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조홍근의 ‘알기 쉬운 건강이야기’]당뇨약 끊고 싶다면 뱃살을 줄이세요

복부지방은 당뇨병의 입구이면서 역설적으로 당뇨병의 출구가 됩니다. 복부지방은 당뇨병 발병의 가장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사실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에 쓰이는 약은 장기적으로 평생 쓰는 약이므로 약을 개발할 때 장기적인 부작용을 충분히 고려하기 때문에 오히려 부작용 측면에서 그렇게 위험하지 않습니다. 인터넷이나 매스미디어에서 가끔 언급되는 약에 대한 부작용은 사실 그렇게 과하게 걱정할 만큼 흔하지도 않고 심각하지도 않고 영구적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약에 대해 불편하게 생각하고 과도한 공포를 갖는 경우도 많습니다.

새로 진단 받은 당뇨인으로부터 여러 가지 질문을 받는데, 당뇨병이 완치되는지와 잘하면 약을 중간에 끊을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가장 많습니다. 당뇨병이 완치될 수 있을까요?

당뇨병 완치(cure)와 완화(remission)

당뇨병은 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드뭅니다. 대개 당뇨병이 나을 수 있느냐는 질문은 두 가지로 분류됩니다. 하나는 약을 먹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일반인처럼 음식을 주의하지 않아도 혈당이 올라가지 않는 상태입니다. 즉 정상상태를 의미합니다. 두 번째는 당뇨약을 끊고도 혈당이 잘 유지되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단순 탄수화물 등 혈당이 빨리 올라가는 음식을 많이 먹게 되면 식후 혈당이 정상을 훨씬 넘어가게 됩니다. 단지 올바른 식사와 운동으로 당뇨병이 더 진행하지 않게 하는 상태입니다.

당뇨병이 정상이 되는 경우는 아주 드뭅니다. 많이 좋아져서 약을 끊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당뇨병의 특징적인 대사이상은 계속 지속되는 상태입니다. 한 번 당뇨병이 되면 단백질 변성에 의해 특정한 대사적 상태로 이행하게 되는데, 이런 상태는 여간해서는 정상으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이걸 비유적으로 ‘Metabolic Karma(대사적 업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위의 경우에도 표면적으로는 약을 먹지 않고도 혈당이 정상적으로 유지됩니다. 좋은 식사습관과 규칙적인 운동 등의 좋은 생활습관으로 혈당이 정상으로 유지되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를 ‘당뇨병이 잦아들었다’고 합니다. ‘당뇨병 완화(Diabetes remission)’라고 합니다. 근본 뿌리는 없어지지 않았지만 살살 달래가면서 사는 것인데, 저는 이런 경우를 ‘휴화산 당뇨병’이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휴화산 당뇨병’이 되어도 좋습니다.

영국의 연구를 보면 당뇨병 중 치료를 열심히 해서 ‘휴화산 당뇨병’이 되는 경우는 당뇨병 환자 1000명당 1명 정도라고 합니다. 많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 연구는 당뇨병 기간이 길고, 당뇨병 조절이 잘 되지 않는 사람도 다 포함한 상태이므로 일반화하기 힘듭니다. 실제로는 훨씬 많은 사람들이 당뇨병 완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복부지방은 당뇨병의 입구이면서 역설적으로 당뇨병의 출구가 됩니다. 복부지방은 당뇨병 발병의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복부 지방세포에 쌓인 지방(산)은 허벅지나 팔에 쌓인 지방과 달리 대사적으로 대단히 활동적입니다. 허벅지에 쌓인 지방은 웬만해서는 피로 다시 흘러 들어가지 않고 허벅지에 오래 머무릅니다. 그런데 복부의 지방은 아주 쉽게 핏속으로 흘러들어가서 세포의 에너지가 되거나 다른 곳에 가서 쌓입니다. 지방은 지방세포에 존재해야 몸에 해롭지 않습니다. 그러나 복부 지방세포에서 나온 지방은 간에 가서 쌓여 지방간을 만들고, 췌장으로 흘러들어가 지방췌장을 만듭니다. 이렇게 지방이 지방세포 외의 다른 조직에 가서 쌓이는 것을 이소성 지방 축적(ectopic fat accumulation)이라고 합니다.

