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수중잠수과서 용접·잠수 함께 배워”

한국폴리텍 대학 허병기 이사장, 산업기술의 크로스 오버 주창

용접 기술+잠수 기술+영어 구사. 세 가지 능력을 함께 구비한다면 국제산업잠수자격을 취득해 해외에서 고액의 연봉으로 수중용접 기술자로 일할 수 있다. 한국폴리텍대학 허병기 이사장이 꿈꾸고, 실제로 실현하고 있는 폴리텍대학의 한 모델이다. 지난해 8월 취임한 허 이사장은 올해 대학에서는 최초로 학문융합(Crossover)을 표방하고 나섰다. 6월 24일 폴리텍대학 허병기 이사장을 만나 학문융합에 대한 구체적인 구상을 물었다.

폴리텍대학은 어떤 대학인가.
“현장에서 중간 허리역할을 하는 테크니션을 길러낸다. 기존의 기능학교를 통합해 2006년 3월에 새로 출범했다. 기능대학과 직업전문학교를 통합해 모두 38개 캠퍼스를 운영하고 있다. 노동부 산하 국책대학으로 학비가 아주 저렴하다. 3년 동안 평균 취업률이 90%다. 이런 내용이 많이 알려져 최근에는 4년제 대학 졸업 후에도 폴리텍대학에 입학하는 사람이 부쩍 늘고 있다. 산업학사 과정 2년과 기능사 과정 1년이 있는데, 최근 기능사 과정에 43.7%가 대졸자로 채워졌다. 내년에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취업률 90%대라면 높은 수치다.
“인간은 직업을 통해 존재가치를 구현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등학생의 85%가 일단 대학을 들어가고 본다. 하지만 취업은 쉽지 않다. 우리 대학은 실사구시를 바탕으로 한다. 특수국책대학에 맞게, 그리고 학생들의 목적도 취업이기에 이론 대 실습의 비율이 3 대 7 또는 4 대 6 정도다. 다른 대학과 달리 산업현장과 강의실을 연동시킨 실무위주의 학사제도인 ‘FL(Factory Learning)’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교수가 학생들을 공장으로 데려가 실습을 통해서 기업이 원하는 인력을 양성한다. 1~2년의 단기간 교육으로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를 배출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기업에서 원하는 인력과 기술을 미리 요구한다. 정해진 기간 안에 기업에서 원하는 기술을 가르쳐 이들을 기업에 취업시킨다. 단순한 취업의 양이 아닌 질을 중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1817명의 직원이 스파르타 전사처럼 핵심가치 300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폴리텍대학은 100% 모집, 100% 양성, 100% 취업이라는 ‘폴리텍 핵심가치 300’을 내세우고 있다.”

취업의 질을 어떻게 올릴 계획인가.
“대한민국이 이처럼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기술과 땀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의 노력 덕분이다. 그런데 이런 기술과 땀의 가치를 무시하고 학벌을 우선시하는 사회가 됐다. 땀을 흘리는 노동을 회피하는 경향이 생겼다. 학벌이 낮다는 이유로 기술을 무시하고 임금을 낮게 주는 사회 경향이 안타깝다. 우리 사회가 기술과 땀의 가치를 인정하는 분위기로 나아가야 한다. 폴리텍대학은 실사구시를 추구하고, 기술과 땀의 가치를 존중하는 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폴리텍대학이 마냥 사회풍조를 탓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명칭을 바꾸고 학과의 내실화를 모색했다. 국책대학이니만큼 일반 대학에서 할 수 없는 전통기술을 그대로 유지하지만 하이테크를 다루는 학과도 많아졌다. 484개 학과 중 241개가 기계나 산업설비 같은 전통기술과이고 절반이 넘는 243개 과는 하이테크를 다룬다.”

