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조홍근의 ‘알기 쉬운 건강이야기’]완벽한 건강은 없다, 과도한 절망이 문제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가 늙듯이 사실은 모두가 환자가 될 사람입니다.

아프면 수긍하고 고쳐나가고 개선해 나가고 그렇게 대응하는 것이 맞는 방향입니다.

몇 년 전에 본 감동적인 영화가 있습니다. 베토벤의 후기현악사중주 14번 C#단조 작품번호 131을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영화의 원제는 <A Late Quartet>으로, 제대로 번역하면 ‘후기현악사중주’이지만 극적인 느낌을 주려고 했는지 한국어 제목은 ‘마지막 사중주’입니다.

영화 <마지막 4중주>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여기에 아주 오래된 현악사중주단이 있습니다. 이제 창립 25주년이 된 푸가(Fugue)라는 현악사중주단입니다. 창립 기념 연주를 준비하는 과정은 겉으로 보아서는 원활하고 평온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모두가 다 자신의 문제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악역으로 많이 나온 크리스토퍼 월컨이 이 사중주단의 정신적 지주이자 선생님인 피터 역으로 나옵니다. 몇 년 전 안타깝게 타계한 명배우 필립 시모어 호프만이 제2바이올린 주자인 로버트 겔버트로 나옵니다. 극중 피터는 몇 년 전 사랑하는 아내와 사별하고 지금은 파킨슨병을 진단받아 어려워하고 있습니다. 창립 기념 공연과 다른 팀원들을 위해 애써 숨기고 있지만 병세는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제2바이올린 주자인 로버트는 자신이 제1바이올린을 할 실력이 있지만 부당하게 밀려났다는 생각에 늘 괴로워합니다. 그의 아내이자 이 악단의 비올라 주자인 줄리엣은 식어가는 부부 간의 사랑과 딸로 인해 괴로워합니다. 제1바이올린 주자 대니얼은 늘 외로운 사람으로 청년 때는 줄리엣과 연인이었지만 우유부단하고 같이 사는 것에 대한 확신이 없어 그냥 혼자 살고 있습니다.

완전하지 않고 늘 위태로운 것이 인생

피터는 사별한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나날이 심해져 가는 병세에 괴로워하고, 나머지 세 명은 과거의 감정의 앙금과 복잡하게 진행돼가는 남녀관계로 인해 서로가 파탄 직전까지 갑니다. 그러나 이 모든 갈등과 장애를 극복하고 마침내 창립 25주년 공연을 열게 됩니다. 그러나 악장 중간에 피터는 파킨슨병으로 인한 손의 마비로 더 이상 연주를 진행하지 못하고 연주를 중단합니다. 그리고 일어나 청중들에게 사과하고 사정을 설명한 후, 미리 점지한 이 악단의 후임 첼리스트를 소개하고 자신은 조용히 무대를 떠납니다. 그리고 젊은 후임 첼리스트는 바통을 이어받아 마지막 악장까지 연주하면서 이 영화는 끝납니다.

감독이 이 영화의 소재로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작품번호 131을 고른 이유가 있습니다. 극중 피터의 대화를 통해 드러납니다. 이 곡은 7악장으로 이루어졌는데 다른 곡과 달리 악장 사이를 쉬지 않고 이어서 진행합니다. 꽤 긴 곡으로 40분 정도가 소요됩니다. 현악기는 피아노와 달라 중간에 장력이 풀어져서 음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악장이 끝날 때마다 줄의 장력을 조여가면서 음을 다시 튜닝합니다. 그런데 이 곡은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처음에 일단 시작하면 줄이 풀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냥 기본음이 틀린 줄에 적응하여 본인이 음을 맞추는 수밖에 없습니다.

주인공은 인생도 이와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7악장 동안 줄의 장력이 풀리면서 상황은 불만족스럽고 완전하지 않지만 이런 상태를 그대로 감내하면서 돌파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곡의 내적인 특징은 어긋남과 조화(dissociation and integration)라는 상호 모순적인 내용입니다. 주인공은 인생도 이와 같이 절충하는(compromised) 상태에서 살아 나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완전하지 않고 늘 위태롭지만 그것이 자신의 인생이며, 푸가라고 하는 현악사중주단의 앞길이고, 이 곡이 보여주는 바이며, 그것이 바로 모두의 인생이라고 이 영화는 말해줍니다.

