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식의 사회]역사와 교육은 ‘꼼수’로는 안 된다

교육부는 왜 대선후보들이 “우리나라 교육을 살리기 위해서는 교육부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지를 곱씹어보고, 지금이라도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폐기하여 학교 현장의 혼란을 막아야 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과 최순실 등 일당이 저지른 국정농단에 대한 특검 수사가 막바지에 이르며, 피고인들이 보여주고 있는 태도에 국민들이 또 한 번 실망을 넘어 참담함을 느끼고 있다.

우리는 사람의 나이나 역할, 지위에 따른,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기대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무너질 때, 그 사회는 질서가 무너지고 혼란에 빠지게 된다. 요즘 우리 사회가 딱 그런 지경이다. 설명하거나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비상식적인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버젓이 벌어지고 있어, 자라고 있는 어린 세대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 내일의 우리 사회가 크게 염려스럽다.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비민주적인 거대한 폭력

그 중에서도 심각한 것은 역사교과서의 국정화이다. 21세기 새로운 과학혁명의 눈앞에서, 다양한 역사적 사실과 관점에 대해 열린 토론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야 할 때에, 하나의 관점으로 서술된 역사를 국가라는 전체주의 틀로 묶어 전체 학생들에게 획일적으로 가르치려고 하는 발상은 그 자체로 반역사적이고 비민주적이며 거대한 폭력이다. 그리고 그 추진이 천박한 거대자본의 이익과 박근혜로 대표되는 박정희 유신회귀 세력의 결탁으로 이루어진 수구집단에 의해 졸속 꼼수로 진행된 것이어서 더욱 한심하다.

2012년 12월, 국정원 등 국가기구의 불법 개입과 박정희 신화를 등에 업고 종북 프레임까지 동원해 겨우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은 독재자로 낙인찍힌 아버지를 조국근대화의 기수로 되살려내는 것이 딸의 도리라는 생각과 함께, 박근혜 체제의 정통성을 위해서라도 그런 관점의 역사는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가장 큰 걸림돌은 현행 역사교과서였다. 그가 보기에는 김대중, 노무현의 잃어버린 10년 사이에 역사교과서는 좌편향돼 있었고, 그것도 검인정 제도 때문에 우파는 자리잡을 수 없는 최악의 조건이라 판단됐을 것이다. 더욱이나 초·중등 학교는 전교조와 진보교육감에 장악돼 있어서 행정력으로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교과서를 국정화해 바로잡을 수밖에 없고, 이것이야말로 영구집권의 필수조건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그 뒤에 숨어서 나름대로의 논리적 근거와 방법을 연구하고 제공한 곳이 전경련 산하의 자유경제원이란 우익연구단체인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최순실까지 개입한 국정농단의 몸통인 정경유착은 이미 이렇게 깊숙이 박근혜 정권에 뿌리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박근혜가 물 주고 가꾼 과정을 보면, 북 치고 장구 치며 한편으로 협박하고 한편으로 얼러대는 꼼수의 연속이었다.

취임 첫해인 2013년 5월 30일, 교학사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 검정초안이 통과되자 박근혜 대통령은 6월 17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역사는 민족의 혼이므로 교육현장에서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는데, 8월 30일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는 교육부의 최종 검정을 통과한다. 이에 대해 9월 10일 한국역사연구회 등 관련 단체들이 교학사 역사교과서에 대하여 오류·편파해석 등 298건을 지적하며 폐기를 주장하자, 9월 17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교육부가 한국사 교과서 내용을 수정·보완하라”고 지시하기에 이른다. 2014년 1월 9일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교과서 편수시스템 강화를 예고하자, 검인정 체제로는 한계를 느낀 박근혜 대통령은 2월 12일 교육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사실에 근거한 균형 잡힌 역사교과서 개발 등 제도 개선책을 마련하라”고 하면서, 교육부가 사실상 역사 국정교과서 개발에 나서도록 지시한다. 대통령의 지시로 급물살을 탄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역사학자, 교수, 교사 등 전문가는 말할 것도 없고, 학부모 등 많은 국민들의 우려와 반대 속에서 여론수렴 등 정상적인 절차조차 외면한 채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2015년 9월 17일 교육부가 ‘2015 개정교육과정’을 고시하고, 이어 10월 12일 중·고등 역사교과서 국정화 행정예고를 하자, 그 달 22일 박근혜 대통령은 여야 지도부 모임에서 “현행 역사교과서 집필진 80%가 편향된 역사관을 가지고 있어, 국정교과서는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27일 국회 시정연설에서는 “역사왜곡·미화 교과서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 협박하며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기정사실화했다. 이에 힘입은 교육부는 11월 3일 중·고등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확정고시하고, 명단을 비공개한 가운데 집필진과 편찬심의회를 구성하고, 12월부터는 졸속 깜깜이 집필에 들어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집요함과 꼼수에 가까운 졸속처리다. 여기에 영혼 없는 관료들이 거들고, 2016년 9월에는 법원마저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진 명단 비공개는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권력에 부역하는 모습을 보인다.

사실오류 많이 발견되는 ‘함량 미달’ 교과서

2016년 11월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에 대해 분노하는 시민들의 대대적인 촛불이 타오르면서 상황은 바뀌기 시작했다. 24일 서울행정법원은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리고, 25일 교육부는 편찬기준을 공개하면서, 암흑 속에 있던 졸속 국정 역사교과서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어 28일 공개된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은 예상대로 엉망이었다. 역사교육연대의 발표처럼 관점은 말할 것도 없고, “기초적인 사실오류가 많이 발견되는 ‘함량 미달’ 교과서”였다. 일선 학교와 교육청은 국정 역사교과서는 사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서울을 비롯한 진보교육감들은 폐기를 요구하는 일인시위에 들어가기도 했다.

이쯤 됐으면 교육부는 엄중히 사과하고 사업 추진을 중단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아직도 이 눈치 저 눈치를 보면서 말을 바꾸며 꼼수를 부리고 있다. 국정 교과서 사용을 1년 늦추고 다른 검인정 교과서와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검인정 교과서 집필기준을 편향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학교 현장의 혼란은 극에 달할 수밖에 없었다.

비상식의 사회

교육부는 왜 대선후보들이 “우리나라 교육을 살리기 위해서는 교육부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지를 곱씹어보고, 지금이라도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폐기하여 학교 현장의 혼란을 막고, 제대로 된 역사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수호 전태일 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