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원의 사이언스 or 픽션]3D 가상현실의 사이버섹스는 죄악일까

사이버섹스가 지구 반대편에 가 있는 연인 혹은 배우자와 수시로 가상현실에서 사랑의 밀어와 함께 서로의 나신을 어루만지며 교감할 수 있다면 이를 무조건 정신적 해악이라 볼 수 있을까?

최근 영국 기업 스타십이 가상현실 실시간 대화서비스 앱 ‘브이타임’(vTime)을 출시했다. 삼성 VR기어(헤드셋)나 구글 카드보드 장비에 이 앱을 다운로드하면 대화방 멤버들이 깎아지른 벼랑 끝에 아슬아슬하게 둘러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간담 서늘한 절경보다 안락한 대화 분위기를 원한다면 배경을 오붓한 모닥불가나 햇살이 눈부신 백사장으로 바꿔보라. 대화 도중 시야를 좀 더 드라마틱하게 손보고 싶다면 구름을 꿰뚫는 비행기 안으로 점프하거나 우주정거장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는 전망은 어떤가! 헤드셋 화면에 보이는 인물들은 실제 접속자들을 대신한 아바타들이다. 브이타임의 장점은 대화 상대와 직접 만나지 않아도 코앞에 앉은 아바타와 마주보며 말하다가 언제든 머리를 도리질하거나 코를 후비는 등 일상의 모습을 스스럼없이 보여줄 수 있다는 데 있다. 가상공간인데도 뻔질나게 드나들다 보면 오프라인에서와 같은 친밀감이 싹트게 된다는 말이다. 이런 식의 정서적 유대는 문자와 사진, 그리고 동영상 교환만으로는 쌓기 어렵다. 접속자가 고개를 돌리면 근육의 움직임을 인식해 버추얼 공간이 따라 이동한다. 한마디로 윌리엄 깁슨의 소설 <아이도루(Idoru); 1996년>에 나오는 사이버대화를 연상하면 된다(이 장편소설에서 미국 소녀와 일본 소녀는 아바타를 내세워 서로 만지고 껴안는다). 단점은 대화방 참여자들이 붙박이로 앉아 수다만 떨어야 한다는 것이다.

SNS도 가상현실 기술과 접목 개연성 커
이런 한계는 곧 극복될 것이다. 일찍이 2003년 린드랩이 선보인 가상현실 커뮤니티 서비스 세컨라이프(Second Life)가 이용자들이 가상의 도시를 내키는 대로 돌아다니며 다른 이들과 사귈 수 있게 해주지 않았던가. 사이버머니 환전이 불법인 데다 이용자의 자유도가 너무 높아 우리나라에서는 사업을 접었지만(우리나라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일상생활보다는 정해진 미션의 최단시간 돌파나 득점랭킹에서 보듯 중독성 게임에 더 관심을 두는 경향이 있다), 세컨라이프는 미국에서 한때 큰 인기를 모았다. 가장 큰 이유는 그 안에서도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짓을 다 할 수 있어서다. 쇼핑하고 직업을 얻고 땅을 사고파는 것으로도 모자라 조악하나마 성기를 구입해 사이버섹스를 흉내낼 수도 있다. 그 중 백미는 온라인상 결혼이다. 사이버부부가 각자의 오프라인 공간에 살며 온라인으로만 부부관계를 유지하다 보니 현실의 일부 유부남·유부녀가 남몰래 사이버결혼을 병행하는 통에 사회적 물의를 빚기도 했다.

브이타임 참가자들의 오프 & 온라인 모임

세컨라이프가 페이스북과 트위터같이 보다 단순한 서비스밖에 제공하지 못하는 후발업체들에 밀려난 것은 너무 고사양이라 PC 이외의 환경에는 아직 적합하지 않은 데다, 실제 삶과 마찬가지로 높은 자유도를 보장하는 서비스환경이 너무 시대를 앞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성능 스마트폰 보급이 늘고 있고 장차 페이스북과 트위터보다 더욱 역동적인 서비스 환경이 요구될 터이므로 SNS의 미래는 3D 가상현실 기술과 접목될 개연성이 크다. 여기에 촉각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이리라. (어떻게 촉감 서비스가 가능한지는 잠시 후 설명하겠다.) 세컨라이프는 그보다 10여년 앞서 발표된 닐 스티븐슨의 사이버펑크 소설 <스노우 크래시(Snow Crash); 1992년>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유명한데, 사회관계망 서비스의 미래가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진화해 나갈지 구체적인 윤곽이 궁금하다면 지금이라도 읽어보길 권한다. 아직 현실 기술이 소설을 다 따라잡지는 못했으니까.

