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찬의 실용재정](7)새정부의 재정정책, 괜찮을까?

5월 10일부터 시작하는 윤석열 정부가 직면하게 될 한국경제는 바로 문재인 정부가 현재 속해 있는 한국경제다. 팬데믹 위기, 기후위기, 양극화 위기에 더해 국제질서의 변화로 야기된 공급망 위기와 자원 및 에너지 위기 그리고 인플레이션이 무서운 기세로 닥쳐오고 있다. 앞으로 경제적 어려움과 없는 이들의 고통은 더 가중될 것이다. 이 위기를 돌파해 한국경제가 발전하면서 삶의 질이 개선되려면 방역에서 일상으로의 회복, 탄소중립적 사회경제체제로의 전환, 고용과 사회안전망 확립, 부동산과 주거문제 해결, 노인빈곤 문제와 청년일자리 문제 해결 그리고 사회보험 개혁은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선거운동에서 유권자에게 강조했던 정책을 다시 살펴보고, 이런 정책으로 한국경제가 직면한 과제를 돌파하는 게 가능할지 재고해봐야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 수도권 4단계 방침이 4주 연장된 2021년 9월 1일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 한 가게에 폐업을 알리는 문구가 붙어 있다. / 이석우 기자

향후 재정지출을 줄인다고?

윤석열 당선인은 문재인 정부의 재정지출이 확장 일변도였고, 그 결과 나라재정이 거덜나게 됐으니 재정건전성 회복을 위해 재정지출을 줄이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어려운 계층에 대한 지원을 늘리겠다는 약속도 했다. 공약 내용이 충돌되는 건 흔한 일이나 향후 재정지출을 줄이겠다는 정책의 방향성이 문제다. 작은 정부가 시민의 어려움을 가중시키지 않으면서 취약점에 노출된 한국경제를 위기에서 이끌어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재정지출 확대가 장기성장률 제고에 효과가 없다는 주장은 오랫동안 학계 주류 의견이었으나, 이제는 자료나 이론에 의해 반박되고 있다. ‘이력효과(낮은 경제성장이 지속되면 경제주체가 자신감을 잃어버려 실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 아래로 떨어지는 현상)’를 근거로, 여러 연구가 경제침체기의 재정지출 확대는 성장잠재력 하향화를 막아 장기적 성장률 제고에도 기여한다고 보고 있다. 유럽재정위기를 겪은 여러 국가의 자료에서 이력효과를 확인한 후, 코로나19 경제위기에 직면한 미국과 유럽 주요 선진국은 유럽재정위기 때와 다른 정책결정을 내렸다. 금융과 재정 양 부문의 확장을 신속·과감하게 이행해 경제위기에 대처했다. 주요 선진국은 코로나19 기간 GDP의 15~20%에 달하는 규모로 재정지출을 늘려 방역과 경제침체에 시달리는 시민들을 도왔다.

2020~2021년 한국도 여러차례 추경을 통해 경제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 기간 증가된 재정지출 규모는 GDP 규모의 3.4%에 그쳤다. 코로나19 위기의 심각함, 주요 외국의 재정지출 확대 수준을 고려할 때 문 정부는 매우 신중한 수준으로 재정을 확장했다. 기재부나 사회 일각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확장적 재정정책 수준이 지나쳤다고 보기는 어렵다. 2021년 추경예산에서 예측된 90조원 규모의 통합수지 적자는 결산자료에서는 30조원 정도의 적자로 낮게 실현됐다. 2021년 세수입이 추경예산 기준 29조8000억원, 본예산 기준으론 60조8000억원 더 징수됐기 때문이다. 이는 세율의 상향조정을 통해 세금을 더 거두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유류세 등을 인하하면서도 발생한 결과다. 이런 내용은 그해 말 국가부채 규모 개선에는 작용하지 않았다. 추가세수로 생겨난 재정여력을 기금 등 재정의 여러곳에 분산 배치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새정부 출범 직후 제안될 2022년의 제2차 추경예산안에 들어가는 재원 대부분을 국채발행 최소화와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조달하려는 뜻도 담은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2022년 이후 국가부채가 증가하는 데는 완충적으로 작용할 것이며, 2022년 조세수입이 2021년 추세를 따른다면 기재부의 중기재정계획 2021~2025에서 예측하고 있는 올해 말 국가부채 1068조원은 상당 폭 하향 조정될 여지가 크다.

한국 국가부채비율 수준은 주요 선진국과 비교할 때 충분히 안정적이다. 오히려 가계부채가 위험수위에 와 있다. 가계부채와 인플레이션을 감안할 때 긴축적인 방향으로의 통화정책 전환은 피할 수 없다. 경기침체 가능성을 차단하려면 향후에는 재정정책이 홀로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 재정지출의 신중한 확장 기조를 새정부에서도 이어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한국이 직면한 경제상황에는 변함이 없으며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 과제가 많다. 이제 선거전략적 정책은 거두고 한국경제의 어려움을 타개할 수 있는 정책에 전념해야 한다.

건전재정 강조하는 새정부

새정부는 건전재정을 강조하고 또 우려하는 듯한데, 이와 관련해선 증세를 통한 재정건전성 제고의 길이 넓게 열려 있다. 증세 정책은 새정부가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하면서 경제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이다. 문 정부는 이 분야에서 역할을 제대로 못 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2014년 소득세의 여러 소득공제제도를 세액공제제도로 바꾸면서 소폭이나마 증세와 소득재분배 제고효과를 얻어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재정지출 측면에서 여러 복지제도를 한단계 도약시켰지만, 재정수입 측면에서는 소득세와 법인세 최고세율을 인상해 극히 일부의 소득최상위 계층에 국한되는 세 부담 증가 효과를 거뒀을 뿐이다.

시각에 따라서는 보수정부가 오히려 증세를 하기에 부담이 없다고 볼 수도 있겠다. 진보정부가 증세를 하면 ‘반시장주의’라는 기업과 언론의 집중적인 이념공세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나 보수정부가 증세를 하면 이념공세가 들어설 자리가 없고 증세를 꼭 필요로 하는 경제상황이라는 설득이 쉽게 수용될 가능성이 크다. 보수정부로서는 이렇게 진보 쪽의 어젠다를 선점함으로써 중도 및 진보적인 투표자들에게 가깝게 다가설 수 있고 정부 지지율을 높일 수도 있다. 독일의 메르켈 전 수상이 보수정당인 기민당 소속이면서도 오래 정권을 유지한 비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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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에서 재정지출이 늘어날 때 그 일부를 세금으로 확보하는 건 또 다른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국채발행이 아닌 증세로 재원을 조달하면 사회인프라 투자에 국가 지출을 확대하면서도 인플레이션 유발을 차단할 수 있다. 지난 수년간 급격한 유동성 증가로 자산 및 자산소득이 크게 늘어났다. 이 분야에 대한 적정한 과세는 자산·소득 격차 해소에 바람직하고, 사회적 긴장완화에도 기여하게 된다. 복지제도 보완과 신성장동력을 확보하려는 정부 차원의 사회인프라 투자 확대를 위해 정부 재정지출은 코로나19 경제위기 이후에도 확장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 복지제도 보완을 위한 재원은 증세로, 신성장동력을 위한 정부투자 재원은 국채발행으로 방향을 정하고 재정정책 난관을 극복해가야 한다.

<김유찬 홍익대 교수·전 조세재정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