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술융합형 인재는 ‘귀하신 몸’

실무 중심 한국폴리텍대학 졸업생 90% 넘는 높은 취업률 자랑

‘기술융합형 인재양성의 요람’ 한국폴리텍대학 마포본부 전경. <한국폴리텍대학 제공>

"학문 통섭’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대학이 ‘학문융합’을 표방하고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한국폴리텍대학이다. 학문융합이란 두 개 이상의 학문을 융합해 공부하거나 연구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폴리텍대학의 학문융합은 산업인재를 길러내는 이 학교의 특성상 학술적이라기보다는 실질적 측면, 즉 취업과 연관돼 있다. ‘통섭’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대규모 실업시대를 만난 취업희망자들의 입장에서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 많다.

한국 대표 공공직업교육훈련기관
우선 취업이 상대적으로 쉽다는 점이다. 학문융합을 통해 학생이 2개 이상의 분야에 걸쳐 지식을 습득하기 때문이다. 또 고소득 직종을 얻을 기회가 많다는 점도 꼽을 수 있다. ‘국제적인 인재상’에 가깝기 때문에 해외 취업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도 관심이 쏠리는 대목이다.

한국폴리텍대학의 학문융합은 현재 초기 단계다. 용접기술과 잠수기술을 함께 배우는 이 학교 강릉캠퍼스 수중잠수과, 의용공학과 기계제작을 동시에 배우는 원주캠퍼스 의료기기제작과 등이 그것이다. 용접과 전기 배선을 함께 배우는 과도 있다. 다른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이 이 대학에 재입학해 다른 학문을 공부한 뒤 두 개의 전공이 융합된 분야에 취업하는 사례가 많다는 점에 착안해 새로운 전공을 창출한 것이다.

폴리텍대학은 올 2학기부터 ‘융합형 테크니션 양성시스템’을 시범실시할 계획이다. 내년부터는 전면 실시한다. 이를 위해 융합형 테크니션 양성시스템에 대한 연구를 시행하고 있으며 오는 8월 그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융합형 테크니션 양성시스템을 실시하는 것은 국내 대학 최초다.

박호진씨(32)는 싱가포르의 한 해운회사에 취업해 1억5000만 원의 연봉을 받고 있다. 모든 취업희망자의 꿈인 해외 취업과 높은 연봉을 실현한 것이다. 박씨는 가천길대학에서 관광통상영어과를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군에 입대한 박씨는 제대 후 취업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다가 평소 관심이 있던 산업잠수를 평생 직업으로 삼기로 결심했다. 그가 한국폴리텍Ⅲ대학 강릉캠퍼스 산업잠수과에 입학한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박씨는 입학 후 잠수공부는 물론 원래 전공이었던 영어 공부도 열심히 했다. 해외 취업에 도전하기 위해서였다. 폴리텍대학 측은 이를 적극 지원했다.

관광통상영어과해외취업에 필요한 ADCI국제산업잠수자격 취득 후, 박씨는 해외잠수작업이 활발한 싱가포르 OCEANEERING 사(미국 수중로봇 등 수중공사 전문업체)에 취업했다. 박씨는 취업 후 인도네시아에서 8주 과정의 수중로봇(ROV) 조정기술을 이수한 뒤 실무작업에 투입되어 첫 연봉 5000만 원을 시작으로 현재는 1억5000만 원을 받고 있다. 박씨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수중로봇작업능력을 갖추고 있는 전문가로 향후 우리나라의 해양 분야 최고의 전문기술자로 활동할 계획을 갖고 있다.

초등학생 아들 2명을 둔 주부 신혜숙씨(38)는 한국폴리텍Ⅰ대학 서울강서캠퍼스 컴퓨터출판디자인학과에 2007년 입학해 1년 과정을 수료하고 종합일간신문사 편집기자 시험에 합격했다. 한국방송통신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신씨는 출판디자인 분야에는 문외한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출판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된 신씨는 철저히 실무 위주인 전공 교육을 성실히 이수했고, 면접 시 그의 실무능력을 눈여겨본 언론사가 주부인데다 나이가 많은 신씨에게 편집기자로 일할 기회를 준 것이다.

“표준화되고 세분화된 ‘전공형 인간’보다는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전인적 인간’을 길러내는 것이 한국폴리텍대학의 임무입니다.”

