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내시경]연극<에이미> 가족사를 통해 본 세대간의 갈등

영국의 문제적 작가 데이비드 해어가 쓰고 최용훈이 연출한 <에이미>는 딸(에이미)을 가운데 둔 장모와 사위의 갈등이란 가족사를 통해 현대 영국이 안고 있던 극단적인 대립 요소들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원작에는 작가가 직접 보고 겪어낸 현대 영국의 사회적 현실이 짙게 투영되어 있지만, 자유주의 경제 이데올로기에 의한 사회의 변화와 폐해, 그리고 극단적인 대립으로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두 입장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2013년 이곳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도 많이 닮아 있는 이야기다.

제목은 <에이미>지만 사실 이 작품의 큰 축을 이루고 있는 것은 에이미의 엄마 에스메와 사위 도미닉 두 사람의 대립과 갈등이다. 이들의 대립은 장모와 사위라는 관계, 그리고 각자의 개인적 성향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각기 다른 두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즉 연극배우인 에스메와 영화감독·평론가인 도미닉의 갈등에는 구세대와 신세대, 전통과 새로움, 연극과 미디어, 예술과 대중, 창작과 비평 등 여러 가지 대립요소들이 복합적으로 들어 있는 것이다.

연극<에이미>

작품을 이끌어나가는 것은 에스메와 도미닉의 갈등과 대립이지만, 극중 모든 갈등과 화해의 중심에는 에이미란 인물이 있다. 에이미는 스스로 끊임없이 엄마 에스메와 남편 도미닉을 이해하려 하고, 그들도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애쓰는 인물이다. 이 작품의 원제가 ‘에이미의 관점(Amy’s View)’이라는 점은 그런 면에서 의미심장하다. 에이미는 에스메와 도미닉 사이에 놓여 있는 존재로 결코 닿을 수 없는 두 지점을 연결시키고자 하는 생각, 매개자, 관계성 이런 것들에 대한 총칭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상대를 받아들이고 사랑으로 감싸 안자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상대의 입장이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공존하자는 것이 에이미의 관점이고, 궁극적으로는 이 작품의 시선이 향하는 곳이다.

비록 에이미는 두 사람을 화해시키지 못한 채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지만, 그녀의 죽음은 에스메와 도미닉 모두에게 변화의 가능성을 남긴다. 에스메는 딸의 죽음을 통해 지금껏 자기가 아집처럼 지녀온 환상에서 벗어나 보다 진솔한 자세로 무대에 서게 되고, 도미닉 또한 방황을 접고 마음 속 깊이 품어왔던 영화감독의 꿈을 이룬다. 비록 서로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영역에 대해 어느 정도 인정하게 되고, 에이미의 죽음이란 아픔을 공유함으로써 조금이나마 마음을 열게 된다.

연극<에이미>

한편, 이러한 세대간의 대립과 관련해서 마지막 4막의 분장실 장면에 잠깐 등장하는 토비란 인물 역시 주목할 만하다. 그는 ‘사극 의상 차림에 워크맨을 들고 등장한다’는 지문에서도 알 수 있듯 절대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보였던 두 세대를 모두 아우르는, 새로운 세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토비는 에스메의 진중한 연극을 존중하는 한편, 도미닉의 폭력 영화 미학에도 열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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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구세대와 신세대를 다 아우르는 포용력을 보여주지만 또 한편으로 그의 언어는 상당히 경박하며, 대상에 대한 신념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흥미로서 접근할 뿐이다. 그런 면에서 작가는 투철한 자기 신념을 지니고 대립했던 에스메와 도미닉을 넘어선 새로운 젊은 세대, 그들의 놀라운 포용력과 가벼움에 대한 우려를 이 토비란 인물을 통해 제시하고 있는 듯하다. 기성세대 간의 첨예한 갈등, 새 세대에 대한 복합적인 기대와 우려라는 점에서 오늘의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은 작품이다. 2월 15일부터 3월 10일까지, 명동예술극장.

김주연<연극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