! 말 아니하겠노라. 누가 나의 청렴과 정절을 알아주리오”

아첨꾼들만이 득세하니 매미 날개처럼 가벼운 것을 무겁다고 하고, 3만근이나 나가는 무게를 가볍다고 여기는, 가치가 전도된 세상이 되어버렸다는 탄식이다. 지금 ‘와부뇌명’은 박근혜 대통령의 주변에도 해당되는 말이 아닐까. 300명이 넘는 승객들이 바닷속에 가라앉는 상황에서도 대통령에 대한 보고에만 관심이 가 있는 청와대의 모습은 지금 박 대통령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를 새삼스럽게 떠올리게 만든다. 박 대통령 주변에는 대통령을 칭송하기에 급급한 사람들만 보이고, 박 대통령 자신도 그런 사람들만 중용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청와대의 개편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김기춘 비서실장은 여전히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이제까지 지속되어온 박 대통령의 국정기조를 상징하는 인물로 되어 있는 김 실장이 거듭된 인사 실패 책임에도 불구하고 건재한 것은 앞으로도 박 대통령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김 실장은 민심과 대통령 사이를 갈라놓는 높은 벽이 되어 있다.

유창선의 눈

반대로 박 대통령에게 직언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주변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얼마 전 “박 대통령 인사는 ‘저 사람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 배신하지 않을 사람인가’에서 시작된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이 취임 이후 보여온 일관된 인사기준은 자신의 뜻을 충실히 따를 사람인가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연히 다른 의견을 갖거나 직언할 사람들은 대통령 주변에서 배제된다.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에서 경제민주화나 국민대통합을 상징했던 인물들이 대부분 사라진 지 오래다. 박 대통령이 이제는 떠나가는 민심을 붙들어매려면 자신의 주변을 바꾸어야 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입에 단 것만 취하는 자신부터 바꾸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