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미운 시민단체 ‘떡’ 하나 덜 준다](http://img.khan.co.kr/newsmaker/832/10_a.jpg)
진보시민단체들이 고사 위기를 맞고 있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정부 지원금이 끊기고 있기 때문이다. 지원금이 끊기는 과정은 “뭔가 있구나” 하는 의구심이 들게 된다. 일방적인 지원 중단은 시민단체의 사회적 역할을 생각하면 국가적으로도 손해다. ‘보이지 않는 손’의 진보시민단체 ‘목줄죄기’는 어디까지 진행될 것인가…
지난 4월 말 비영리 민간 싱크탱크인 희망제작소는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서 평창동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쌓여가는 재정 적자를 감당하기 어려워서다. 희망제작소의 적자 규모는 올해에만 1억여 원. 대부분 인건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많은 사람이 희망퇴직이나 휴직 형식으로 희망제작소를 떠났다.
희망제작소만 아니다. 환경재단도 지난 2월 전세를 뺐다. 전세를 월세로 바꾸라고 프레스센터 측이 ‘통보’했다. 프레스센터 측이 제시한 월세금은 월 3000만 원. 비영리단체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액수다. 환경재단은 그후 서울 중구 정동 34-7 동양빌딩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정이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그만두면 신규 인력을 채용해야 하는데 하지 못했다.” 재단 이미경 사무총장의 말이다. 희망제작소의 경우 5월 말부터 대다수 센터장이 비상근이 됐다. 하나은행과 마이크로 크레딧 사업을 했던 소기업발전소 활동은 중지됐다.
박원순 상임이사의 Weekly 경향 인터뷰 파장은 컸다. 행정안전부 지역경제과는 6월 19일 해명자료를 내고 “지역홍보센터 위탁경영 해지는 지역진흥재단의 인력·예산 운영 자체 혁신안에 따른 것”이라며 “재단 정기이사회 의결을 거쳐 지역홍보센터 위탁해지를 통한 직영 및 지역홍보센터 이전을 결정한 것으로, 외부기관과 전혀 무관하다”고 밝혔다. 행안부는 이에 따라 연 10억 원을 절감하고 현격한 접근성 제고 효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지역진흥재단 윤병준 팀장은 “정기이사회를 거쳐 위탁경영을 직영체제로 바꾼 것이며 지난해 12월 9일 이사회 때 과반수 찬성으로 안이 통과됐다”며 지역홍보센터 위탁해지가 ‘합리적 절차’에 따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건 내용 사전에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순탄하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정기이사회에 참석한 복수의 이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이사였던 희망제작소 김해창 부소장의 참석 여부를 두고 재단 측과 고성이 오갔다. 재단 측은 관련 규정을 들고 와 “김 부소장이 이해당사자기 때문에 이사회에 참석할 수 없다”며 나갈 것을 통보했다. 김 부소장은 본지와 통화에서 “내용이 뭔지도 모르는데 일방적으로 나가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항의했다”고 밝혔다. 정기이사회 참석 이사는 29명. 이중 민간위원은 4명이다. 나머지는 모두 정부 각 부처의 기획관이나 지자체 부시장 등이다.
김 부소장은 “당시 ‘지역홍보센터혁신안’이라는 제목의 안건만 이메일로 들어왔을 뿐, 희망제작소와 위탁경영을 해지한다는 등 구체적인 내용은 사전에 언급되지 않았다”며 자신뿐 아니라 그 자리에 참석한 다른 이사도 영문도 모르는 채 일방적인 통보를 듣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사로 회의에 참석했던 이학영 YMCA전국연맹 사무총장은 “이사회를 구성하는 사람 대부분이 자치단체에서 파견된 공무원인데, 그 사람들이 얼마나 주체성을 갖고 참여했겠나”라며 “이사를 거수기로 전락시키는 것 같아 그후 이사직을 사퇴했다”라고 말했다. 민간 이사로 참여했던 주형로 홍성환경농업마을 회장 역시 회의 직후 이사직을 사퇴했다.
