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원의 사이언스 or 픽션]인간은 ‘애인로봇’을 더 사랑하게 될까

로봇과 섹스하려는 이들은 죄다 변태성욕자라 매도당해도 싸다고 보는가. 만일 멍청한 대답밖에 못하는 섹스인형이 아니라 사람에 버금가는 지성과 품성을 지닌 인공지능이 인간을 쏙 빼닮은 인공육체 안에 탑재된다면 어떨까.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2016년 초 영국 선더랜드 대학교의 성(性) 심리학자 헬렌 드리스콜은 <미러>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로봇공학기술의 발전 추이를 보건대 조만간 섹스 전용 로봇이 성 관련 산업의 중심에 서리라는 대담한 전망을 내놓았다. 심지어 그는 2070년쯤이 되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육체적인 사랑이 아주 원시적인 풍속처럼 비칠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툭하면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이 인간의 지성을 추월하는 날 인류의 안위가 위협받으리라는 우려를 일부 과학자들과 SF 작가들로부터 듣곤 했다. 이러한 근심의 대열에는 저명한 과학자(스티븐 호킹)와 인문철학자(닉 보스트롬)뿐 아니라 엘런 머스크(민간우주관광기업 ‘스페이스 X’의 설립자) 같은 수완 좋은 사업가도 함께했다.(필자의 책, <특이점 시대의 인간과 인공지능>, 부크크 2016, 136~137쪽 참조) 이제 한술 더 떠서 드리스콜 박사의 전망은 설령 우리가 로봇과의 공존에 성공한다고 한들 그때의 우리는 더 이상 지금의 우리와는 사뭇 다른 삶을 살리라는 상상을 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섹스인형 록시와 판매기업 창업주 더글라스 하인즈.

섹스인형 ‘록시’의 목표는 실질적 동반자
인간사회는 얼핏 법질서와 나름의 윤리·도덕 덕분에 안정되어 있는 듯하지만 막상 역사를 되돌아보면 그 규범 자체가 늘 조금씩 혹은 혁명적으로 변화해왔음을 알 수 있다. 현대인들이 어린 남성과 성인 남성의 육체적인 동시에 정신적인 결합을 찬미하던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그리스 고전문화를 올곧이 이해하기 어렵듯이, 향후 50년에서 1세기 후의 사람들이 어떤 성 습속을 문화의 주류로 받아들일지 현 단계에서 어찌 속단할 수 있을까.

이미 미국에서는 ‘트루컴패니언’이란 회사가 ‘록시’(Roxxxy)라는 이름의 실물크기 섹스인형을 일반에 판매하고 있다. 이 기업의 창업자 더글라스 하인스는 2015년 인터뷰에서 록시 개발의 궁극적인 비전은 단지 섹스도우미 차원을 넘어서 실질적인 동반자 관계를 구현하는 데 있다고 공언했다. 최종단계에 가서는 록시가 소유자의 취향을 파악해서 맞춤 대응하게 함으로써 성적 취향은 물론이고 흉금을 털어놓는 벗에 버금가는 친교의 상대가 되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일본 SF 애니메이션에 곧잘 등장하는 섹서로이드(Sexeroid)를 벤치마킹 하겠다는 뜻일까.

포르노산업이 인터넷 기술의 최대 수혜자인 동시에 강력한 촉진자 역할을 해온 전례에 비추어 볼 때, 앞으로 인공지능과 로봇공학 개발사업에 <플레이보이>와 <허슬러>가 주요 투자자로 참여할지 누가 알겠는가. <플레이보이>는 2015년 12월호를 마지막으로 잡지에 누드를 더 이상 싣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우리의 성문화가 바뀌어서라기보다는 단지 누드 사진 정도로는 인터넷이나 멀티미디어와 더 이상 경쟁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새로운 틈새시장을 찾기 위한 조치로 이해된다. 그러니 포르노산업의 제왕들이 로봇을 이용한 섹스산업에 엄청난 시장 기회가 있다고 판단한다면 어떤 결정을 내릴지 누구인들 속단할 수 있겠는가.

