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의 가을, 대멸종과 시작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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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3가에서 42년간 영업하던 서울극장이 8월 31일부로 문을 닫는다. 적잖은 이들이 <시네마 천국>의 마지막을 떠올리며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하지만 모두 함께 정든 극장을 눈물 흘리며 떠나보내던 <시네마 천국>과 달리 현실은 대만의 거장 차이밍량의 <안녕, 용문객잔>에 가깝다. 낡은 단관극장의 마지막 상영현장, 구석구석에서 몇 안 되는 관객이 극장의 쓸쓸한 최후를 함께 맞이하는 그런 풍경.

영화 <라스트 씬>의 한 장면 / ㈜시네마달

영화 <라스트 씬>의 한 장면 / ㈜시네마달

영화 <라스트 씬> 포스터 / ㈜시네마달

영화 <라스트 씬> 포스터 / ㈜시네마달

국내 극장가는 1990년대 후반대격변을 맞이했다. 서울 구도심 일대 단관극장에서 대기업 자본의 멀티플렉스로 중심이 이동했다. 사반세기가 흘러 어느새 극장이란 당연히 멀티플렉스 형태를 상상하는 세대가 주류가 됐다. 멀티플렉스 전성시대는 ‘천만 영화’라 불리는 한국형 블록버스터와 할리우드 대작을 중심으로 여러개 상영관을 (원래 취지와 다르게) 개봉 초반 몰아주는 ‘규모의 경제’ 전략을 구사해왔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그 방식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빈틈을 OTT가 재빨리 공략했다. OTT 확장과 맞물려 서울극장 폐관은 현존하는 마지막 1세대 극장의 상실인 동시에 다음 세대였던 멀티플렉스 체제의 쇠락까지도 상징하는 분기점이 됐다.

하지만 솔직히 필자의 관심은 그 거대한 흐름에서 늘 구석에 존재하던 독립예술영화 상영관들에 쏠린다. 서울극장 폐관 소식에 극소수의 사람은 ‘그럼 인디스페이스와 서울아트시네마는?’이라는 질문을 던졌다. 서울극장에서 한개 관씩 임대해 독립영화 전용극장과 예술영화 시네마테크로 운영되던 공간이다. 다행히 SNS 등을 통해 8월 31일 이후에도 정상 운영될 것이며 공간 이전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멀티플렉스가 ‘공룡’이라면 독립예술영화 전용극장은 원시 포유류다. 공룡의 멸종은 이들에게 기회가 됐고, 인류는 그 후예다. 하지만 현실 극장가에선 미래를 향한 모색보다는 당장 내일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박배일 감독의 다큐멘터리 <라스트 씬>은 2018년 폐관한 부산 국도예술관의 마지막 1개월을 담는 작업을 시작으로 광주극장, 강릉 신영극장, 서울 인디스페이스를 순회하며 소수의 애절함과 다수의 외면 속에 외딴 섬처럼 점점이 흩어진 대안문화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누군가에겐 낯설고 재미없는 영화만 틀어주는 취향 타는 공간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멀티플렉스에선 체험할 수 없는 문화적 풍요를 나누던 공간으로 기억되는 곳들의 애잔함과 위기의 정서가 가득하다.

단관극장에서 멀티플렉스로의 변화에 이어 극장산업은 자연스럽게 3번째 분기점을 지날 테다. 산업 추세를 감성에 젖어 가로막을 순 없다. 하지만 멀티플렉스 체제의 한계를 염려하던 이들에게 그 대안, 혹은 보완적 존재로 긍정되던 독립예술영화 전용극장의 미래는 별도로 고민해야 한다. 지원책만 이야기하자는 게 아니다. 문화 다양성을 보존하는 불씨로서 그 가치에 대한 토론이 필요한 때다.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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