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모든 결정은 다수가 주도하는 현상”

온라인 커뮤니티 회원 좌담회

촛불집회를 거치면서 기존의 온라인 공간은 일상 속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대표적인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취미나 실용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만들어진 온라인 커뮤니티가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장으로 진화한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 정부의 촛불집회 원천봉쇄 등으로 광장의 소통이 막히면서 들끓던 온라인 민심은 잦아드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기간 동안 온라인 커뮤니티는 진보언론 광고싣기 물결을 주도하며 일상 속 촛불의 불씨는 기회만 있으면 언제든 다시 점화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Weekly 경향’은 이처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오가며 국민과 불통하는 권력에 대한 저항의 텃밭을 조금씩 넓혀가고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세 차례 시국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는 신문광고를 내면서 ‘클래식 애호가는 보수적이다’는 고정관념을 깬 국내 최대 인터넷 클래식 음악 동호회 ‘고클래식’의 김태진씨, 신문광고와 촛불집회 현장 주먹밥 나르기로 ‘힘’을 과시한 ‘82쿡닷컴’의 김수진씨, 온라인 커뮤니티의 태동과 진화를 주의깊게 관찰해온 송경재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교수가 지난 17일 오후 경향신문사 7층 회의실에서 만났다. 송 교수가 사회를 맡았다.

김태진씨는 영화와 클래식 음악 평론을 업으로 삼고 있고, 김수진씨는 대학에서 음악을 가르치면서 영화와 드라마 음악을 작곡하는 일을 병행하고 있다.

사회 먼저 고클래식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해달라.

김태진 이름 그대로 클래식 음악 감상 동호회다. 뿌리는 PC통신 시절 하이텔 클래식 음악 동호회 ‘고음동’이다. 온라인 환경이 PC통신에서 인터넷으로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인터넷에 뿌리를 내리게 됐다. 하이텔 시절에는 국내 최초로 아마추어가 모여 오페라 공연을 했고, 회원들의 정기공연도 활발했다. 한때 국내 음반평론가의 70%가 하이텔 고음동 출신이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였다.

사회 82쿡은 ‘나사모’(나라사랑 모임)를 중심으로 지난해 촛불집회에 많이 참여했다. 82쿡에서 나사모가 탄생한 과정은 어떠했나.

<b>송경재 |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교수</b> “지금은 시민단체가 제 목소리를 못내면서 시민들의 참여 통로가 사라진 것 같다.”

송경재 |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교수 “지금은 시민단체가 제 목소리를 못내면서 시민들의 참여 통로가 사라진 것 같다.”

김수진 지난해 촛불 때 소울드레서가 광고를 냈다는 얘기가 전해지면서 82쿡에서도 광고를 내자는 제안이 나왔고, 찬성하는 의견이 많이 모여서 실행하기로 결정했다. 82쿡 게시판은 익명을 쓰는데, 하나의 필명을 고정적으로 쓰는 사람이 드물다. 나는 필명을 하나만 썼는데, 그래서 그랬는지, 광고 제안자가 내게 총대를 매달라고 했다. 나사모를 만든 건 82쿡 이름으로 광고가 나가면 운영진에 피해가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82쿡 전체를 대표하는 게 아니라 82쿡 일부 회원이 하는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사회 신문광고는 어떤 식으로 이뤄졌나.

김수진 지난해 광고를 두 번 했다. 6월 10일이 두 번째였고, 그 전에 한 번 했다. 내가 오지랖이 넓다. 당시 광고 제작까지 맡아서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거기까지만 하고 그만둘 생각이었는데, 조선일보가 82쿡의 조선일보 광고주 불매운동 관련 게시글을 삭제해달라는 요구를 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음악하는 사람이 아니라 촛불시민으로 자꾸 알려지는 것 같아 고민이 많을 때였다. 그런데 조선일보가 그런 식으로 나오니 또 오지랖이 발동해서 조선일보 앞에서 성명서도 읽고 기자회견도 했다. 올해 같은 분위기라면 기자회견은 못했을 거다. 벌써 잡혀갔을 테니까.

김태진 고클래식 회원들은 지난해 5월 초에 광장에서 모였다. 7년 만의 첫 오프라인 모임이었다. 평소 게시판에서 정치적 발언을 하던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나온 사람들은 평소 조용하던 사람들이었다. 상공회의소 직원처럼 그런 자리에 나오면 불이익을 받을 것 같은 사람도 있었고, 교수와 기자도 있었다. 심지어 집회 소식을 듣고 외국에서 급히 귀국한 사람도 있었다. 우리도 광고를 작년에 두 번 했다. 방식은 82쿡과 비슷하다. 광고 내자는 의견이 나왔고, 게시판을 통해 참여 의사를 밝힌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았다.

