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찬의 실용재정](8)연금제도, 구조개혁이 우선이다

윤석열 정부 연금개혁은 연금재정의 지속가능성 관점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보인다. 공무원연금이 너무 후하니 국민연금에 통합해야 한다는 연금통합론 또한 거론된다. 연금은 여러 제도적 요소로 구성돼 있다. 문제점과 개혁 방향을 놓고 이해당사 간 시각 차이도 크다. 기존 가입자의 권리를 보장하면서 제도개혁을 해야 하므로 조정과정이 오래 걸린다. 한 정부 임기 내에서 마무리하기 쉽지 않다.

국민연금공단 서울 충정로 지사 노후준비지후원센터 / 정지윤 기자

다섯가지 요소로 구성된 연금

연금제도는 다섯가지 제도적 요소로 구성된다. 국민연금제도를 중심에 두고 특수직역자들에게는 대안적으로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등이 존재한다. 국민연금가입자에게는 보완적으로 퇴직금이 있고 이를 연금으로 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 누구나 매월 일정 금액의 개인연금에 가입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소득세에서 공제가 허용된다. 마지막으로 기초연금은 65세 이상의 소득이 취약한 이들에게 제공된다. 정부의 재정지출이 수반되는 것은 그 가운데 세가지로, 특수직역연금의 경우 고용주가 정부이므로 고용주 몫의 보험료를 재정이 부담하며 개인연금에 대한 소득공제는 조세지출의 형태로, 그리고 기초연금은 예산지출의 방식으로 이뤄진다.

현재 연금개혁 논의는 국민연금을 중심으로 적정한 급여 수준 및 소득대체율의 문제, 그리고 재정의 지속가능성 유지를 위해 보험료율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에 집중되고 있다. 공무원연금의 개혁과 기초연금 수준의 인상 필요성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다. 다만 고용주인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국민연금에 납부하는 고용주 몫의 보험료보다 실제로 더 큰 부담을 하는 것이 퇴직금이다. 그럼에도 이 부담금이 근로자의 노후소득보장에 의미 있게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과 개인연금에 가입한 개인들의 저축액과 정부의 조세지원액 역시 노후보장에 기여하는 정도가 미미할 뿐 아니라 세제 혜택이 소득 상위계층에게만 집중된다는 점은 거의 거론되지 않고 있다.

연금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중시하면서 소득대체율을 낮춰야 기금고갈을 피할 수 있고, 미래세대에 죄를 짓지 않는 길이라는 주장과 은퇴 이후의 빈곤을 막기 위해 현재의 소득대체율은 이미 낮은 수준이므로 이를 더 하향 조정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2055년에 기금이 고갈된다는 재정계산의 결과를 감안하면 제도 변화를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 동시에 연금수급자들에게 지급되는 급여액 평균이 2021년 말 기준 약 55만원으로 매우 낮다는 점을 생각하면 연금의 보장성을 낮추는 방향으로의 변화도 생각하기 어렵다. 노후소득보장이라는 제도의 취지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사고와 제도의 틀 안에서는 어느 방향으로도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연금이라는 사회적 계약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회는 지속되며 근로활동에 참가하던 사람이 은퇴하면서 다음 세대가 근로활동에 참여한다. 공적연금이 사적연금과 다른 것은 개인이 근로활동 시기에 적립한 것을 기반으로 연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근로세대가 은퇴한 세대의 노후소득을 부담하도록 제도적으로 국가가 보장한다는 점이다. 공적연금의 운영방식을 부과식이냐 혹은 적립식이냐 선택할 수는 있겠으나 적립식의 운영이 공적연금의 본질적 속성은 아니다. 회계적으로는 근로 시기의 활동이 적립되고 은퇴 시기의 몫을 계산할 수 있겠으나 물리적으로는 한 시기의 사회적 생산물은 그 시기에 생존하는 근로자와 은퇴자들 사이에 분배되고 소비될 수 있을 뿐이다.

결국 연금이라는 노후소득보장제도는 근로세대의 사회적 생산물을 은퇴세대에게 나눠주는 제도다. 은퇴세대가 다음 세대로부터 그들의 사회적 생산물 중 일부를 노후소득으로 받을 수 있도록 제도화했다는 의미다. 일정한 출생률이 유지되고 인구구조의 변화가 없다면 부과식·적립식의 선택이 차이를 만들지 않는다. 자본시장의 불확실성에 노출된 적립기금의 존재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적립식이 제도적으로 취약한 측면이 있다. 출생률과 인구구조가 변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다른 요인이 없다면 출생률 저하에 맞춰 시간적 격차를 두고 연금제도를 조정하는 일이 필요해보인다. 낮은 노후소득보장 수준을 고려할 때 소득대체율을 낮추는 방향의 조정이 대안이 될 수 없다면 보험료율을 올리는 방향이 대안으로 남는다. 보험료율의 조정은, 그러나 다른 구조적인 개혁이 우선적으로 이뤄진 다음에 하는 최후의 작업이다.

보험료율 인상은 최후의 수단

출생률 저하가 미래에 근로라는 생산요소의 투입을 줄이기는 하겠지만, 사회적 생산물의 규모를 얼마나 줄일지는 따져봐야 한다. 저출생에도 미래 사회의 물적 자본은 줄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의 도래를 예측하면서 사람들은 로봇과 시스템에 의한 노동력 대체가 이뤄져 일자리가 줄어들지나 않을까 두려워한다. 즉 소수의 근로자로도 충분한 수준의 사회적 생산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저출생과 인구구조 변화에도 은퇴세대에게 나눠줄 사회적 생산물은 충분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 이처럼 생산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는데 근로자 1인당 부양해야 하는 은퇴자 수를 단순 계산해 연금재정의 지속가능성을 걱정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소득대체율이나 보험료율 조정 외에 다른 대안적 조정 기제도 존재한다. 우선 연금을 보장받는 시기를 조금씩 늦춰가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수명이 길어지면 건강수명도 길어진다. 육체적인 건강수명보다 정신적인 건강수명은 더 길어질 수 있다. 건강수명에 따라 연금수급개시연령도 장기적으로 완만하게 조정하는 방법을 생각해보자. 노동인력이 은퇴 시기에 점진적으로 노동시장에서 철수하는 방안은 인간 생체리듬에 친화적이며 연금재정 부담을 완화해줄 잠재력도 크다. 그리고 기대수명은 소득계층별로 차이가 있다. 소득이 높은 이들은 건강관리에 여유가 있어 기대수명이 길기 때문에 연금 수급 기간도 길다. 이를 반영해 보다 저소득계층에게 유리한 수급구조를 만들어가는 것도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 보험료 부과 소득의 상한도 높여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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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건 다섯가지 요소로 구성된 연금제도의 구조개혁이다. 투입한 재원에 비해 노후소득보장에 기여하는 정도가 낮은 제도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특히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을 손질해야 한다. 소득대체율이나 보험료율을 조정하는 방식의 쉬운 해결책보다 노후소득 보장성을 강화하면서 지속가능성도 유지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해결책을 찾아보자. 불가능하지 않다. 구조개혁이 우선이다. 보험료율 인상은 최후의 수단이다.

<김유찬 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홍익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