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법의 문턱 넘지 못하는 생활임금

정부·여당 반대 입장이라 법적근거 마련 어려워 제도적으로 한계

“헌법에 보면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한다’ 지금 이렇게 돼 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게 지금 최저임금은 법에 돼 있고 또 적정임금 이것은 헌법에 다 규정돼 있는 임금의 개념이에요. 그런데 갑자기 생활임금을 들이대면 이것은 지금 헌법이 정한 우리 임금 개념을 무너뜨리는 결과가 된다고.”

지난 3월 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설전이 벌어졌다. 이날 심사에 오른 법안은 새정치민주연합 김경협 의원이 대표발의한 ‘최저임금법 일부개정법률안’. 당초 김 의원이 발의한 내용은 최저임금법에 생활임금 조항을 신설하자는 것을 담고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가 근로자로 하여금 최소한의 인간적·문화적 기본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생활임금제를 도입하자는 내용이 핵심이다. 국회 전문위원들은 따로 조항을 신설하지 않고 최저임금법의 효력조항인 제6조에 후문을 추가하자는 의견을 밝혔다. 후문의 내용은 ‘종전의 임금수준을 낮춰서는 아니 되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근로자에게 최저임금 이상의 적정한 임금을 보장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경기도당과 을지로위원회 등이 2014년 4월 생활임금제 전국확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적정임금’ 해석을 둘러싼 환노위 설전
설전은 ‘적정임금’의 해석을 둘러싸고 벌어졌다. 구도는 ‘여당 의원·고용노동부 관계자 대 야당 의원’이었다. 국회 환노위 여당 간사이자 법안심사소위원장인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은 생활임금이 헌법에 규정돼 있지 않기 때문에 ‘적정임금’에 생활임금이 포함되는지를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새정치연합 이인영 의원은 반박했다. “최저임금법 상에서 최저임금이라는 게 있고, ‘그 이상의 적정임금을 받게 노력해야 한다’는 이런 조항 속에 적정임금이라는 조항이 있어요. 그러면 ‘최저임금 이상의’ 그것이 생활임금으로 표현되든 기본임금으로 표현되든 생산성 연계 임금으로 표현되든 최저임금 이상의 것들을 받는 것은 그 적정임금의 영역에 당연히 들어갑니다.” 권성동 의원은 “그것은 맞는데”라고 말끝을 흐렸지만, 결국 이날 회의에서는 생활임금이 적정임금에 포함되는지 결론을 내리지 않고 회의를 종료시켰다.

‘제2의 무상급식.’ 생활임금을 바라보는 새누리당의 시선이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최저임금이 노동빈곤계층을 보호하지 못하고 오히려 기업의 저임금을 정당화해주는 현실에서 생활임금을 대놓고 반대하지는 못하고 있다. 지자체의 재정부담과 세금인상 우려를 제기하며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히는 정도다.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새정치연합은 생활임금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새누리당 주영순 의원은 “야당은 곳간을 채울 생각은 하지 않고 퍼낼 생각만 한다”며 “생활임금제는 결국 시민들의 조세부담을 가중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재계도 같은 입장을 보이고 있다. 경총은 지난 4월 김경협 의원이 발의한 최저임금법 개정안에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마찬가지로 ‘세금인상으로 국민들의 부담만 가중될 것’이라는 이유를 댔다. 그러나 생활임금이 세금인상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뒷받침되지 않는다.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는 ‘생활임금 캠페인의 효과와 과제’라는 글에서 생활임금이 정착된 미국과 영국의 사례를 들며 “생활임금 조례가 실시된 지역에서 계약비용이 크게 증가하지 않았으며, 생활임금 조례를 채택한 많은 도시 가운데에도 생활임금 조례가 높은 세금을 발생시켰다는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한국에서는 현재 20개 지자체가 시행 중인데, 연평균 2억8000만원 정도의 예산이 소요된다. 전체 예산에 비하면 미미한 숫자다.

예산 부족이 결국 세금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에 설득력이 떨어지자 정부·여당은 상위법과의 충돌을 근거로 생활임금에 반대하고 있다. 새누리당 사무총장을 지낸 서병수 시장의 부산시가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4월 28일 부산광역시의회 경제문화위원회는 새정치민주연합 정명희 의원이 발의한 ‘부산시 생활임금 조례안’의 상정을 보류했다. 부산시가 법제처에 의뢰한 유권해석을 근거로 반대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법제처는 생활임금조례가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부산시가 입장을 밝히자 소속위원 전원이 새누리당으로 구성된 시의회 경제문화위원회는 해당 조례안 상정 자체를 보류키로 결정했다. 시민사회가 비판했다. 부산경실련은 “생활임금 조례안은 공공 근로자에게 최저임금 이상의 적정임금을 지급할 수 있는 법적 규정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며 “다른 지자체에서 이미 시행 중인데 부산만 유독 법적인 문제를 거론하며 조례안을 상정하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상위법과 충돌 이유 부산시 조례안 보류
정부·여당이 생활임금에 반대하다 보니 법적 근거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김경협 의원이 생활임금과 관련해 첫 번째로 발의한 최저임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은 현재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생활임금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으로, 앞서 적정임금에 생활임금이 포함되는 것이냐를 두고 여야가 논쟁을 벌였던 이 법안은 지난 4월 28일 법안에 첨부된 법개정 취지에 “생활임금 제도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명시함으로써 겨우 해당 상임위를 통과했다.

7월 17일 김경협 의원은 생활임금 관련 두 번째 법안인 ‘공공계약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생활임금이 민간으로 확산될 수 있게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자체 및 국가가 민간업체와 공공계약을 맺을 때 민간에 고용된 근로자까지 생활임금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민간으로의 확산이 생활임금제 성공의 키워드인 만큼 중요한 법안이다. 생활임금이 민간으로까지 확산된 영국에서는 712개의 고용주들이 생활임금을 채택하고 있으며, 대학과 병원은 물론 구글이나 네슬레, HSBC 같은 글로벌 기업들도 동참하고 있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다수당인 현 상황에서 김 의원이 발의한 생활임금 관련법이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법안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서울시 조례안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서울시도 생활임금을 민간으로까지 확산시킬 계획을 하고 있다. 2017년부터 서울시와 조달, 용역, 위탁계약을 체결하는 민간기업에게도 부속계약으로 서울시가 정하는 생활임금을 준수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정부의 태도에 있다. 행정자치부는 서울시의 이 같은 부속계약 체결을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위반이라고 유권해석을 내리고 있다. 정부가 반대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가운데 생활임금법이 정부와 지자체 간의 소송전으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만약 현 법률 안에서 정부가 딴죽을 걸기 시작하면 법정 소송으로 갈 수도 있다. 가치와 철학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정부에서 더 확산되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