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내시경]디킨스 명작소설의 감동

영국 사람들에게 찰스 디킨스는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의 인기 작가다. 그가 자주 들렀다는 그리니치 공원 맞은편 템즈 강변의 자그마한 펍 ‘트라팔가 태번’은 지금도 고인의 숨결을 느끼고 싶어 일부러 찾아온 방문객들로 하루 종일 넘실거린다. 잔잔히 흐르는 템즈강이 바라다 보이는 소파에 앉아 맥주 한 잔을 마시며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는 사치는 디킨스의 추종자들에겐 견줄 데 없는 특별한 체험이다.

흥미롭게도 그의 소설들은 오늘날 뮤지컬 공연가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재미난 공통점이 있다. 예를 들면, <올리버!> 같은 작품이 전형적인 경우다. 귀여운 아역 배우들의 천연덕스런 연기와 매부리코에 기회주의자인 소매치기단의 우두머리 페이긴의 이미지는 이 뮤지컬의 상징으로 사람들의 머리에 각인돼 있다. 연말이면 잊지 않고 막을 올리는 <크리스마스 캐롤>의 자린고비 스쿠루지와 꿈 속 정령들도 시대를 초월하는 뮤지컬 속의 흥행 캐릭터들이다. 영화와 애니매이션 등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로 가공되며 인기를 누려온 이 작품 역시 무대에서도 각광을 받았던 전력이 있다.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 | 비오엠코리아 제공

심지어 그의 유작이자 미완의 작품인 <에드윈 드루드의 미스테리>조차도 뮤지컬로 꾸며진 기록이 있다. 이 작품은 1986년 막을 올려 그해 최우수 뮤지컬 상을 포함해 5개의 토니상을 휩쓰는 파란을 연출한 바 있다. 브로드웨이에서는 최초로 대본과 작곡·작사를 모두 한 사람이 만든 작품이라는 진기록도 있을 뿐 아니라, 열린 결말로 그날 그날 관객의 투표에 따라 무대의 마지막 장면이 달라지는 이색적인 형식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디킨스의 소설이 무대에서 각광을 받는 이유는 자명하다. 활자로만 만났던 그의 원작이 춤과 노래, 연기로 형상화되어가는 과정 자체도 충분히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그는 어느 시대, 어느 작가보다 기발한 사연이 담긴 이야기와 매력 넘치는 캐릭터를 창조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생전에도 큰 인기와 명예를 누렸지만 세상을 떠난 20세기에 들어 더욱 세계의 문학가들과 비평가들로부터 그 천재성을 인정받게 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뚜렷한 인물의 성격은 극적 상상력을 극대화시켰고, 극중 인물들이 부르는 뮤지컬 넘버는 그래서 세월을 초월하는 대중적 인기를 구가하게 됐다. 장의사집 지하실에 갇혀 슬픈 표정으로 노래하는 고아소년 올리버의 뮤지컬 넘버 ‘Where is Love?’나 아름다운 아침을 찬미하는 ‘Who will bye this wonderful morning?’ 등은 그래서 사랑받는 대표적인 디킨스 원작 뮤지컬의 쇼스토퍼들이다.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 | 비오엠코리아 제공

우리나라 여름 뮤지컬가의 전쟁터에서도 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무대화한 작품 하나가 앙코르 무대로 재연된다. 바로 <두 도시 이야기>다.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 도버해협을 사이에 둔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줄거리 속에서 디킨스 특유의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들은 기구한 사연들을 절절하게 전개해 간다.

문화내시경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랑은 디킨스 특유의 묘사와 설정으로 치장돼 더 치명적이고 애틋하며 격정적인 감상을 완성해낸다. 이뤄져서 행복한 사랑이 아니라 비록 이뤄지진 않아도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아서, 차마 지울 수 없어서 더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영미권에서는 필독도서로 불릴 만큼 사랑받는 디킨스의 대표작이지만,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낮아 무대를 통해 처음 스토리를 접하는 관객들도 많다. 무대가 명작 소설의 감동을 함께 전해주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뮤지컬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