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식의 사회]황교안을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빼라!

국정을 농단하고 헌법을 파괴한 세력이 호시탐탐 권력의 복귀를 노리고 다음 정권까지 꿈꾼다는 것은 책임의식의 실종을 넘어선 국가와 국민에 대한 모욕이다. 여론조사 기관들도 언론들도 왜 이런 상황을 즐기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헌법재판소가 24일을 최종 변론 기일로 확정했다. 박근혜 대통령 측의 심판 지연 전술을 일축한 것이다. 헌재는 3월 13일 이정미 소장의 퇴임일 이전에 가부간의 결론을 내리기 위한 절차에 착수한 것으로 보인다. 다행스런 일이다. 국내외 정세가 격변기에 접어들었는데 우리는 국가권력의 공백상태를 여전히 견디고 있다. 국회에서 234명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탄핵안이 가결됐음에도 대통령 측은 반성은커녕 혐의를 인정하지도 않고, 특검 수사를 받지도 않으며, 헌재의 재판마저 방해하고 있다. 이것은 뭐랄까, 비정상을 넘어 국가와 국민에 대한 아주 모멸적인 행위다.

실제로 국민들의 압도적인 요구와 국회의 탄핵 의결, 검찰과 특검의 방대한 혐의 입증에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자 대부분이 혐의를 부인한다. 나아가 광장에는 이른바 ‘태극기 시위’가 늘어나고 있고, SNS 등에는 상당량의 거짓 뉴스(Fake News)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 사건을 특종보도한 jtbc의 태블릿PC가 조작된 것이라는 등의 음모설마저 유포되고 있다. 나아가 손석희 앵커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심지어 계엄령 선포를 선동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뭔가 조직적 대응이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기득권 정치의 책임지지 않는 구조는 ‘오래된 관습’

국가권력을 송두리째 사유화해 특정집단의 이익을 위해 동원한 이번 사건은 우리에게 ‘책임’의 가치를 일깨운다.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국민적 동의절차를 거쳐 권한을 위임받고 그에 따라 명백히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는 제도다.

새삼 기득권 정치의 책임지지 않는 구조가 참 오래된 관습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친일파들도, 쿠데타 세력도 책임지지 않고 오히려 권력의 자리를 지켜왔다. 세월호도, 메르스도, 옥시도 책임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문화, 나아가 책임지는 사람은 손해보고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이 승승장구하는 기득권 구조에 우리 사회가 익숙해져 있는 셈이다.

요아힘 가우크 전 독일 대통령은 루터가 번역한 <창세기 1장>에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구절을 “하나님이 책임을 질 줄 아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다”로 해석한 적이 있다. 즉 지구상에는 수많은 피조물이 있지만, 자신뿐 아니라 상대에 대해, 그리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공간에 대해 스스로 책임질 줄 아는 능력을 가진 피조물은 인간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강조한다. “책임질 줄 아는 우리의 능력은 인간다움의 핵심요소에 속합니다.”

이번 국가범죄에 연루된 청와대 참모나 장관들, 고위 공무원들은 민주공화국의 가치를 부정하고 권력을 사유화했다. 그런데도 제대로 반성하고 책임지지 않는다. 시간을 끌면 다시 전세를 역전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것이 그들이 깨달은 역사적 교훈이라면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 이 지면을 통해 정말로 묻고 싶은 건 책임지지 않는 이들이 과연 그들뿐일까 하는 것이다. 기실 이 사건에 직·간접적인 책임을 갖고 있는 기득권 정치세력도, 검찰도, 나아가 언론도 솔선수범 책임지는 일이 없지 않은가. 박근혜 정부의 탄생을 도왔던 사람들이 당명만 바꿔서 다시 다음 정권을 꿈꾸고, 박근혜 정부를 찬양했던 사람들이 여전히 TV에 나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다른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지 않은가. 길고 진실한 반성문을 써야 할 시간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전혀 다른 주장을 펼치는 풍경이 계속되는 한 책임질 줄 아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요원하다.

황 총리는 박근혜 정부의 요직을 거친 핵심 책임자

최근 여론조사 기관과 언론들이 황교안 총리를 대통령 후보 여론조사에 포함시켰다. 나는 이것이 우리 사회가 최소한의 상식과 책임윤리를 상실한 상징적 사례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헌재에서 탄핵심판을 받고 있는데, 대통령 권한대행이 차기 대통령 후보 여론조사에 오른 일은 매우 비상식적인 일이다.

황교안 총리는 박근혜 정부의 법무부 장관과 국무총리 등 요직을 거친 핵심 책임자 가운데 한 명이다. 국민들은 추운 겨울날 거리에서 황교안의 사퇴를 촉구한다. 황교안 총리는 당연히 해임돼야 할 인물이었지만, 대통령 탄핵 이후 국정공백을 줄이기 위해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걸 국민들이 겨우 참고 있는데 버젓이 그는 차기 대통령 후보에 이름을 올리고 또 상당한 지지율마저 보인다. 국가범죄 피의자들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책임윤리가 어디까지 추락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황교안 총리는 진작에 불출마를 선언했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국정을 농단하고 헌법을 파괴한 세력이 호시탐탐 권력의 복귀를 노리고 다음 정권까지 꿈꾼다는 것은 책임의식의 실종을 넘어선 국가와 국민에 대한 모욕이다. 여론조사 기관들도 언론들도 왜 이런 상황을 즐기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국가와 국민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적어도 황 총리를 다음 대통령 후보 여론조사에 포함시키는 일만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우리 앞에는 사유화된 기득권 부패권력을 해체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부여돼 있다. 정치의 공공성 회복은 우리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우리 사회 전체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공공성 회복을 위한 타산지석으로 삼아서 온 사회가 노력해야 할 때다.

황교안의 지지율이 오르자 탄핵 기각설이 떠돈다. 그것은 또 우리 사회를 얼마나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는가. 그런 점에서 헌재의 결정은 다행한 일이다. 헌재는 1500만 국민들의 평화적인 시민혁명의 요구를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 국민을 대의한 선출기관인 국회가 234명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탄핵안을 가결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헌재가 1987년 헌법으로 부여받은 최소한의 책임을 다하는 일이다.

비상식의 사회

진정한 위기는 외부로부터 오지 않는다. 지금 대한민국 위기의 본질은 책임윤리의 실종이다.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