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내시경]정작 노래보다는 보는 재미로 승부

5인조 걸 그룹 크레용팝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최근 유투브에 올라온 동영상에서 한 멤버가 신체 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을 사용해 논란을 일으킨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난 6월 중순에 발표한 신곡 ‘빠빠빠’가 그 사건을 능가하는 진짜 이야깃거리다. 많은 이가 노래에 대해 재미있다는 의견을 전한다.

크레용팝의 싱글 앨범 <빠빠빠>

인기의 주 요인으로 의상과 안무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트레이닝복을 입거나 그 위에 치마를 걸치고 헬멧을 쓴 패션은 스쳐 지나가도 시선에 확 들어올 정도로 튄다. 그냥 트레이닝복만 착용하던 데뷔 초기에서 업그레이드됐다. 특히 멤버들이 두 명, 세 명씩 짝을 이뤄 뛰었다 앉기를 반복하는 동작은 ‘직렬 5기통 춤’이라 불리며 음악팬들의 관심을 끌었다. 노출과 교태가 우리나라 걸 그룹의 기본 세포가 된 시대에 크레용팝은 그들과 딴판인 모습으로 시장을 공략한 셈이다. 색다른 콘셉트의 승리다.

정작 노래 자체는 그리 흥미롭지 않다. 후렴부에 기타와 전자음을 맞물려서 활력을 내긴 하지만 창의적인 변화 없이 되풀이돼 지루하다. 이 빈약함과 무료함을 특정 가사와 의미 없는 음절을 반복하는 것으로 메우고 있다. 청취자 중 다수가 거론하는 중독성은 여기에서 나왔다. 하지만 구성은 평이하기만 해 유별난 의상과 춤을 제하고 듣는다면 요즘 나오는 노래 이상으로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승리에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극히 작다.

소속사가 낸 보도자료에는 ‘빠빠빠’에 대해 비슷하고 뻔한 방식으로는 다른 걸 그룹과 차별화하기가 어렵기에 유머와 흥에 콘셉트를 맞췄다고 소개돼 있다. 이는 험난한 음악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일 테지만 좋은 선택은 아닌 듯하다. 노래로 돌파구를 찾는 것이 아니라 부대 요소로 얼굴을 내밀 수 있는 통로를 찾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걸 그룹 중 열에 아홉은 섹스어필을 주요 강령으로 삼는다. 날이 갈수록 신생 팀이 늘어나는 탓에 이름 한 번 알리기도 쉽지 않아지니 더 과한 노출과 더욱 육감적인 안무에 열을 올린다. 노래보다는 파격적인 섹시함이 더 중요해졌다. 그런데 이마저도 포화상태에 이르다 보니 크레용팝은 ‘재미’로 방향을 꺾은 것이다.

5인조 걸그룹 <크레용팝> | 크롬엔터테인먼트 제공

크레용팝의 ‘빠빠빠’가 시각적인 재미를 우선으로 하는 노래들이 출현하는 데 신호탄이 될까 봐 염려스럽다. 다른 걸 그룹들이 익살스러움을 내세우지는 않더라도 크레용팝은 연이은 히트를 위해 어쨌든 다음번에도 ‘빠빠빠’를 넘어서는 흥미 요소를 강구해야 할 것이다. 자극은 언제나 더 큰 자극을 유발하는 법이다.

문화내시경

작금 주류 대중음악을 보면 지나치게 엔터테인먼트로 기울었음을 부정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걸 그룹 쪽은 환락과 흥이 판을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상황인 터라 그와는 구분되는 유희를 추구한다고 한들 마냥 반가워할 수만은 없다. 음악에 오락의 성분을 결코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음악의 본체는 아니다. 음악산업에서 어느샌가부터 본질보다 수단이 중요하게 되었고, 또 대중은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크레용팝의 새 노래는 그 암담한 현실을 새삼 되짚어준다.

한동윤 <대중음악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