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내시경]성적 소수자를 위한 <킹키 부츠>

고향의 아버지가 가업이던 신발공장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한때 남성용 구두로 유명했지만, 이제는 자금난과 가득 쌓인 재고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뿐이다. 서둘러 재산을 정리하고 도시로 돌아갈 생각만 하던 주인공은 그러나 차츰 ‘신발공장’이 아닌 그곳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회사를 되살릴 궁리를 하게 된다.

이 와중에 드래그 퀸(여장남자)인 로라를 만나 성적 소수자를 이해하게 되고, 그들을 위한 반짝거리는 부츠를 제작하기에 이른다. 지난해 토니상을 휩쓸다시피 한 뮤지컬 <킹키 부츠>의 줄거리다.

뮤지컬의 시발점은 무대가 아닌 스크린이다. 요즘 세계 공연가를 강타하고 있는 소위 무비컬 장르이기 때문이다. 왕년의 흥행 영화 속 2차원의 영상을 가져다 무대라는 열린 공간에 맞춰 입체적으로 재구성해낸 것이 묘미다.

물론 이미 스토리를 알고 있다고 해도 음악과 춤으로 버무려진 새로운 맛과 재미가 다시 흥미를 자아내는 것이 이런 장르가 지닌 최고의 매력이다.

뮤지컬 <킹키 부츠> | The O+M Company 제공

다른 무비컬들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킹키 부츠>의 원작 영화는 오래된 추억 속 명화가 아닌 비교적 근작이었다는 것이다. 동명 타이틀의 영화가 세상에 선을 보였던 것은 2005년의 일이다.

사실 영화 속 이야기가 실화여서 더 흥미롭다. 1999년 BBC 텔레비전은 영국의 노스햄프턴 지방에서 벌어졌던 한 남성화 신발공장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적이 있다. 영화의 제작은 바로 그 다큐멘터리가 모티브가 됐고, 이젠 뮤지컬로까지 영역을 넓히게 됐다.

작사와 작곡을 맡았던 신디 로퍼도 화제다. ‘걸스 저스트 워너 해브 펀’, ‘쉬 밥’, ‘타임 애프터 타임’ 등으로 1980~90년대 빅 히트를 기록했던 그녀가 처음으로 무대용 뮤지컬 음악 분야로 영역을 넓혔다. 그런데 첫 타석에 만루 홈런을 치고 말았다. 이제 예순 살의 나이로 왕년의 장난기는 색이 많이 바랬지만, 그녀는 여전히 왕성한 음악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물론 이 작품에서도 자신만의 매력과 통통 튀는 감각, 그리고 다양한 음악 스타일로 이야기 보는 재미 못지않은 음악적 개성을 완성시켰다. 결국 신디 로퍼는 <킹키 부츠>의 업적으로 토니상 작곡상마저 거머쥐었는데, 이는 뮤지션 개인으로서도 대단한 업적이지만 토니상 역사상 최초로 여성이 단독으로 작곡상을 수상하게 된 진기록이기도 하다.

뮤지컬 <킹키 부츠> | The O+M Company 제공

여장남자의 드래그 퀸 퍼포먼스답게 색다르고 이질적인 무대 위 모습은 다양한 볼거리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결국 무대에 담겨 있는 교훈은 인간성에 관한 본질적인 이해와 묘사다. 즉, 성적 이질감으로 인한 차이는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며, 종국의 세상만사는 모두 인간이 겪고 경험하며 느끼는 일이라는 휴머니즘의 감동이 잔잔하게 전달된다.

사실 뮤지컬에서 이런 소재의 이야기가 <킹키 부츠>만의 전매특허는 아니다. 이미 국내에서도 인기를 누린 바 있는 <헤드윅>이나 <라카지>, 그리고 올 여름 국내 초연 무대가 꾸며질 <프리실라 퀸 오브 데저트>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전형적인 성적 소수자 소재의 뮤지컬들이다.

문화내시경

CJ E&M이 프로듀서로 참여해 연말쯤 국내 무대도 이뤄진다. 빌보드 클럽 차트의 25년 역사 중 최초로 톱 10 안에 진입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음악인 ‘섹스 이즈 인 더 힐’(Sex is in the Heel)이 국내 관객들에겐 어떻게 다가갈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해외 유명 뮤지컬의 빨라진 국내 진입도 흥미로운 일이다. 이래저래 관심이 집중되는 무대다.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뮤지컬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