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내시경]한국 근현대 누드걸작선

“내가 여성의 누드를 그리는 것은 여체가 자아내는 곡선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서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창조적인 데폼(deform·변형)이 아니라 아름다운 선의 창조에 있다. 이상적인 선의 아름다움이 자아내는 매혹적인 선율,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최고의 미와 행복을 동시에 찾아내는 것이다.” 일관된 주제와 기법으로 한국 누드화 역사에 큰 자리를 차지한 원로작가 김흥수는 여성 누드를 그리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원로 작가 장리석은 또 다른 견해를 드러낸다. “일반적으로 누드는 여성 몸매의 아름다운 곡선에 포커스를 맞춰 탐미적으로 다루는 경우가 흔하다. 나는 누드의 단순한 곡선의 아름다움보다는 탄력있는 근육과 생동감 넘치는 야성적인 인상에서 더 강한 감동을 받는다. 생동감 있는 삶의 현장에서 누드를 그리려는 것이 나의 작품세계라 하겠다”고 밝혔다.

(왼쪽부터) 장리석 <해녀>, 김흥수 <누드>.

발가벗은 인체는 고대부터 예술가들의 중요한 소재이자 주제다. 지금도 미대생에게 남녀 누드를 그리는 것은 수업의 필수과정이다. 특히 여성 누드는 인체의 아름다움 그 자체는 물론 모성·생명·욕망과 응시의 대상 등 다양한 상징성을 지니며 예술가들마다 독특한 작품세계로 변주된다.

한국 화단에 누드, 특히 여성 누드가 등장한 것은 근대 들어서다. 서구문화의 소산인 벌거벗은 여인이 유교문화 속에선 수용되기 힘들었다. 그래서 한국 여성 누드화는 화가의 독특한 미적 감각이나 예술세계의 감상을 넘어선다. 시대에 따른 변화, 그림에 담긴 독특한 사연들까지 읽혀지기 때문이다.

롯데갤러리 본점은 ‘화가의 여인, 나부(裸婦)-한국 근현대 누드걸작선 1930~2000’전을 열고 있다. 2월 20일까지 전시된다.

누드화의 변천과정을 시대별로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기회다. 1930년대부터 최근까지 41명의 작품 50점이 관람객을 맞는다.

전시작품 중 가장 빠른 시기에 그려진 것은 이인성(1912~50)의 ‘초록배경의 누드’(1935년)다.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되는 작품이자, ‘조선의 천재’로 불린 작가의 독특하고 자유분방한 작품세계를 느낄 수 있다. 한묵의 ‘나부’(1953)는 콜라주 작업을 주로 하는 작가가 평생 단 한 점만 그렸다는 누드이다. 곡선의 아름다움이 강조되는 김흥수의 ‘누드’(1980)와 생동감 넘치는 장리석의 ‘해녀’(1971)를 비교해보는 것도 괜찮다.

누드라고 아름다움이나 낭만만이 담긴 것은 아니다. 이림의 ‘나부’(1952)는 전쟁의 아픔이 가득하다. 전쟁으로 고통받는 어머니, 여인을 표현한 것이다.

권옥연의 ‘부인상’(1951)은 낭만적 분위기가 풍기는데, 결혼 기념으로 부인을 그린 것이다. 장애와 가난 속에 예술혼을 태우다 요절한 화가 손상기(1949~88)의 ‘화가와 여인’(1978)도 출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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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 박영선의 ‘아뜰리에’(1957)는 기하학적으로 면 분할과 구상·추상이 어우러졌으며, 박득순의 ‘나부’(1986)나 김호걸의 ‘여인누드’(1983)는 완벽한 데생력을 바탕으로 여체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시각적으로 잘 드러낸다. 지난해 타계한 이만익의 ‘누드’(1995)는 명료한 형태, 단순하고 힘있는 선 등 그만의 작품세계가 누드에서도 돋보인다. (02)726-4456.

<도재기 경향신문 문화부 기자 jaek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