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숙의 명화로 보는 신화](23)결과가 정해진 싸움 ‘헤라클레스와 히드라’

삶은 평화로운 것 같지만 호수에서 수많은 물질을 해야만 살 수 있는 백조처럼 공격과 방어로 얼룩져 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적을 만든다. 그 적들로부터 공격당하기도 한다. 적으로부터 공격을 당하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이 발동한다. 도움이 될 수 있는 모든 세력을 동원하게 마련이다.

‘헤라클레스와 레르나의 히드라’ (1869~1876년, 캔버스에 유채,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소장)

그리스신화에서 히드라는 적과의 싸움을 위해 자신의 힘을 모두 쏟아붓는다. 아르고스 근처의 늪지대인 레르나 호수에 사는 히드라는 머리가 9개가 달린(전승에 따라 그 수가 일정하지 않다) 물뱀이다. 여러개의 머리 중 하나는 죽지 않는 불사의 몸이었다고 한다. 사람이나 가축을 잡아먹는 히드라가 늪지대를 장악하고 있어 사람들은 호수를 이용할 수 없었다. 히드라가 사람들에게 피해를 너무 많이 주자 헤라클레스는 이 뱀을 처치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앞서 헤라클레스는 헤라 여신의 저주로 아내와 아들 3명을 활로 쏘아 죽이고 말았다. 정신을 차린 헤라클레스는 속죄하고자 델포이 신탁에 따라 열두 과업을 완수하겠다고 약속한다. 히드라 이야기는 헤라클레스의 열두 과업 중 두 번째 과업이다. 헤라클레스는 이복형제 이피클레스의 아들인 조카 이올라오스를 데리고 레르나로 갔다. 헤라클레스는 동굴에서 히드라를 발견한다. 불화살을 쏘아 히드라를 밖으로 유인한다. 헤라클레스는 뱀을 보자마자 방망이로 머리를 쳐 죽이지만, 그 자리에 머리 2개가 새로 올라왔다.

헤라클레스는 조카 이올라오스에게 자신이 뱀의 머리를 제거하면 뱀의 목 부분을 불로 지지라고 했다. 다시는 머리가 새로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불사의 머리는 그런 식으로도 죽일 수 없었다. 헤라클레스는 불사의 머리를 베어 땅에 묻고 바위로 깔아뭉개 영원히 살 수 없게 만들었다.

헤라클레스와 싸움을 벌이기 직전의 히드라 모습을 그린 작품이 구스타브 모로(1826~1898)의 ‘헤라클레스와 레르나의 히드라’다. 화면 왼쪽 헤라클레스가 머리에 사자 가죽을 쓴 채 몽둥이를 들고 뱀을 노려보고 있다. 머리가 여러개 달린 커다란 뱀은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혀를 내밀고 서 있다.

몽둥이와 사자 가죽은 헤라클레스를 상징하는 상징물로 그의 힘을 나타낸다. 머리가 여러개 달린 커다란 뱀은 히드라를 의미한다. 몸을 세운 채 헤라클레스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싸움에서 지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바닥의 늪지와 기암괴석은 히드라가 사는 레르나 호수임을 뜻한다. 바닥에 쓰러진 사람은 히드라에게 희생당했음을 드러낸다. 구스타브 모로의 이 작품에서 헤라클레스와 히드라가 서로 마주보고 서 있다. 싸움 직전이라는 얘기다. 화면 중앙의 지는 해는 히드라가 죽을 운명임을 암시한다.

박희숙의 명화로 보는 신화

이미 해는 저물었다. 정해져 있는 답을 향해 싸우는 것처럼 무모한 일도 없다. 그 답도 히드라 자신이 만들었다. 부정한다고 운명을 이길 수는 없다.

<박희숙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