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흠의 눈]월드컵의 열광, 이번엔 자제하자

바야흐로 월드컵 시즌이다. 축구의 힘은 아무리 생각해도 위대하다. 언제나 그랬듯이 월드컵만 시작되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잊는다. 옆집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누가 어떤 아픔을 겪었는지 축구가 시작되면 아무것도 기억나는 것도 없고 생각나는 것도 없이 한 달간의 축제에 모든 시간을 보낸다. 과연 그런가, 정말?

세월호가 침몰한 지 두 달이 지났다. 참사에 대한 애도와 이어진 선거정국, 그리고 국무총리를 비롯한 새 내각 지명자의 도덕성과 역사인식 문제 같은 모든 현안, 한전의 밀양 송전탑 건설 강행과 주민들의 마찰, 삼성전자서비스노조의 파업, 소방방재청의 해체 등 근래 산적해 있는 풀지 못한 사회적 문제들까지 모두 월드컵이란 거대한 홀 속으로 빨려들어간 듯하다.

월드컵 16강은 국민의 삶보다 위대하고 풀어야 하는 어떤 과제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맞는 말일 것이다. 우리 국민들이 온전히 하나로 소통되고 단결되는 것이 축구 말고 무엇이 있던가. 그렇다. 우리에게 오로지 축구밖에 없었다. 너도 나도 하나 되고 생각이 일치하며, 이견이 없는 무엇은 오로지 축구 말고는 없지 않았던가. 우리는 축구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민족이고, 축구가 우리 삶에 기쁨을 유지시켜주는 원동력이며, 월드컵 16강은 무엇보다 우리가 꼭 이뤄내야 할 가장 중요한 염원이다. 축구는 철학이고 법이고 시스템이다. 모든 현안을 풀 수 있는 마법의 해법이다. 신문과 방송만 보면 정말 그렇게만 보인다.

비아냥거림이 너무 심한가, 아니다. 필자가 깐족대는 대상은 국민이 아니다. 실제 우리 국민들은 그렇지 않다. 축구에 열광하지만 아무것도 잊은 것이 없다. 축구를 보지만 세월호도, 밀양 할매도 잊은 적이 없다. 모든 것을 잊은 것은 국민이 아니라 보수언론과 친정부 방송이다.

무능한 정부는 바랐을 것이다.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보다 그저 부담스러운 정국이 이슈에 가려 잊히기를. 국민이 모든 것을 하루빨리 잊어버리기를. 국민들이 월드컵에 모든 시선을 빼앗겨 있는 한 달 동안 풀기 어려운 모든 문제를 정부의 뜻대로 강행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은 우리에게는 다른 월드컵이다. 축구의 나라 브라질 민중들에게도 다른 월드컵이다. 왜 그런지 이번 월드컵은 우리뿐만이 아니라 브라질 민중들의 실재하는 절망을 가리는 그 무엇 같아서 비애감이 크다. 브라질 정부는 월드컵을 강행하기 위해 브라질 노동자, 민중을 탄압하고 군병력을 동원해 시위자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있다. 사망자도 빈번하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두 달이 지났다. 아직도 학생 6명, 선생님 2명, 선원 1명, 일반인 3명 등 12명의 실종자가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절망의 바닥에 가라앉은 실종자 가족의 안타까움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아이들이 침몰하는 배에서 나오지 못하는 것을 지켜본 우리의 죄의식은 여전하다.

우리나라 첫 경기가 있었던 새벽, 정부가 거리응원을 독려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인천의 한 구청은 공무원들에게 시간외 수당을 지급하면서까지 거리응원에 나서게 했다. 새누리당 의원들도 거리응원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거리응원’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면 비중 있게 보도한 보수언론이 원하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 짐작이 간다.

백가흠의 눈

이번만큼은 월드컵을 즐기되 환희를 아끼자. 아무리 신이 나고 기쁜 일이 있어도 가혹하고 참혹한 죽음으로 초상을 치르고 있는 옆집을 지나칠 때만은 웃음을 멈추는 게 예의다. 우리에게 축구보다 더 중요하고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되겠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