사회 인터넷 동호회 회원들은 다른 동호회 회원들과도 연계되는 것 같다. 처음부터 알았던 건가, 아니면 촛불집회 이후 인연이 맺어진 것인가.

김태진 신문 광고를 낸 동호회에 광고 낸 사람을 수소문해 알게 된 것이다. 그런 식으로 네트워킹이 됐다.

김수진 이런 부분도 있다. 한 사람이 동호회에 하나만 가입하는 게 아니라 여러 군데 가입하지 않나. 우리 동호회에서 하는 일을 다른 동호회에 알리고 싶을 때는 여러 동호회에 가입한 사람한테 부탁한다. 이렇게 하면 다른 동호회 가입해서 글을 쓰는 데 드는 절차와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김태진 가령 여자들이라면, 소울드레서 회원이면서 레몬테라스 회원인 경우가 많고, 남자들은 고클래식 회원이면서 디비디프라임(디비디 애호가 모임) 회원인 경우가 많다.

사회 인터넷 동호회 회원들이 본래 정치의식이 있어서 목소리를 낸 것인지, 신문광고를 내고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현 정부의 행태를 보고 정치의식을 갖게 된 것인지 궁금하다.

김수진 회원 가입은 오래 전에 했지만 활동은 하지 않고 ‘눈팅’만 하는 유령회원이었다. 82쿡에 가입한 건 쓸 만한 식기세척기가 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작년에 사람들 화를 돋우는 일이 생겼고, 회원들이 저마다 글을 올렸고, 그 바람에 나도 글을 올렸다. 처음에는 개인적인 편익을 찾기 위해서 가입했는데, 게시판에 글을 쓰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능동적인 주체가 돼 있었다.

김태진 나는 조금 다르게 말하고 싶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누구나 정보를 얻어 개인적 편익을 얻기 위해 가입한다. 인터넷 동호회 회원과 일반 직장인의 차이는 이런 것이다. 대부분 직장인은 직장과 술밖에 모른다. 취미생활을 할 여유라는 게 없다. 그런데 취미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주위를 둘러보면서 삶의 여유에 대해 생각한다. 이 정권의 문제는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삶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거다. 취미로 음반이나 디비디를 모으면서 두 번 위기를 맞았다. 한 번은 외환 위기 때고 또 한 번은 작년이다. 두 번 모두 환율이 엄청나게 뛰었고, 공교롭게도 집권당이 같다. 동호회 회원들이 강만수 전 장관을 욕했던 이유는 사고 싶은 디비디, 음반, 카메라 가격이 두 배로 올라버린 탓도 크다. 어떤 부분에서는 광우병보다 더 민감한 문제였다.

김수진 82쿡 입장에서는 일반 생필품 물가가 오른 게 치명적이었다. 가령 유기농 화장품 구매 대행 사이트의 상품 가격이 엄청 뛰었다든지 하는 것 말이다.

사회 취미나 생활정보에 대한 필요성 때문에 가입한 사람도 있겠지만, 촛불정국 이후에는 애초부터 정치 의식을 갖고 가입한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김수진 82쿡은 조선일보와 싸운 뒤부터 가입자가 많이 늘었다.

<b>김태진 | ‘고클래식’ 회원</b> “이 정권의 문제는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삶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거다.”

김태진 | ‘고클래식’ 회원 “이 정권의 문제는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삶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거다.”

김태진 우리도 지난해 광고한 뒤 회원 수가 많이 늘었다. 우리가 낸 광고가 여성 취향에 어필했는지, 광고 나가고 나서 여성 회원이 많이 늘었다.
사회 전에는 시민단체가 앞장서고 시민들은 따라갔다. 지금은 시민단체가 제 목소리를 못내면서 시민들의 참여 통로가 사라진 것 같다.

김태진 지난 10년 동안 시민단체가 많이 유약해졌다. 시민단체라고 하면 정부에서 보조금을 받는 단체 정도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87년 6월 이후 운동가들은 다 기득권층이 돼버렸다. 우린 시민단체를 믿어본 적도 없고, 믿지도 않는다.