지난해 9월 24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검찰 시민단체 죽이기 표적수사 중단 촉구 기자회견에서 최열 환경재단 대표가 신상 발언을 하고 있다. <김세구 기자>
위탁해지와 관련한 통보는 정기이사회 직전에 이뤄졌다. 지역진흥재단의 요청으로 마련한 상견례 자리였다. 지역홍보센터 운영을 맡았던 원기준 전 뿌리센터장(현 희망제작소 연구위원)은 “희망제작소가 운영을 맡은 지 1년이 돼 인사차 마련한 자리인 줄 알았는데 일방적인 통보였다”라고 말했다. 박원순 상임이사 일행은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김 부소장은 “그쪽(지역진흥재단) 이사장이 무조건 미안하다, 불가피하게 됐다, 할말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전했다. 지역홍보센터는 6월 9일 강남고속터미널 7호선 역에 다시 열었다. 재단 측에서 직영한다고 했지만 희망제작소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던 직원 5명을 고용승계 형식으로 다시 썼다. 결국 희망제작소 측 운영담당자만 교체한 셈이다. 원 위원은 말한다. “임대료가 비싸다고 하지만 프레스센터가 좋겠다고 했던 쪽은 그쪽(재단)이었다. 위탁이 무슨 권한이 있나. 만들어진 시설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것인데, 잣대를 들이미는 데 안 맞다. 만약 그런 것이라면 사전에 우리와 협의할 수 있는 것인데, 일언반구 없다가 밀어붙이니 우리로서는 ‘뭔가 있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박 상임이사가 또 다른 ‘외압’의 근거로 제시한 하나은행과 마이크로크레딧 사업 취소 과정 역시 그 주체가 기업이라는 점을 뺀다면 놀랍도록 유사하다. 하나은행이 2008년 9월 설립한 하나희망재단은 300억 원 규모의 하나희망펀드 소액대출을 희망제작소를 통해서 하기로 협약했다. 그런데 하나은행 측은 올 초 “하나희망재단 이사회가 희망제작소와 공동사업 안건을 부결시켰다”고 통보했다. 역시 재단이사회의 결정이라는 합법적 외피를 쓴 것이다. 그러나 속사정은 다르다. 사외이사로 이사회에 참석한 이근식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사회 자리에서 논의된 것이 아니라 먼저 결정하고 사후보고 형식이었다”고 말했다. 역시 ‘작전’은 이사회 밖에서 이미 진행된 것이다.
환경재단 도우면 장관도 잘린다?
‘보이지 않는 손’의 흔적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이미경 환경재단 사무총장은 6월 23일, 한겨레신문에 서울시 고위 간부에게 모기관 직원이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 압력을 넣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폭로했다. 환경재단이 주관하는 제6회 서울환경영화제(GFFIS)의 지원금을 둘러싸고 공문을 통한 긴 공방전이 환경재단과 서울시, 환경부 사이에서 오간 뒤였다. 이 총장의 말이다. “서울시는 환경부가 풀어주면 우리도 주겠다는 입장이었다. 환경부 장관·차관을 만나 이야기했다. 환경부 장관의 입장은 ‘말해줄 수 없는 이유로 줄 수 없다. 지금 분위기가 너무 안 좋아서 우리가 환경재단을 도왔다면 내가 짤릴 정도다’였다. 장관이 그렇게 이야기할 정도면 도대체 어디냐. 청와대란 말이냐.”
1, 2 환경재단 서울환경영화제가 교부금과 관련해 환경부에 보낸 공문. 수차례에 걸쳐 교부금을 요청했지만 환경부 답신은 ‘수용이 어려움을 알려드리니 양지해주시기 바란다’는 말뿐이었다. 3 올해 3월 여성부가 지원단체들에 받은 확인서. “불법시위를 주최·주도하거나 적극 참여하지 않았고, 구성원이 집시법으로 처벌받은 적이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모기관 직원 이야기를 들은 것은 서울시로부터였다. 이미경 총장은 오간 대화 내용을 비망록 형태로 기록해놓았다. “5월 19일 오전 9시 C·40행사장이었다. 서울시 환경담당 모 중간간부를 만났다. 그 간부가 내 손을 붙잡아 끌면서 ‘영화제 어떻게 돼가냐’고 물었다. 나는 ‘어떻게 되기는, 서울시가 안 도와주고 있는데…’라고 답했다. 잠시 후 최열 대표가 왔다. 최 대표가 왜 안 도와주냐고 물었다. 이 간부는 답하기를 ‘그러게 말입니다. ×××이 날마다 자기 상급자 본부장에게 협박전화를 해서 도저히 줄 수 없다’고 말했다.”(인터뷰 참조)
서울시뿐 아니다. 6월 중순, 한 중앙부처는 국·실장회의를 소집해 부처 사업과 관련, 촛불집회 참여 단체 지원 내역 리스트를 적어내라는 지시를 했다. 행안부 공익지원사업 이외에 각 부처와 지자체가 벌이고 있는 민관협력 사업을 재검토해, 지원받은 단체로부터 “앞으로 불법시위를 주최·주도하거나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고 구성원이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위반으로 처벌받은 사실이 없다”는 내용의 확인서를 받았는지 여부를 다시 체크하라는 지시였다. 담당 국장은 지시의 ‘윗선’을 청와대라고 회의 참석자들에게 밝혔다. 이와 관련, 중앙부처 한 공무원은 “실제 일하는 입장에서 민간협력은 필수적이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하는 것이다’는 식으로 (단체들을) 설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촛불시위에 참여했던 KYC(한국청년연합회)는 올해 행안부의 ‘비영리민간단체 공익지원사업’에 아예 지원신청을 하지 않았다. 촛불시위 등 불법시위 주도 단체는 배제하겠다는 방침도 그렇지만, ▲일자리 창출과 4대강 살리기 ▲사회통합과 선진화를 지향하는 신국민 운동 ▲100대 국정과제 등 지원사업 유형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표 참조). 천준호 대표는 “지역 KYC의 경우 ‘내용상으로 전혀 문제가 없고 좋은 프로그램으로 선정됐지만 정부 지침상 공모사업을 줄 수 없다’는 귀띔을 받은 사례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진보단체 빈 자리 급조된 보수단체가 채워
이주노동자방송은 지난해 이주민 미디어교육으로 3900만 원, 이주노동자영화제 3000만 원을 지원받았다. 하지만 올해는 신청하는 족족 다 취소되었다. 이 단체의 김혜련 행정지원팀장은 “일괄적으로 정부가 보낸 공문 이외에 딱히 언급이 없어 왜 우리 단체가 낸 사업이 탈락했는지는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정식적으로 통보받지 않았지만 광우병대책회의 1842개 명단에 이주노동자방송이 포함되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짐작할 뿐이다. 이들 단체가 빠진 자리에는 급조된 보수단체들의 사업이 자리 잡았다.
