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내시경]‘검열’과 ‘하늘땅바다’

국제적으로 주목 받는 국내외 미디어 아트 작가들의 수준 높은 작품은 물론 실험성 강한 작품들이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다채로운 영상 작품들을 통해 자기 자신과 주변 환경을 둘러보고,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미술관·갤러리들이 모여 있는 북촌 일대 6개 전시공간에서는 호주의 MAAP(Media Art Asia Pacific)가 기획한 ‘하늘땅바다’(LANDSEASKY)전이, 대안공간 루프(서울 서교동)에서는 아시아 각국 큐레이터들의 연합체인 ‘아시아 큐레이터 네트워크’가 기획한 ‘Censorship’(검열)전이 열리고 있다.

두 전시는 모두 치열하게 꾸려진 기획전이라 각 주제에 대한 작가들의 깊고도 폭넓은 사유를 엿볼 수 있다. 또한 여러 작가들이 소재나 기법, 전시형식 등 자신만의 시각에 따라 어떻게 그 주제를 풀어나가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로렌 브린캣의 ‘This Time Tomorrow, Tempelhof’, 1채널 디지털 비디오.

대안공간 루프에서 3월 21일까지 열리는 ‘검열’은 올해로 7회째를 맞은 영상 전시프로젝트 ‘무브 온 아시아’(Move on Asia)의 주제이자 전시명이다. 한국(서진석·황대원) 등 11개국의 큐레이터 15명이 추천한 아시아 12개국 작가 21명의 작품 24점이 출품됐다. 한국 작가로는 김다움이 참여하고 있다.

검열은 흔히 비민주적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 감시, 통제하는 권력자의 통치수단으로만 인식하기 쉽다. 하지만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검열은 그 형식이나 내용이 과거와 달리 교묘하게 위장될 뿐만 아니라 억압의 정도도 더 심각하다.

정치권력자뿐 아니라 자본가, 기업, 종교 같은 각종 단체의 치밀하게 숨겨진 검열이 횡행하는 것이다. 국내에도 번역된 에마뉘엘 퓌에라의 저서 ‘검열에 대한 검은책’은 현대사회에서의 검열 문제를 상세하게 지적한 바 있다.

미얀마·일본·중국·대만·터키·쿠웨이트·필리핀 등 다양한 국적의 이번 전시 참여작가들은 자신들이 처한 정치사회적·문화적 배경에 따라 다양한 소재와 예술가적 감성·시각으로 검열을 작품으로 풀어낸다.

대안공간 루프의 ‘검열’전 전시장 일부.

특히 ‘자기 검열’ 문제를 제기한 작품도 많아 주목된다. 퓌에라가 “검열의 최고봉”이라 말한 자기 검열이야말로 현대 민주주의 사회의 핵심적 검열이기 때문이다. ‘검열’전은 관람객에게 정치·사회적 검열은 물론 자기 검열 등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호주·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동시대 미디어 아트 프로젝트를 지원·기획하는 기관인 MAAP의 ‘하늘땅바다’에는 한국의 김수자·심철웅·정연두를 비롯해 8개국 작가 15명이 참여했다. 하늘과 땅·바다를 경계짓는 수평선(지평선)을 통해 공간성에 대한 작가들의 다양한 탐구결과를 엿볼 수 있다.

수평선(지평선)은 땅, 바다, 하늘을 가르는 물리적 경계선이기도 하지만 작가들은 이를 통해 인간의 지각에 대한 의문 제기, 실재와 환영의 문제, 나아가 역사적·사회적 의미 부여 등을 펼쳐 보인다.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인 김수자의 ‘보따리-알파 비치 나이지리아’(2001년)를 비롯해 얀 디베츠(네덜란드) 실파 굽타(인도) 로렌 브린캣(호주) 바바라 캠벨(호주) 헤이모 조베르니그(오스트리아) 데렉 크랙클러(호주) 등이 저마다의 작품세계를 드러낸다.

문화내시경

인터랙티브 스크린, 버티컬 활용 등 내용을 전달하는 작품의 형식도 다양해 눈길을 끈다. ‘하늘땅바다’전은 아트선재센터와 이화익갤러리, 원앤제이갤러리, 옵시스아트, 갤러리 인, 갤러리 스케이프(야간 상영) 등 6곳에서 나눠 전시 중이다.

<도재기 경향신문 문화부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