한국폴리텍대학 권일현 기획국장(커뮤니케이션 디자인과 교수)은 한국폴리텍대학의 인재상을 ‘기술융합형 인간’이라고 설명한다. 권 국장은 “취업이 안 된다고 걱정만 하지 말고 우리 대학에 와서 기술융합형 인재가 되라. 오히려 기업은 사람은 많은데 정작 필요한 인재가 없다고 불평한다. 현장실무학습을 철저히 교육시키는 한국폴리텍대학이 그 해답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 국장은 ‘융합형 테크니션 양성시스템’과 관련해 “한 가지 기술로 승부하는 시대는 갔으며, 다양한 기능과 창의성을 갖춘 사람이 살아남는 시대가 된 만큼 틀림없이 성공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취미이자 직업으로 고액 연봉
폴리텍대학은 ‘융합형테크니션 양성시스템’ 말고 ‘실무형 인재’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민수씨(19)는 “물 속에서 일할 수 있게 되어 행복하다”고 말하는 스킨스쿠버 마니아다. 스킨스쿠버를 즐기며 사는 것이 꿈인 이씨에게 폴리텍대학의 산업잠수과는 그에게 취미를 즐기면서 평생 직업을 만들어주는 발판이 될 참이다. 산업잠수과에서는 산업잠수, 해양구조물의 시공 및 설치와 관련된 산업잠수 분야, 수중용접 및 공사 분야, 해양구조물의 시공·설치 등 현장실무능력을 배운다.

한국폴리텍Ⅲ대학 원주캠퍼스 의용공학과에서 학생들이 실습하고 있다. <한국폴리텍대학 제공>

한국폴리텍대학은 한국을 대표하는 공공직업교욱훈련기관이다. 전국에 11개 대학과 38개 캠퍼스를 갖추고 있다. 1968년 인천에서 노동청산하 중앙직업훈련원으로 출발한 한국폴리텍대학은 2006년 3월 정부가 기능대학과 직업전문학교를 통합운영키로 하면서 출범했다. ‘다방면의’ 또는 ‘종합’을 뜻하는 영어 ‘Poly’와 기술을 뜻하는 영어 ‘Technic’을 합친 지금의 학교명도 이때 만들어졌다.

한국폴리텍대학은 다기능자를 양성하는 2년제 산업석사 학위과정과 1년 기능사과정(직업교육 훈련과정), 기능장과정 등 다양한 직업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직장 근무자의 직무능력향상 훈련과 사회취약 계층을 위한 과정도 운영하고 있다. 최근 3년간 90%가 넘는 높은 취업률을 기록했고, 연간 20만 명이 넘는 재직자에게 직무능력향상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한국폴리텍대학은 국내 대학 최초로 산업현장과 강의실을 연동시킨 실무 위주의 학사제도인 ‘FL(Factory Learning)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기업 현장에서 이뤄지는 모든 과정을 강의실로 옮겨와 강의하기 때문에 기업에서 필요한 것을 가르칠 수 있다. 학기 중 산업체와 공동으로 프로젝트 실습을 실시해 기업이 원하는 인력을 양성하기도 한다. 학생들은 1년에 두 달가량을 기업에서 일하며 현장 노하우를 배운다. 90% 이상의 높은 취업률은 이런 현장 중심의 교육에 따른 과실이다. 교수 1인당 10개 이상의 기업을 전담관리하는 ‘기업전담제’는 전국의 기업체를 네트워크로 구축해 기업체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분석하여 산학협력활동에 기여하는 폴리텍대학만의 특장점이다. 이를 통해 기업과 대학이 상생할 수 있는 파트너십을 구축하여 기업을 가장 잘 아는 대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폴리텍대학은 또 학생들의 인성교육 강화를 위한 리더십 프로그램과 함께 학생들이 졸업 후에도 직무 능력 향상과 성공적인 직장생활의 적응에 도움을 주는 ‘플러스원’ 프로그램도 시행 중이다.

