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칼럼]우리에게 오히려 필요한 ‘검열 코드 451’

지난달 말, 검열로 인해 웹 페이지를 표시할 수 없다는 뜻의 에러 코드 451이 인터넷 표준화 기구로부터 정식 인가되었다는 뉴스가 흘러들어왔다. 451은 지금 보려고 하는 콘텐츠가 검열과 같은 ‘법적인 장애’로 표시할 수 없음을 나타내는 숫자. 웹사이트나 망사업자들이 표시하게 될 이 숫자는 미국의 고전 SF <화씨 451도>에서 따왔다고 한다. 분서(焚書), 즉 종이에 불이 붙는 온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검열이 일상이 된 디스토피아가 무대인 소설이니 에러 코드 하나에도 짙은 풍자가 녹아 있다. 에러 코드는 개발자나 기술자의 것만은 아니다. 웹을 돌아다니다 보면 가끔 404 에러란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페이지가 없다는 뜻으로, 이러한 수치를 인터넷의 상태 코드라고 한다. 404와 함께 요청이 거부되었다는 403이나 인증이 필요하다는 401 등이 아마 종종 목격되는 에러들이다. 에러마다 이렇게 규격화된 약속이 필요한 이유는 웹도 결국은 거대한 시스템, 사용하다가 잘 안 되었을 때를 위한 해결의 실마리를 남겨둔다.

4로 시작하는 에러는 요청자 쪽에서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고, 5로 시작하는 에러는 요청을 처리해야 할 서버 쪽에서 오류가 발생했다는 뜻이다. 예컨대 4로 시작하는 페이지를 만나면 주소를 재확인한다거나 로그인을 하는 등 일단 다른 행동을 해야 하고, 5로 시작하는 에러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 기다렸다 다시 요청하는 수밖에 없다.

검열로 인해 웹 페이지를 표시할 수 없다는 뜻의 에러 코드 451이 인터넷 표준화 기구로부터 정식 인가되었다. 사진은 “이 페이지는 귀하의 지역 기관의 결정에 의해 봉쇄되었다”고 안내하는 451 에러의 예시.

그냥 에러를 문장으로 풀어 메시지로 알려주면 되지 않나 싶을 수도 있으나, 웹을 순항하는 이들은 인간만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사물인터넷(IoT) 시대, 다양한 이들이 주인을 대신해서 웹을 돌아다니고 있다. 인간만큼이나 많은 기계, 즉 봇들이 웹을 서핑하면서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고 있다.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명확한 설명을 제공하는 일, 여기에 거대한 하나의 시스템인 웹이 움직이는 비결이 있다.

이제 어느 국가에서 451 에러가 얼마만큼 어떤 상황에서 발생하는지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이미 검열을 마음껏 하고 있는 검열선진국들이 451 에러를 적용할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라서 차단된 사이트로의 접속은 이미 아무런 메시지 없이 즉각 warning.or.kr로 이관시킨다. 그 방식도 그냥 주고받는 응답을 중간에서 변조하는 강압적인 것. 굳이 번잡하게 검열되고 있다는 에러 코드와 메시지를 각 서버나 페이지마다 제시할 동기부여가 별로 없다. 왜 이 사이트가 차단되었는지 어떠한 설명책임도 없이, 그냥 윗분이 보지 말라면 보지 않는 것이란 체제 순응의 체념을 그 시퍼런 페이지는 상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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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1은 두 가지 생각거리를 준다. 검열이란 이제 에러 코드가 필요할 정도로 불가피한 인터넷 생활이 되었다는 것이니, 검열 청정지역은 없어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하나다. 아직 검열을 겪어 보지 못한 나라에서 느낄 만하다. 또 하나는 이 451이 검열국가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아마 한국은 지금대로라면 451조차 적용하지 않는 블랙박스 검열 국가의 길을 그냥 갈 가능성이 크다. 지금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은 생활 속 검열을 인터넷의 표준에 따라 투명하게 구현하는 것이다. 불건전 사이트를 좀 막는 것이 대수냐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두가 건전하게 체제 순응의 노력만 하는 SF 속 ‘멋진 신세계’는 모두 그렇게 시작되었다.

<김국현 IT칼럼니스트·에디토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