위의 가상현실은 PC 모니터 안을 들여다보거나 VR기어를 머리에 쓰는 수준이지만, 조만간 3D 가상현실은 거실이나 안방의 벽면을 상호작용 가능한 스크린으로 바꿔놓을 것이다. 유연하게 휘는 OLED(유기발광 다이오드)를 종이처럼 얇게 만드는 기술이 계속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더구나 전자제품 가격은 갈수록 내려간다. 처음에 1000만원을 호가하던 평면TV 값은 10년 만에 50분의 1이 됐다. 60여년 전 쓰여진 레이 브래드버리의 소설 <대초원에 놀러오세요(The Veldt); 1950년>에는 사방 벽이 아프리카 대초원으로 가득 찬 아이들 놀이방이 나온다. 입체 스크린으로 코팅된 벽에는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까지 생생하다. 여기에 소슬바람에 불어오는 풀내음마저 코끝을 스치면, 다시 말해 방향(芳香) & 음향장치까지 입체영상과 동조된다면 그야말로 화룡점정이다. 아이들은 그 방을 폐쇄하려는 부모를 안으로 끌어들여 가상현실에서 만들어낸 상상의 존재를 동원해 살해한다. 오늘날 게임중독의 폐해를 연상케 하는 결말이랄까. 허나 연장 자체만 탓할 일은 못된다. 뭐든 쓰기 나름이니. 예컨대 세컨라이프의 경우 그 안에서 벌인 사업으로 100만 달러 이상 번 사람들이 여럿 나와 화제가 되었다. 가상현실이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대신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보다 현실감 있게 구현하는 데 기여한다면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세컨라이프의 운명을 되풀이하지 말라는 보장이 있을까.

도널드 트럼프 세컨라이즈 유세

사이버 섹스, 행복일까 고독일까
가상현실이 큰 영향을 미칠 영역이 비단 사회관계망 서비스뿐이랴. 군사용과 학습용 시뮬레이션은 기본일 테니 따로 언급하지 않겠다. 대신 필자는 이 기술이 향후 막대한 수익을 창출할 또 하나의 거대시장으로 사이버섹스를 지목하고 싶다. 가상현실이 인터페이스 기술의 끊임없는 혁신에 힘입어 한없이 진짜 현실을 수렴해간다면 인터넷의 최대 수혜자가 포르노사이트였다는 평가가 있듯이 사이버섹스 또한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최첨단 사이버섹스는 인간의 행복에 도움이 될까, 아니면 인간을 더욱 고독하게 할까?

교훈적 결말로 관객의 환심을 사려는 SF영화라면 사이버섹스를 인간의 변태적 욕망이 극에 달한 산물로 매도할 것이다. 하지만 과학기술에 의해 중개되는 섹스가 이드(id)의 비틀린 부산물이라는 발상은 과연 얼마나 합리적인 판단일까? 개인용 컴퓨터만 봐도 초기에 인간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키리라는 우려가 많았다. 극히 일부이나 정말 중독자도 나왔다. 그러나 인터넷 포털들과 컴퓨터 기반의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바쁜 일상에 치여 대인관계가 소원해졌던 이들의 시야를 오히려 넓혀주지 않았던가. 정보의 바다에 연결되면서 컴퓨터 단말은 단순한 기계뭉치가 아니라 우리의 손과 발, 그리고 머리 노릇을 대신하고 있다.

사이버섹스가 단지 CGI가 만들어낸 허깨비와 인간이 나르시즘적 관계를 맺는 수준에 머문다면 인간성 상실 운운하는 윤리적 비판을 귀담아 들을 법하다. 하지만 (여행이나 전근으로) 지구 반대편에 가 있는 연인 혹은 배우자와 수시로 가상현실에서 사랑의 밀어와 함께 서로의 나신을 어루만지며 교감할 수 있다면 이를 무조건 정신적 해악이라 볼 수 있을까? 존 발리(John Varley)의 소설 <블랙홀 지나가다(The Black Hole Passes); 1975년>는 일찍이 이러한 상황을 예견했다. 외계인들의 전파신호를 탐지하려 수신감도가 좋은 명왕성 외곽 소행성들에 정보사냥꾼들(혹은 신기술 파파라치들)이 파견된 근미래, 주인공 남자는 그 중 한 소행성에 사는 유일한 인간이다. 외계 전파에는 인류 경제를 좌지우지할 놀라운 과학기술정보가 종종 들어 있어 하나만 건지면 큰돈을 만질 수 있다. 문제는 그때까지 다 큰 어른이 어린왕자처럼 독수공방하며 마냥 징역살이 아닌 징역살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낙은 멀리 떨어진 또 다른 소행성에서 같은 일에 종사하는 여성과 종종 입체화상을 주고받으며 유사 섹스를 하는 것이다. 둘 다 벌거벗고 상대의 입체화상이 뜨는 공간 앞에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눈앞의 나신을 주무른다. 실제 촉감을 느낄 수 없고 둘 사이의 농익은 대화 또한 전파가 오가는 거리 탓에 몇십 초씩 지체가 일어나나, 심우주의 외로운 남녀에게는 독방에 갇힌 죄수처럼 지내느니 그 편이 훨씬 위로가 된다.