장은숙 참교육학부모회 회장은 “지난 정부 때는 뉴라이트나 보수단체라고 해서 의도적으로 배제하지 않았고, 프로그램만 좋으면 지원받았다”라며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아예 지난해 촛불시위에 참여한 단체들을 불법폭력시위 단체로 규정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진보시민단체를 배제했다”고 말했다. 장 회장은 교육과학기술부 학부모정책팀 신설 간담회에 초청받았다. “자문을 구한다는 자리인데, 전교조 성토장이 되었다. 학부모단체라고 초청된 단체 대부분이 뉴라이트나 박사모 같은 데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진보단체라고 할 수 있는 단체는 우리 단체뿐이었다.”
지역도 대동소이한 상황이다. 지난해 행안부 공익지원사업 지원을 받았던 대전시민환경연구소는 올해 ‘행안부 등록단체에 한해서 지원하겠다’는 방침 때문에 자연스레 배제되었다. 연구소 길종복 실장은 “결국 지자체에서 지원받으라는 것인데, 대전의 경우 아예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사업을 없앨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대전시민환경연구소는 ‘광우병대책회의리스트’에도 올라가 있지 않다. 길 실장은 말한다. “금강 수계위라고 있다. 같은 지역에서 컨소시엄을 구성하려고 했는데, 광우병대책회의에 참여한 단체들은 참가하면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 이것은 정부 예산도 아니고 수돗물을 먹는 시민들이 내는 물 비용 부담금으로 각 지역 유역청에서 운영하는 것인데….” 수계위 지원금을 받은 대부분 단체는 이전부터 해온 단체가 아니다. 길 실장에 따르면 담당직원은 “이런 사업까지 지원해야 하나” 하고 한숨을 쉬었다.
‘좌파 적출’로 피해받는 시민단체들
김창보 건강세상네트워크 정책위원장은 서울시 경우도 최근 프로젝트를 독식한 단체들을 보면 ‘급조되거나 이름을 처음 들어본 단체’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환자지원단체의 경우 진보·보수를 따질 것이 아닌데, 이런 곳까지 서울시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단체들의 신청명단을 보면 뉴라이트의 냄새가 난다”라고 덧붙였다. 건강세상네트워크는 정부 지원을 받는 대신 ‘후원의 밤‘을 열어 사업계획서를 발표했다. 건강세상네트워크뿐 아니라 상당수 진보시민단체가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 보통 하반기에 열던 ‘후원의 밤’을 당겨 상반기에 열고 있다.
안병옥 기후변화연구소 소장은 “지금 벌어지는 시민단체 목줄죄기는 한마디로 ‘좌파 적출’”이라고 규정했다. 안 소장은 “물론 그중에는 좌파로 볼 수 있는 개인이나 단체도 있겠지만 상당수는 좌파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문제다”라고 덧붙였다.
이학영 전국YMCA 사무총장은 지난해 촛불시위에서 YMCA 회원들을 주축으로 폭력에 반대하는 ‘눕자!행동단’을 조직해 태평로에 누웠다가 경찰에 폭행당해 팔이 부러졌다. 이전 정부 시절에는 청와대 인사수석으로도 거론되던 인사다. 이 총장은 “예를 들어 장애인 목욕을 시키는데 좌우파가 따로 있느냐”고 반문하며 “물론 문을 닫는 곳도 있고 축소되는 곳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면 원망과 분노만 쌓여 (이 정부에) 부메랑이 돼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사회가 품격 있는 사회로 가려면 이런 식의 국정 운영을 계속해선 안 된다”며 “합리적인 사회통합을 말하기 전에 반대자를 포용할 수 있는 자세가 아쉽다”고 덧붙였다.
| 2008년과 2009년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지원사업 유형 2008년 2009년 정리 =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임석빈 인턴기자 zomby011@hanmail.net>
![[오늘을 생각한다]](http://img.khan.co.kr/spko/ranking/weekly/140098/20240424110300_14009801.jpg)
그럼, 국민이 바뀌란 소리냐?
대통령 말씀에 또 답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