섹스로봇 시장이 단지 남성들의 전유물이 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고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여성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현대 산업사회에서, 더 이상 이성과의 결혼이나 육아에 의미를 두지 않는 여성들은 참견하기 좋아하는 진짜 남성보다는 차라리 남성형 록시를 주문할지 모른다. 더구나 록시가 단지 잠자리 상대만이 아니라 온종일 남에게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동시에(실은 인공지능의 패턴 알고리즘에 의한 대응일지언정) 심심찮게 위로의 말이라도 건네며 어깨를 감싸준다면 구매수요는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나아가서 SF 영화나 소설에서 묘사하듯 거의 인간 뺨치는 수준의 외모와 지능까지 갖추는 날이면, 이 세상 대부분의 남녀는 혼자 살며 각기 고가(高價)의 섹스로봇을 장만하느라 은행의 장기대출을 감내하려들지 모를 일이다. 이쯤 되면 앞서 드리스콜 박사가 예견한 미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다 해서 인간의 멸종을 염려할 필요는 없다. 유전공학의 발달로 이미 시험관 아기가 가능해진 마당에 법적·제도적 족쇄만 풀리면 인공자궁이 임신과 출산을 대신할 것이다. 매달 여성은 난자를, 남성은 정자를 정부에 제공하고 그 대가로 일정액의 공적 부조를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결과적으로 인간은 성별을 불문하고 누구나 자신에게 전적으로 맞춰진 이상적인 캐릭터의 섹스로봇과 해로하게 되나 인류 종(種)이 종말을 고하지는 않는다.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정말 이러한 미래를 원하느냐이다.

과학소설의 성역쯤이었던 성적 소재 역시 1960년대 후반부터 부서지기 시작했다. 사진은 오럴섹스를 적나라하게 묘사했다는 이유로 미 의회 예술분과 청문회까지 열리게 했던 모먼 스핀래드의 소설 <벌레 잭 배론>(1969).

유전공학의 발달로 인류 종말은 없어
이쯤에서 SF가 먼저 내다본 세상을 살짝 훔쳐보자. SF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한 사색을 통해 현재의 우리를 돌아보게 해주는 혜안이 있으니까. 세계 과학소설의 본류이자 가장 큰 시장인 미국에서도 성적인 소재는 20세기 초·중반까지만 해도 공공연한 금기였다. 청소년용과 어른용이 딱히 구분되지 않을 만큼 성적 요소가 거세된 신세였던 과학소설이 제대로 총각 딱지(?)를 떼게 된 때는 영미권에 뉴웨이브 운동이 불붙은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부터다. (물론 필립 호세 파머의 <연인(The Lovers)>(1953년)이 1950년대 초에 발표된 바 있지만 시장의 대세라 보기는 어려웠다) 이 문학운동은 이전까지만 해도 과학소설의 금기였던 성역들을 과감히 부수려 들었고 성적(性的) 소재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같은 시기 <플레이보이>는 매달 A급 작가들의 빼어난 과학소설 단편들을 실었다. 이때쯤 가서 노먼 스핀래드의 <벌레 잭 배론(Bug Jack Barron)>(1969년)처럼 오럴 섹스를 적나라하게 묘사했다는 이유로 미 의회 예술분과 청문회가 열리게 만든 과학소설까지 나왔다.

과학소설은 어떤 편견도 거두고 세상의 변화를 적극 조망하는 장르인지라 일단 성적 관심을 보이게 되자 이 장르문학은 단지 인간들 사이뿐 아니라 외계인과 로봇(또는 앤드로이드) 같은 이질적 존재들과 인간의 성행위를 직·간접적으로 묘사하는 작품들을 쏟아냈다. 심지어 아이작 아시모프처럼 보수적인 작가조차 <파운데이션의 서막(Prelude to Foundation)>(1988년)의 결말에서 남자 주인공 해리 셀던이 여주인공 도스 베나빌리에게 청혼하게 했다. 문제는 도스가 여성을 쏙 빼닮은 외모와 달리 실제로는 휴머노이드 로봇이라는 사실이다. 로봇과 인간의 성적 결합을 차세대 인류의 정의를 둘러싼 진지한 성찰의 주제로서뿐 아니라 말초적인 흥미를 끌기 위한 흥행 소재로 적극 활용한 쪽은 주로 일본의 애니메이션 시장이다. 21세기 전후 일본의 SF 애니메이션들은 속칭 ‘섹서로이드’라는 용어가 빈번하게 등장할 만큼 로봇공학을 매춘산업에 적용한 근미래 사회를 빈번하게 다룬다. 일본의 이러한 접근방식은 서구 작가들에게 되먹임되어 미국작가 파올로 바치갈루피의 <와인드업 걸(The Windup Girl)>(2009년)은 일본식 섹서로이드를 유전공학 기반의 유기체 인조인간으로 재설정하여 인간의 탐욕스런 욕망을 탐구한다. 심지어 윌리엄 깁슨의 <아이도루(Idoru)>(1996년)에서는 일본의 한 록가수가 사이버 여가수 레이와의 결혼을 발표한다. 이는 배우자가 물리적 외피에 불과한 로봇 대신 그 실체인 인공지능으로 바뀌었을 뿐 인간과 기계의 결합이란 점에서는 매한가지다.

