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식의 사회]유감스러운 대선판 4차 산업혁명 바람

지금 한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이란 개념은 실체가 불분명한 유행어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유력 대선후보들이 이런 비판적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앞 다투어 4차 산업혁명 공약을 말하고 다니는 것은 유행만 쫓는 또 다른 이미지 정치일 뿐이다.

대선이 다가올 때마다 늘 불편하게 느껴지는 장면이 하나 있다. 대선후보들마다 경쟁하듯 전통시장에 달려가 어묵을 사먹는 모습이다. 시장 바닥 노점상에서 어묵 하나 사먹는다고 민생이 파악될 리 만무하다. 그러니 후보 본인에게야 보람찬 서민 친화적 행보일지 몰라도 냉정하게 지켜보는 유권자 입장에서는 비좁은 시장 골목길을 가로막아 불편을 끼치는 민폐 행보다.

‘3차 산업혁명’과 ‘4차 산업혁명’은 본질적 차이 없어

이번 대선에는 불편하게 느껴지는 장면이 하나 더 추가될 조짐이다. 후보들의 대선 공약집 곳곳에 등장할 것으로 확실시되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다. 4차 산업혁명 관련 공약의 포문은 문재인 후보가 열었다. 그는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설치하고 초고속 사물인터넷망과 자율주행차가 주행할 수 있는 스마트 고속도로를 깔겠다는 등 여러 공약들을 쏟아냈다. 그러자 안철수 후보는 문재인 후보의 공약이 정부 주도형 1970년대 박정희 패러다임식 발상이라며 각을 세우고,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교육 혁신으로 5-5-2 학제 개편안을 내놨다. 4차 산업혁명 관련 공약을 교육 정책으로까지 확산시킨 셈이다. 한편 이재명 후보는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일자리 감소 대비책으로 기본소득제의 실시와 함께 4차 산업혁명 대응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4차 산업혁명과 복지정책을 연결시킨 공약이다.

대선후보들마다 유행처럼 4차 산업혁명 관련 공약을 만들어내는 상황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4차 산업혁명이란 말 자체가 실제로 일시적 유행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진작부터 많은 국내 IT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 담론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보였다.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는 조만간 “4차 산업혁명은 허구다”라는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장 핵심적 자원이라 할 수 있는 축적된 데이터 기반이 없는 한국의 현실에서 4차 산업혁명은 구호에만 머물 뿐 제대로 구현되기가 간단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4차 산업혁명이 유독 한국에서만 과도하게 증폭돼 있다는 지적도 있다. 경희대 이경전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의 대표 사례로 거론되는 IT 기업들이 모여 있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정작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을 들을 수 없다”고 꼬집는다. 뿐만 아니라 4차 산업혁명이란 것이 과연 실체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불과 몇 해 전 유행했던 제레미 리프킨의 ‘3차 산업혁명’과 지금 유행하고 있는 클라우스 슈밥의 ‘4차 산업혁명’ 간에 본질적 차이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제레미 리프킨은 2013년 <3차 산업혁명>이란 책을 통해 석탄과 증기기관이 이끄는 제1차 산업혁명과 석유와 전기 에너지가 이끄는 제2차 산업혁명에 이어 인터넷 기술과 재생 에너지의 결합으로 창출되는 3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한편 클라우드 슈밥은 여기에 더하여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 기술 등을 통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통합된 새로운 환경이 조성되고 이를 기반으로 전통적인 제조업과 IT가 융합되는 현상을 4차 산업혁명이라 정의했다. 이를 두고 같은 학과 동료인 미래학자 정지훈 교수는 “지금의 4차 산업혁명이란 내용적으로는 3차 산업혁명 과정의 일부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렇듯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지금 한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이란 개념은 실체가 불분명한 유행어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유력 대선후보들이 이런 비판적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경제, 교육, 복지 등 여러 정책 분야에 걸쳐 앞 다투어 4차 산업혁명 공약을 말하고 다니는 것은 깊이 있는 분석과 진지한 성찰 없이 유행만 좇는 또 다른 이미지 정치일 뿐이다. 그러니 이번 대선 캠페인에서는 어쩌면 이런 불편한 공식이 만들어질지도 모르겠다. “서민 이미지를 연출하려면 전통시장에 가서 어묵을 먹고, 스마트한 첨단 이미지를 연출하려면 4차 산업혁명 공약을 말하라.”

일자리 확대 공약과 4차 산업혁명 지원 공약은 ‘충돌’

설령 4차 산업혁명이 실체를 가진 거대한 흐름이라 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당장 문재인 후보가 제시한 4차 산업혁명 관련 공약만 봐도 벌써부터 여러 허점들이 발견된다. 무엇보다도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공약과 4차 산업혁명 지원 공약 간의 충돌이 눈에 띈다. 4차 산업혁명은 필연적으로 일자리 감소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물론 사라지는 일자리보다 더 많은 일자리가 새롭게 창출될 것이라 전망하는 학자도 있다. 하지만 이들조차도 일자리의 소멸과 창출 사이에 실직의 고통을 감내해야 할 일정 정도의 시간 격차가 존재한다는 사실마저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 시간 격차의 길이는 당연히 대통령 재임 기간인 5년보다 길다. 초고속 사물인터넷망 구축 공약도 기술적 측면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 이야기다. 사물들이 기존 인터넷망으로 연결되는 것이 사물인터넷인데, 별도의 사물인터넷망을 구축하겠다는 것은 무슨 소리인지 통 모르겠다. 이보다는 차라리 공유경제, 핀테크, 원격의료, 드론 등 신산업의 정착과 확산을 가로막고 있는 제반 규제부터 풀겠다는 공약이 현실적이고 당장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관련 공약 어디에도 규제 완화나 규제 철폐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안철수 후보의 5-5-2 학제 개편안에도 의문이 든다.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2년간의 진로 탐색 과정을 두자는 것이 골자인데,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핵심에서 벗어나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미래 사회에는 창의적 사고 능력과 협력적 문제 해결 능력 함양이 교육의 목표가 돼야 하며, 이를 위한 교육과정과 교육방법의 혁신이 요구된다는 목소리가 교육계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그동안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이러한 내용적 혁신 없이 단지 학제 개편이라는 형식의 혁신만으로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교육은 기대하기 힘들다. 2년간의 진로 탐색 과정을 별로도 두겠다는 구상도 동의하기 어렵다. 12년간의 모든 교육과정이 진로를 탐색하고 준비할 수 있는 기간으로 구성되는 것이 정상이다.

비상식의 사회

물론 갑작스럽게 다가온 대선이라 공약을 마련할 시간이 부족했을 것이라는 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이를 충분히 검토하고 제대로 검증할 유권자의 시간도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럴 때일수록 허상을 쫓는 공허한 공약보다 작더라도 내실 있는 공약이 빛을 발할 텐데, 우리의 대선 공약은 아직 2차 산업혁명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