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MB 정부, ‘거버넌스’에 대한 무지

사회문제 해결·다중적 욕구 충족 위해 국정에 시민 참여시켜야

진보시민단체 회원들이 6월 22일 서울광장에서 이명박 정부 들어서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위협받는다며 이에 항의하는 기자회견과 함께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김정근 기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이상하다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은 시민사회 쪽이나 집권세력 쪽이나 마찬가지다.

시민사회 쪽은 정부가 시민사회를 무시하고 억압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 시민이 권력의 주체이고 권력의 정당성이 시민에서 나오는 민주주의 원리에서 자발적 결사체가 모인 시민사회는 곧 정부 권력의 원천이다. 그런데 왜 정부가 시민들이 자유롭게 결사체를 구성하고 공론장을 형성하여 자기 의사를 표출하고 공적인 업무에 참여하려 하는 욕구를 모르고 있는지 답답하다.

집권세력 쪽은 스스로 국정 운영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왜 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지, 그리고 각종 선거에서 왜 여당이 패배하는지 의문이다. 지난 10년간 진보적인 정권에 대한 비판이 점증하여 엄청난 지지를 받고 등장한 현 정권이 커다란 잘못도 없는데, 왜 정권에 대해 무관심하고 냉소적인지 의아해한다.

양자의 의문에 대한 대답은 거버넌스(governance)라는 개념을 관통한다. 고도로 복잡하고 다원화된 현대사회에서는 사회구조가 복잡하고 다양한 갈등이 나타날 뿐 아니라, 인간의 욕구도 다중적이다. 따라서 강제·계층제·다수결·획일성 등과 같은 작동원리로 움직이는 정부가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다중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어렵다. 그야말로 정부관료제로서는 복잡한 사회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는 정부 실패가 상시적으로 나타나는 시대다. 따라서 정부는 시민의 지지를 획득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거버넌스라는 통치기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시민을 권력의 주체로 세우고 각종 공적인 업무에 시민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는 것이다.

촛불집회 이해 못하는 이명박 정부
시민을 국정에 참여시키려는 노력은 민주주의에서 항상 있어왔다. 그래서 거버넌스 외에 참여, 공생산(coproduction), 파트너십, 사회적 구상 등과 같은 개념이 등장하였고, 넓게 본다면 사회자본, 자원봉사 등과 같은 개념도 포함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아침 출근길에 초등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깃발을 들고 교통정리를 하는 학부모를 볼 수 있다. 어린이의 교통사망률이 매우 높고, 그것도 교통사고가 주로 교통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에서 일어난다는 아이러니는 정부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초등학생의 등·하굣길에 교통정리를 할 공무원을 별도로 고용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기존 공무원이 출근하기 전에 초등학교 앞에서 교통정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 일을 녹색어머니회라는 자발적인 시민단체가 맡고 있다. 이것은 한 가지 예에 불과하다. 업무마다 차이는 있지만, 국정의 전 과정에 이러한 모델은 거의 그대로 적용된다.

그런데도 정부는 시민사회의 자발적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고사하고 민주주의 원리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서 20년 전에 이미 시효가 끝난 발전민주주의의 모델을 끄집어내 다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경제 성장을 이루는 데 골몰하고 있다. 그래서 촛불집회가 왜 일어났는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나아가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단체를 국정에 참여시키는 것까지 막고 있다. 시민이 먹는 먹을거리든, 국가 간의 외교든, 참여민주주의의 시대에서는 모든 정책을 정부가 결정하고 시민들이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방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경제 성장만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다중적 정체성을 가진 인간은 후근대적(post-modern) 사조의 진행과 함께 다양한 탈물질적 가치를 중시한다.

이명박 정권은 명분이나 이데올로기에 집착하지 않고 실질적으로 성과를 창출하고 시민의 삶의 질을 증대시키는 것을 국정의 과제로 두겠다고 하면서 자신을 실용정부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이다. 19세기 미국에서 남북전쟁 이후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산업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실용주의 철학은 지향하는 가치가 다원적이고 환경에 신축적이라는 특성을 갖는다. 즉, 실용주의는 경제적 효용을 넘어 다양한 가치를 중시하고,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특성을 갖는다. 그러나 현 정부는 경제적 가치에 집착하고 시대정신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오히려 반실용주의의 특성을 갖는다.

‘성공의 실패’ 모순 경계해야
박정희 정권은 자신의 태생적 콤플렉스였던 정당성의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산업화에 매진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유례없는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권위주의체제 하에서는 경제 성장에 성공하면 할수록 스스로 모순에 빠져든다. 소득이 늘어나고 교육 수준이 올라가자 시민들은 경제 외적인 가치를 요구하였고, 그것은 바로 정당성이 부족한 권력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도 똑같은 ‘성공의 실패’라는 모순에 빠져들 수 있다. 실제로 현재 한국 경제 수준에서 7% 경제 성장이라는 것 자체가 허구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성취되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만족하지 않는다. 상당한 경제적 성공을 이룬 후에도 사람들은 ‘그래서 어쨌다는 것이냐?’라고 반문할 것이다. 인간은 물질적인 존재인 동시에 정신적인 존재인 것이다.

한국 시민사회에는 지금 공포의 전 단계인, 일종의 ‘두려움’이 퍼져 있다. 정부가 나의 은행계좌를 뒤지지는 않는지, 심지어 내 사무실에 정부가 도청장치를 해놓지 않았는지 걱정한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다. 권력의 주체인 시민이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은 권력이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려움이란 바로 독재정권의 대명사인 것이다. 한국사회는 이미 장기간의 독재지배를 경험하였고, 자기희생을 통해 스스로 그것을 극복한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런 역사적 현실에서 다시 두려움을 느낀다면 그에 대한 반응은 냉소와 무시다. 권력에 대한 냉소와 무시는 최고 수준의 반대와 경멸을 의미한다. 조금이라도 애정이 남아 있다면 시민들은 비판하고 저항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래 시간이 가고 있겠지’와 같은 마음이다.

이러한 경멸적인 분위기뿐 아니라 미래 역사에서 민주주의의 기본조차 알지 못하고 시민의 본질적 욕구조차 이해하지 못한 무지한 정권이라는 오명을 쓰지 않기 위해, 현 정부는 거버넌스를 이해하고 시민사회와 함께 ‘협치(協治)’라는 쪽으로 통치방식을 전환해야 할 것이다.

박상필<성공회대 NGO대학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