성적 정체성은 어떻게 부여할 것인가
그런데 로봇에게 어떻게 여성이나 남성의 성징을 부여한다는 것일까. 외양만 예쁘장한 여성처럼 만들어놓는다 해서 그 로봇이 여성처럼 생각하고 행동할까. 자칫 로봇에게 성징을 부여하는 시도 자체가 인간 본위의 우스꽝스러운 마스터베이션으로 비쳐지지는 않을까. 우리는 무슨 기준으로 도스 베나빌리와 레이를 여성으로 판별한단 말인가. 그러나 테드 창은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The Lifecycle of Software Objects)>(2010년)란 소설에서 이러한 물음에 나름 현실적인 답변을 한다. 그 대안은 학습하는 것이다. 최근 로봇연구소들은 인간의 안전을 위해 인간의 지시를 경우에 따라 거부하거나 인간의 감정을 모방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다. 딥러닝(Deep Learning)이라 불리는 이러한 학습방식이 성적 정체성을 갖는 데에도 응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섹스로봇의 실용화에 반대하는 입장도 있다. 영국 드 몬트포드 대학의 로봇 윤리학자 캐슬린 리처드슨은 섹스로봇의 발전이 현실의 인간관계에 문제를 가져오리라고 경고한다. 한마디로 미국에서는 섹스인형이 버젓이 팔리고 있는 가운데 영국에서는 이를 금지하자는 대중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웃기는 상황이 오늘날 우리의 자화상이다. 상반되는 두 입장은 인간이야말로 모순덩어리임을 새삼 일깨워준다.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로봇과 섹스하려는 이들은 죄다 변태성욕자라 매도당해도 싸다고 보는가. 그러나 기술적 특이점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의 현실은 점차 이러한 질문에 쉽게 대답하기 어려워질 것 같다. 만일 멍청한 대답밖에 못하는 섹스인형이 아니라 사람에 버금가는 지성과 품성을 지닌 인공지능이 인간을 쏙 빼닮은 인공육체 안에 탑재된다면 어떨까. 이에 대해서는 앞서 예로든 보수적인 아시모프조차도 대담한 결론을 내놓는다. <파운데이션의 서막>에서 도스라는 로봇은 해리의 청혼을 거절한다. 자신은 인간이 아니라서다. 하지만 해리는 개의치 않는다. 해리의 뜻밖의 태도에 도스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되묻는다.

“정말 상관없어요? 당신은 이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싶어요?”

“내 식대로 받아들이겠어요. 당신은 도스예요. 당신이 다른 그 무엇이라 해도, 이 세상을 다 준다 해도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당신이에요.”

… (중략) …

“도스, 사랑을 느껴본 적 있어요?”

“해리, 미안해요. 그런 적 없어요. 그래요. 해리, 나는 진정 당신이 원하는 존재가 아니에요.”

“도스, 아무리 그래도 난 상관 안 해요.”

셀던은 두 팔을 벌려 그녀를 포옹했다. 도스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에게 키스했다. 천천히 부드럽게, 그러다 정열적으로. 그러자 그녀의 팔이 갑자기 그를 꽉 끌어안았다.

그가 입술을 떼자 그녀는 미소를 머금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한 번 더 해주세요, 해리.”(<파운데이션의 서막>, 국내번역판 630~633쪽)

고장원의 사이언스 or 픽션

지구촌 세계화로 전염병엔 국경이 없다

해리는 학자인 까닭에 자신이 처한 상황을 누구보다 깊이 숙고했지만 끝내 도스를 반려자로서 포기할 수 없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녀 없이는 살 자신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가정을 그저 소설 속의 허구라고 웃어넘기면 그만일까. 과학은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 나아간다. 원자핵을 처음 발견한 과학자 어니스트 러더퍼드는 원자폭탄이 불가능하다고 말했고 아인슈타인도 처음에는 그리 생각했다. 열역학의 선구자 캘빈 경은 공기보다 무거운 물체는 절대 하늘을 날 수 없다고 단언했지만 라이트 형제가 그러한 주장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렸다. 우리가 내일의 과학을 담보할 수 없다면 내일의 법과 윤리인들 담보할 수 있을까.

<고장원 SF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