브이타임 대화방

조던은 트리모니셔의 육체를 모공 하나 머리카락 한 올까지 전부 안다. 둘은 성욕을 참을 수 없을 때면 바닥에 나란히 누워 서로를 쳐다봤다. 둘은 서로 몇 ㎝ 떨어져서 혹여 접촉으로 홀로그램이 으깨지지 않게 주의하며 서로의 손을 가깝게 내민다. 그러고는 실제 만나게 되면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이야기하며 서로의 앞에서 격렬하게 자위했다. -존 발리의 <블랙홀 지나가다>(국내 출간된 <캔자스의 유령>에 수록), 121쪽

화상캠을 통한 외설채팅의 이 미래버전에는 촉감이 빠져 있다. 미국의 저명한 물리학자 미치오 카쿠는 이러한 난제 역시 곧 극복되리라 본다. 컴퓨터가 만들어낸 것이 실재하는 양 느끼게 해주는 이른바 ‘햅틱 테크놀로지’(haptic technology)를 응용하면 파트너의 피부질감은 물론이고 남성이든 여성이든 간에 성기 주변이 진짜 살로 밀착되는 느낌 또한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물론 상대방의 피부질감 데이터는 미리 입력해놓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원래 로봇 팔로 방사능 물질을 다루려고 개발된 이 기술은 스프링과 기어로 미세하고 정교한 압력을 만들어낸다. 현재는 손가락이 쓸고 지나가면 철판과 부드러운 천 혹은 까칠한 사포의 질감을 전달하는 단계까지 진화했다.

세컨라이프에서의 유사성행위

연애·결혼문화, 가족제도까지 바꿀 수도
밋밋한 아바타 대신 실제 파트너의 입체영상을 직접 만지고 느끼며 밀담을 나눌 수 있다면 두 사람 사이에 놓인 거리가 꼭 방대한 우주나 지구 반대편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단지 해당 기술의 장점을 한눈에 부각시키고자 극단적인 예를 들었을 뿐. 이런 서비스는 실은 같은 도시에 사는 연인 간에도 얼마든지 애용될 수 있다. 각박한 현대사회에서는 먹고사느라 바쁜 나머지 깊이 사귀는 남녀라도 매일 만나기 쉽지 않다. 그래도 보고 싶은 마음에 낮에는 수시로 문자를 주고받고 밤에는 장시간 통화를 한다. 이때 만일 오프라인 섹스에 거의 근접하는 사이버섹스가 가능하다고 가정해보자. 이를 부정적인 눈으로만 보는 것이 과연 온당할까? 출장이 잦은 배우자를 둔 가정도 마찬가지다. 서울의 아내와 부산에 출장 간 남편이 원하면 언제든 밤에 농염한 무드를 즐길 수 있다면 그게 비윤리적일까? 물론 어디에나 악용하는 이들은 있다. 사이버섹스 기술이 보편화되면 포르노산업은 한 번 더 도약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기술이 있건 없건 인간의 욕망을 근본적으로 제어할 수 없는 한 음지의 성 관련 산업은 근절되기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거나 욕망을 비즈니스화하려는 일부 인간들에게 있지 기술 자체는 어디까지나 몰가치적이며 몰윤리적이다.

오히려 긍정적으로 보면 새로운 시야가 트인다. 일단 사이버섹스는 성병의 위험에서 자유롭다. 촉감 재현기술이 사이버섹스 산업 덕에 세련되어지면 원격수술에도 도움이 된다. 애초 우주산업을 위해 개발된 기술들 중 상당수가 훗날 민간분야에 전용된 사례와 같은 이치다. 원격부부가 준(準)육체관계를 유지한다면 세컨라이프에서처럼 부부 흉내가 아니라 진짜 부부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상파울루의 아내와 런던의 남편이 각자의 기득권(직업, 직장, 가족, 친구, 국적, 경제권)을 거의 포기하지 않은 채 평생 해로할 수도 있다. 가정폭력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고 이혼 시 재산분할 분쟁이 불거질 염려도 훨씬 적다. 병간호나 기념일을 위해 1년에 한두 번 직접 만날 수도 있겠으나 결혼 때문에 자신의 많은 부분을 양보 혹은 포기하느라 스트레스 받을 염려가 없다. 아이를 원하면 두 사람의 유전자로 인공수정하면 된다. 양육을 혼자 할지, 번갈아 할지, 아니면 함께 살며 할지는 그 다음의 선택지다. 결과적으로 사이버섹스는 우리의 성문화뿐 아니라 연애문화와 결혼문화, 그리고 나아가서는 우리의 가족제도까지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놓을지도 모른다.

고장원의 사이언스 or 픽션

이상의 논의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영화 <아바타>를 떠올려보라. 비록 아바타가 오리지널은 아니지만 그것이 진짜의 진정성을 올곧이 반영하는 날이 온다면 그러한 존재를 온라인의 허상에 불과하다며 단칼에 내칠 수 있을까? 정신적·육체적으로 진짜 실물에 거의 근접하는 경험을 하게 해줄 뿐 아니라 당신이 사랑하는 이의 숨결이 깃든 아바타라면 어찌 그 진정성을 느끼지 못한단 말인가?

<고장원 SF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