가끔 당뇨병이나 고혈압 또는 심장병을 진단받은 분의 좌절을 봅니다. 이런 병을 진단받음으로써 자신의 건강은 끝났고 자신의 인생 역시 큰 난관에 부딪혔다고 생각하여 공포에 질리고 모든 미래를 미리 질러 생각하여 절망에 빠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건강한 상태를 어떠한 병도 없는 아주 완벽한 상태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아주 오래 갈 것 같은 착각을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몸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생명입니다. 생명은 늘 변하고 한순간도 같은 상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한순간도 같을 수가 없습니다. 아프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픈 것은 인생에서 특별한 일은 아닙니다. 단지 아픈 것을 문제 삼는 것이 문제가 될 따름입니다.

환자는 일반적으로 본인만 아프고 고생하는 줄 잘못 압니다. 그러나 여러 환자를 매일 보는 의사는 어떤 아픔이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주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예를 들어 요즘 같은 계절에는 어지럽고 힘이 없고 앉기만 하면 졸게 되고 툭하면 자고 싶은 증상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증상을 앓고 있는 환자는 다른 사람의 일을 모르므로 자신이 무슨 죽을 병에 걸렸는지 걱정합니다. 그러나 이런 증상들은 요즘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계절적인 문제입니다.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말을 안해서 그렇지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들도 한두 가지의 건강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가 늙듯이 사실은 모두가 환자가 될 사람입니다. 아프면 수긍하고 고쳐 나가고 개선해 나가고 그렇게 대응하는 것이 맞는 방향입니다. 줄이 풀린 악기로 끝까지 연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한 가지 병으로 만병을 막는다

당뇨병과 심혈관질환을 진단받은 분들에게 저는 꼭 이 이야기를 합니다. 친구들은 쌩쌩한데 본인만 이런 병에 걸린 것에 대해 불안해하고 못내 억울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본인이 보기에는 자신보다 주변의 친구들이 더 식사나 생활습관이 불량한데 그 사람들은 멀쩡하고(겉으로 보기에는) 본인이 병에 걸렸으니 억울하기도 합니다.

좋은 일이 좋은 일이 아니고 나쁜 일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닙니다. 질병에 걸린 사람은 그 질병을 극복하고 관리하기 위해 지금까지 해왔던 나쁜 습관과 이별해야 합니다. 그 과정을 잘 하면 여러 가지 부수입이 있습니다. 당뇨병 극복을 위해 운동을 열심히 하고 좋은 식습관을 기르는 것은 비단 당뇨병 관리만이 아니라 다른 병의 발병도 막습니다. 이런 식생활습관은 사실 노화를 막고 암도 막는 좋은 방법입니다.

현재는 아무 병에 걸리지 않았다고 하는 친구들은 음주·흡연 등 나쁜 습관을 고치지 않고 안심하고 살다가 나중에 다른 큰 병에 걸릴 수 있지만, 당뇨병이나 심혈관질환으로 미리 예방주사를 맞은 사람들은 오히려 그 병을 관리하면서 다른 큰 병을 막습니다.

당뇨병과 심혈관질환에 걸리면 정기적인 병원 방문과 혈액검사와 합병증 검사를 받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도 다른 질병의 위험이 조기에 감지되어 그런 질병을 예방할 수 있고 질병이 생겼다 하더라도 초기에 진단하여 제압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당뇨병, 심혈관질환에 걸렸다고 마냥 상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본인이 과거의 나쁜 습관과 결별하고 좋은 습관을 키우고 제대로 관리를 받는다면 오히려 다른 병을 예방할 수 있는 지렛대가 됩니다.

우리는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프기 시작하고 여러 가지 병에 걸리고 늙습니다. 지금 내가 어떤 병에 걸렸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 질병으로 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걱정하지 말고 숨을 크게 쉬고 한 걸음씩 나아가세요.

닥터 조홍근의 ‘알기 쉬운 건강이야기’

*격주로 연재된 닥터 조홍근의 '알기 쉬운 건강이야기'는 이번 회로 마칩니다.

<조홍근 연세조홍근내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