이소성 지방 축적은 당뇨병 발병의 아주 중요한 분기점이 됩니다. 지방간이 되면 간은 혈당을 많이 만들고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을 많이 생산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췌장에 지방이 쌓이면 췌장의 인슐린 분비기능이 떨어져 혈당이 높아도 인슐린이 잘 나오지 않게 됩니다.

즉 과다한 내장비만은 혈당을 높이고 인슐린 생산은 차단합니다. 결국 당뇨병으로 가는 길로 진입하게 됩니다. 따라서 복부비만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복부비만이 있다는 것은 췌장에도 기름기가 끼어 있다는 뜻입니다.

복부비만은 당뇨병 치료의 출구이다

문제를 해결할 때 의외로 그 답은 문제 자체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뇨병과 복부비만도 마찬가지입니다. 복부비만으로 생긴 당뇨병은 복부비만을 없앰으로써 탈출할 수 있습니다.

당뇨병이 생긴 지 얼마 안된 비만한 당뇨인들에게 체중 감량을 시키면 놀랍게도 혈당이 정상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카운터포인트(Counterpoint) 연구라는 아주 유명한 연구를 보면, 당뇨인에게 아주 적은 칼로리(600칼로리)만을 공급해서 살을 빼게 하면 4주와 8주 만에 인슐린 반응이 정상으로 돌아옵니다. MRI로 췌장 내 중성지방을 측정했는데 식이요법을 하면서 췌장세포 내 중성지방이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연구를 보면 비만한 당뇨인의 체중 감량은 당뇨병 치료와 정상화에 있어 대단히 중요합니다. 아울러 당뇨병 기간도 중요한데, 이렇게 강하게 체중 감량을 할 때 당뇨병 기간이 4년 이하였던 경우는 87%가 정상혈당을 찾은 반면, 8~23년 정도 된 사람들은 약 50%만이 정상혈당으로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금년에 발표된 DiRECT 연구는 더 인상적입니다. 당뇨병을 6년 정도 앓고 있는 체중이 많이 나가는(BMI 27~45), 스코틀랜드의 제2형 당뇨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입니다. 300명 정도를 무작위로 두 그룹으로 나누어서 한쪽은 일반적인 치료를 하였고 나머지 한쪽은 아주 저칼로리로 하루에 850칼로리밖에 안 되는 특수 유동식을 공급했습니다. 일반치료군은 1년 사이에 1㎏이 빠졌고 유동식군은 평균 10㎏의 체중 감소가 있었습니다. 일반치료군에서는 4%가 약을 먹지 않아도 당화혈색소가 6.5% 미만인 ‘당뇨병 완화’가 된 반면에 유동식군에서는 46%가 ‘당뇨병 완화’가 되었습니다. 10㎏ 이상을 감량한 경우에는 73% 정도가 ‘당뇨병 완화’에 진입했습니다. 위의 두 실험은 비만한 당뇨인이 살을 충분히 뺀다면 많은 경우에 당뇨약 없이 당뇨병이 조절되는 당뇨병 완화 상태로 향상될 수 있다는 인상적 결과를 보여줍니다.

여러 연구의 결과와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 볼 때, 당뇨약 없이 혈당이 조절될 수 있는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일단 당뇨병 발병 당시 체중이 많이 나갔던 사람이 그럴 가능성이 많습니다. 반대로 마른 당뇨병은 혈당이 의외로 잘 조절되지 않습니다. 당뇨병의 기간도 중요합니다. 당뇨병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 잘 돌아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직 췌장이 심하게 망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복부비만을 많이 줄여줌으로써 췌장의 인슐린 분비기능을 신속하게 회복시켜줄 수 있습니다. 젊은 사람이 더 유리합니다. 아무래도 젊으니까 신체능력에 손상이 덜 갔기 때문이겠습니다.

닥터 조홍근의 ‘알기 쉬운 건강이야기’

여기서 얻는 대단히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당뇨병 진단을 받으면 특히 젊고 과체중이고 초기 당뇨병인 사람들은 그냥 식사 조절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자신감과 불안으로 병을 그냥 방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중요한 시간을 헛되이 낭비한 경우입니다. 젊을수록, 당뇨병 초기일수록, 체중이 많이 나가는 당뇨병일수록 빨리 병원에 가서 본인에게 맞는 적극적인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당뇨병이 잦아들 기회가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연세조홍근내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