이러한 노력으로 폴리텍대학의 취업률은 전국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폴리텍대학은 2008년 2년 학위과정에 6576명, 1년 직업훈련과정에 5506명 등 1만2082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으며, 취업 대상 2년 학위과정은 90.2%, 1년 직업훈련 과정은 86.6%의 높은 취업률을 기록했다. 이와 같은 높은 취업률의 배경에 대해 강희상 홍보팀장은 “학생들의 높은 의지와 함께 철저하게 현장에서 요구하는 실무 위주의 교육이 합쳐진 결과”라고 설명했다.

‘제2의 인생’ 도전 이색 입학생 많아
한국폴리텍대학은 지방자치단체의 특화산업전략과 연동해 ‘지역형 실무인재’를 키우는 데도 한몫 하고 있다. 지역 특화산업에 기초를 둔 한국폴리텍Ⅲ대학 원주캠퍼스 의용공학과가 좋은 예다. 한국폴리텍Ⅲ 원주캠퍼스(학장:조영환) 의용공학과는 최근 2009년도 폴리텍대학 선도학과로 선정됐다. 의용공학과는 2007년 3월 기존 기능대학과 직업전문학교의 통합을 통해 새롭게 출발한 국내 유일의 의료기기 현장인력 전문양성학과로 지금까지 약 2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의용공학과는 인체의 진단·계측을 목적으로 한 의료전자 장비, 생체기능, 계측기기, 운동기능 측정기기 및 소프트웨어 개발·관리·운영 및 병원행정, 병원의 장비 유지보수를 위한 기술·기능인 양성을 목표로 국내 최초로 신설된 분야다.

이 학과의 졸업생들은 원주를 포함한 강원지역 내 60여 개 의료기기업체에 전원 채용되는 성과를 올렸다. 그 배경에는 그동안 의료기기분야 기술은 공학과는 다른 독자적인 분야로 취급되어져 왔지만 최근 전자공학과의 학문융합을 통해 의용공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영역을 이뤘고, 이를 바탕으로 더 정밀하고 유용한 첨단의료기기의 상용화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의료기기의 보급 확산은 의료기기업체의 증가로 이어졌고 이에 따라 현장기술인력 양성 및 보급은 중요한 문제로 대두했다. 그동안 군사도시로 이미지가 강했던 원주시도 첨단의료기기산업도시로 변신을 준비 중이었고 역점사업인 산학연관의 유기적인 협조체계 강화를 통한 첨단의료기기산업의 지속 육성 발전 목표가 교육의 필요성과 맞물려 입학 경쟁률이 무려 6 대 1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있는 학과로 발전한 것이다. 의용공학과 주임교수인 나승권 교수는 “원주가 의료기기클러스터로 지정돼 우리나라에서 의료기기 하면 한국폴리텍III대학 원주캠퍼스라는 인식이 심어지고 있다”라며 “ 이런 이유에서 의용공학과의 인기가 날로 치솟고 있고 졸업생들이 취업도 잘돼 가르치는 보람이 있다”고 전했다.

제2의 인생을 설계하기 위해 입학한 이색 경력 입학생들도 눈에 많이 띈다. 지난해 의용공학과에 입학한 임모씨(41)는 원주의 의료기기업체에 취직하기 위해 14년간의 미국생활과 국적을 포기하고 귀국한 만학도다. 임씨는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식품제조장비 제작업체에 근무하며 자리도 잡고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했지만 고국에 대한 향수에 늘 목말라 있었다. 우연히 원주에 사는 지인들로부터 원주시가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첨단의료기기산업에 대한 정보와 함께 폴리텍대학에 이와 관련된 의용공학과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영구귀국을 결심했다고 한다. 임씨는 향후 우수한 의료기기를 세계 각국에 수출하는 전문가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지난해 지방전문대 보건관련학과를 졸업한 홍모씨는 서울의 일자리를 과감히 버리고 원주캠퍼스에 재입학한 경우다. 강릉 출신인 홍씨는 “아는 사람도 거의 없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것도 힘들었다”라며 “연고가 있는 강원도에서 보건행정과 의료전자에 대한 실력을 쌓아 고향에 정착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관동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ROTC 중위로 전역한 류모씨도 의용공학과에 입학해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있다. “대학 졸업 후 곧바로 군입대를 해서 전역해 어떻게 취업할지 막막했는데 지금은 삶의 목표가 명확해져 공부하면서도 즐겁다”라고 밝혔다.

<김태열 기자 yol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