김수진 나는 시민단체가 뭐가 있는지도 몰랐다. 관심이 없었다. 작년 얘길 하자면, 당시 대책위나 다함께나 100% 잘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끼리 분열하고 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서로 끌어안아도 시원찮을 판에 돌을 던지면 안 된다. 대책위를 비난하던 친한 후배한테 이런 얘길 했다. “대책위가 마음에 안 들면 비난만 하지 말고 대안을 제시해라”라고. 민주당 의원들이 왔을 때 왜 촛불을 이용하려고 하느냐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세상은 어차피 이용하는 거다. 저 사람들이 우리를 이용하려고 한다면 우리도 저들을 이용하면 된다. 왜 자꾸 편을 가르려고 하나”라고 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이다.

사회 정치권, 언론, 시민단체 등 기성 질서에 대한 반감이 많은 듯하다. 이런 현상을 탈권위나 탈집중화라고 볼 수도 있겠다. 기존 시민운동이 커버하지 못하는 시민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김수진 교수님 질문에 흔쾌히 동의할 수 없다. 반감이 있는 게 아니라 정치를 알고 보니 누구는 나쁘고, 누구는 옳다는 판단이 생긴 것이지, 탈권위를 지향한 건 아니다.

김태진 조금 과격한 얘기를 하겠다. 우리가 꿈꾸는 건 운동이 아니라 혁명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운동으로 된다고 생각했다. 순진했다. 저쪽에서는 진압이 들어오는데, 시민들은 촛불만 들고 있으면 다 될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87년 6월과 같은 상황이라고 본다. 교수님은 상황을 너무 낙관적으로 보는 것 같다.

사회 보수진영에서는 의회에서 해야 할 일을 왜 광장으로 끌고 나오냐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런 비판의 한가운데에는 목소리 큰 소수가 침묵하는 다수를 누르고 있다는 논리가 자리잡고 있다. 어떻게 보나.

김태진 인터넷 동호회에서는 어떤 사안에 대한 결정이 항상 치열한 토론을 거쳐서 나온다. 인터넷 동호회에서 발언권이 센 사람은 목소리가 큰 사람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우월한 사람이다. 평범한 회원들은 모두 일상을 지탱하느라 바쁘다. 게시판에 상주하면서 엉망인 철자법으로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알바’들이 있다. 그런 이들이 바로 목소리 큰 소수다.

<b>김수진 | ‘82쿡’ 회원</b> “게시판에 글을 쓰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능동적인 주체가 돼 있었다.”

김수진 | ‘82쿡’ 회원 “게시판에 글을 쓰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능동적인 주체가 돼 있었다.”

김수진 ‘목소리 큰 소수’라는 말에 도저히 동의할 수 없다. 목소리 큰 소수가 있긴 있다. 남들은 조곤조곤 조리있게 얘기하는데, 갑자기 튀어나와서 막말을 하는 사람들이다. 인터넷에서 중요한 건 논리다. 맞춤법도 모르면서 논리까지 글러먹은 이런 사람들이 ‘목소리만 큰 소수’다. 82쿡엔 양식 있는 분이 많다. 뭐든 다양성을 존중하고, 절차적 민주주의에 따라 모든 게 결정된다. 질문이 틀렸다. 소수가 주도하는 현상이 아니라 다수가 주도하는 현상이다. 결혼할까 말까, 시댁에 갈까 말까를 고민하던 여성들이 촛불집회와 노 전 대통령 추모 기간에 폭발한 것이다.

사회 지난해부터 상황을 지켜보면 온라인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시민운동이 출현한 것 같다. 이 새로운 형태의 시민운동의 미래는 앞으로 어떤 모습일까.

김태진 나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사람들이 왜 온라인 게시판에 글을 쓸까. 왜 직장에선 못할까. 직장은 무한경쟁의 장이다. 그런 곳에서 마음속에 있는 말을 다 토해내면 직장생활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어떤 불이익을 받을지 알 수 없다. 사람들이 왜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쓰는지 이해하는 게 앞으로 온라인 커뮤니티가 어떻게 나아갈지 이해하는 단서가 될 것 같다.

김수진 그렇다면 교수님은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건지 궁금하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기간에 학교가 휴강을 불허해서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묵념을 하게 하고 다음에 꼭 투표하라고 말했다. 일상 속 실천이 중요하지 않을까. 작년에 내가 아는 어느 선생님한테 촛불집회에 같이 가자고 했다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런 일을 바꿔나가는 능동적인 주체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라는 식의 질문은 밖에서 관찰만 하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교수님은 어떻게 하실 거냐고 물은 건 그래서다. 나는 모두 함께 이끌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겠지만, 그런 능동성이 중요하지 않을까.

<글·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