폴리텍대학이 학문융합(크로스오버)를 표방하고 나섰다.
“다른 대학에서 국문학과를 전공한 학생이 우리 대학에서 출판 디자인을 전공했다. 이 학생이 문학적 소질과 디자인적 능력을 발휘해 출판사에서 기획과 디자인 업무를 동시에 한다. 두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한 사람이 끝내는 것이다. 8월 정도면 융합형 테크니션 양성 시스템에 대한 연구 결과가 나온다. 국내 대학에서 최초다. 올해 2학기부터 시범적으로 실행하고 내년부터 제대로 시작할 계획이다. 우리 대학에서는 FL시스템과 융합형 크로스오버를 양대축으로 할 것이다.”

폴리텍대학이 크로스오버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학문의 흐름이 통섭적으로 가고 있다. 기술도 마찬가지다. 휴대전화만 봐도 원래의 전화 기능에 텔레비전까지 본다. 이러한 기술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다. 한 가지 기술로는 살아남기 힘들다. 기술만 갖고 승부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다양한 기능에다 디자인과 창의성도 있어야 한다. 기술력에 디자인 감각 등 인간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기술의 진보를 일궈야 한다. 등록금을 몇백만 원씩 내고 4년 동안 학교를 다닌 졸업생들이 우리 대학에서 와서 전혀 다르거나 또는 유사한 분야의 기술을 배운다. 자연스럽게 크로스오버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여기는 사실상 대학원대학교의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등록금을 한 푼 내지 않아도 된다.

크로스오버의 실제 예를 들어달라.
“강릉캠퍼스에 수중잠수과가 있다. 용접기술과 잠수기술을 함께 배우는 것이다. 원주캠퍼스에서는 의료기기제작 직종에서 의용공학과 기계제작을 함께 배운다. 용접뿐 아니라 전기배선도 함께 배우는 과정도 있다. 대학에서 어학을 전공한 졸업생이 전문 기술을 배워 해외에서 취업하는 사례가 많다. 매년 전체 484개과 중 20개 정도의 학과가 개편되는데, 우선적으로 융합형 기능인력 양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허 이사장은 대학에서 약학을 전공하고 사회에서는 여론조사를 전문으로 한 정치학 박사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학문융합의 예를 스스로 보여주고 있는 셈인데 학문융합을 추진하는데 개인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나.
“중학교를 졸업할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려운 환경 때문에 싼 등록금과 장학금으로 다닐 수 있는 서울대 약대를 선택했다. 약대를 졸업하고 제약회사를 다녔다. 그러나 가치지향적으로 살고 싶어 그만두고 정당에서 일하게 됐다. 정당에서 여론조사를 담당하면서 나중에 명지대에서 겸임교수로 강의도 했다. 이런 경험이 폴리텍대학을 운영하는데 밑바탕이 된 것은 분명하다. 이과를 나와서 바이오 등의 첨단 학문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정당에서 경험이 폴리텍대학 관련 예산을 끌어오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건물이 40년이 넘은데다 냉방이 되지 않는 곳에서 학생들이 땀을 흘리며 배우고 있다. 폴리텍대학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예산을 확보하는데 정당의 지인들이 많은 도움을 줬다.”

여론조사 전문가로서 폴리텍대학에 대한 여론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낮은 인지도가 좋은 계획을 실행하는 데 악영향을 끼치는 측면이 있다. 우선은 폴리텍대학을 널리 알리는 게 중요하다. 최근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이런 것을 적극적으로 홍보함으로써 개선해가는 중이다. 최초상기율을 높이는 데 집중하려고 한다. 자체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한국의 기술인을 배출하는 대학은 어디냐’는 질문에 최초상기율이 4.7%로 나왔다. 포스텍을 앞서는 것이 목표다. 앞으로 최초상기율을 일정 수준 올리려고 한다. 이사장 평가에 평가기준으로 자원해서 목표 수치를 넣었다. 10년만 지나면 지금의 여론은 바뀔 것이다. 얼마전 한 언론에서 유망한 산업대학을 소개하면서 네 번째로 폴리텍대학을 선택했다. 나는 10년 안에 첫 번째로 폴리텍대학에 전화할 거라고 장담했다.”

<글·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